여행일기/유럽

이탈리아 1 - 바티칸 시국

張萬玉 2009. 3. 3. 10:11

 

내게 바티칸이라는 '나라 속의 나라'는 로마 땅을 밟는 순간부터 웬지 '해치워야 하는 숙제'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4박5일이라는 (그것도 들고 나는 이틀을 빼고 나면 겨우 사흘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을 쪼개어 할애하는 시간 동안
일단 줄을 한참 서야 한다고들 하고, 볼 것이 너무 많다고도 하고.... 무엇보다도 종교적이지도 않고 미술작품 감상 경험도 별로 없는 사람이
미술사의 근간을 이루는 (그러나 지금의 안목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시대를 탐험한다니...
내 일생에 다시 오기 힘든 기회를 받아들었다는 기대 속에 은근히 피해가고 싶은 심사도 살짝 깔려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도 귀가 얇은 대중 가운데 하나...  숙제부터 해치우는 범생이의 심정으로 로마의 첫날을 바티칸 방문에 뚝 잘라주었다.
 

 

메트로에서 내리면서부터 국경이 어디부터인지 알고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바티칸 시국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바티칸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장사진을 친 관람객들 속에 용케 자리잡은 집시 父子(혹은 형제?)의 아코디언 소리가

좀 구슬프게 느껴졌다. 젊은 아빠(혹은 형?)의 눈빛 때문이었을까? 꼬마의 고사리손 때문이었을까? 

 

미술관 초입에서 주렁주렁 걸린 대형 카펫들을 만났다. (태피스트리 라고 하던가?) 

이런 직물공예는 14세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는데, 제작이야 장인들이 했겠지만 밑그림은 분명 거장들이 그렸을 것이다.
'최후의 만찬' 등 익숙한 주제의 성화보다 더 내 눈길을 끌었던 작품.
아이를 제물로 바치려는 광기와 겁에 질린 모습들이 씨줄과 날줄에 끈질기고 차분하게 얹혔다.
 

 

한껏 꾸며진 나무판에 부조 형식으로 그린 성인들의 초상화(주로 성모 마리아와 교황 등)는 이탈리아에 있을 동안 지겹게 봤다.

결국 나무판만 나왔다 하면 일단 패스...하는 지경에 이름.
나도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저런 터무니없이 요란한 장식들을 보며 감동했을까? 
  

 

여기는 지도의 방. 당시 사람들의 세계인식을 보여주는 것들이라 꽤 흥미롭게 봤다.

주로 전쟁지도로 쓰이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사극에 등장하는 작전지도도 꽤 귀엽지 않은가 말이다. ㅎㅎㅎ)
라파엘로의 방 가는 길 양쪽 벽에 최소 30점 이상 전시되어 있었던 것 같다.
 

 

라파엘로의 방.

당대  화가들 중 가장 솜씨가 줄충했던 화가였음이 틀림없다. 문외한인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으니까.
 

 

 

이것이 라파엘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테네 학당'
문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이 각각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나타내고 있다는데 (왼쪽 플라톤은 하늘을, 오른쪽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큰 그림을 감당 못한 서툰 사진이 손 모양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오른쪽 구석에 그려넣었다는 라파엘로 자신의 모습도 놓치고...ㅠ.ㅠ
우쨌든 미술사에서는 원근법을 훌륭하게 사용한 작품으로서 평가 받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건 누구 작품이었나?

적어뒀던 노트가 사라져버리니 관심있게 봤던 작품들의 정체도 모르겠다만...
거꾸로 매달린 걸 보니 베드로를 그린 그림인 것 같은데... 소재도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나도 헬스에서 거꾸로 매달릴 때 불안해서 저렇게 한 손을 버팅기게 된다. ^^
베드로를 매다는 사람들은 웬지 핍박자가 아니라 그의 요청을 들어주고 있는 친구들 같은 분위기..   

 

이것도 처형 장면이다. 왜 이런 사진만 찍어댔나 모르겠네.

성화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에 끌렸던 걸까?
사람도 목을 걸어놓으니 정육점에 걸린 고기나 다름없다.
막 교수대에 오를 사람의 표정이 평온해 뵈는 걸 보면 자발적인 순교자인 것 같은데    
드라마틱한 소재임에도 색상도 분위기도 상당히 부드러운 걸 보면 분명히 그린 이의 신앙심이 작용했을 듯.(그런가? ^^)
 

 

라파엘로의 방을 지나 근대 미술가들의 성화가 전시되어 있는 방으로 가는 길목에서 본 스테인드 글라스

원색의 유리보다 더 멋지게 느껴졌다. 
마리아를 예수보다 더 크게, 고난 당한 아들을 품어주는 의연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건 달리 그림이 확실하다. 인간의 몸을 벗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저 드라마틱한 포즈...

'고통과 속죄의 십자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황홀해 보인다.
 

 

짐작하시겠지만... 루오 그림이다. 몇 점 더 있었는데 모두 내 마음에 들어왔다.

 

 

눈에 익은 그림인데.... (사진으로 봤겠지만) 언제 어디서 봤더라?

웬지 '비전향 장기수의 귀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혹시 그런 책 표지에서 비슷한 사진을 봤던가?
기억은 안 나지만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그린 작품 같은데....
 

 

 

예수의 희생을 다룬 작품 같은데.... 역시 누구 그림인지 모르겠지만 흥미로워서 찰칵.
웬지 모르게 피카소 느낌도 나고 미로 느낌도 나고.... 공예적인 느낌도 나고.... 
 

 

예전에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제로니모라는 성자를 이번 여행에서 꽤 여러 번 만났다.

이 그림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투박하고 힘있는 표현이 화가의 깊은 신앙심과 성자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미켈란젤로가 4년에 걸쳐 그렸다는 그 유명한 시스티나 교회 천장벽화 '천지창조'
고개를 꺾고 작업하던 노화가를 떠올려보니 참.....
천재 조각가였던 그가 붓을 드니 오히려 당대 화가들의 판에 박힌 듯한 그림보다 더 역동적이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나왔다.
 
바티칸 박물관은 플래시만 안 터뜨리면 어디서나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시스티나 교회 안에서만은 촬영금지였다.
들어서자마자 모른척 회심의 한 방을 터뜨렸는데, 하지 말라는 짓에 서투른 이 아줌마, 가장 유명한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맨 윗부분.... ㅜ.ㅜ
 

 

여기는 조각 전시장으로 가는 길.

전시물이 너무너무너무 많아 가능한 한 자세한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지나갔다.
유명하다는 두 점만 딱 보고 갈 요량이었다. 이미 시간은 두 시를 넘기고 있었으므로....  배 고프고 다리 아프고.....
 

 

여자같은 남자로 표현된 태양의 신 아폴로를 비롯...

인간의 머리를 움켜쥔 메두사와 포도송이를 움켜쥔 디오니소스,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근육(복부, 허벅지)만 남고 다 부서져버린 몸통씨 등 흥미로운 조각품들이 즐비했지만 

 

이 작품(라오콘)이 과연 그 명성대로... 최고였다.
 

이걸로 어설픈 바티칸 미술관 관람후기 끝.

내 느낌 가는 대로 따라가고 싶어서 가이드 투어는 생각도 안 했고 오디오는 빌릴까 말까 하다가 작품 옆에 영어해설이 있길래 관뒀는데
조금 서운하기는 하지만 '감상의 주체는 나'라는 고집에 일단 맡겨봤다. 
그 결과 '더 많이 배울 기회'는 놓쳤는지 모르지만 다음 박물관에서도 계속 내 마음길을 따라갔던 걸 보면 '내 맘대로 감상'이 그리 나쁘진 않았던 듯.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좀 여유있게 오디오의 해설에 귀를 맡겨 볼 생각이다. 
 
 

조각들을 돌아보고 웬지 미진하여 다시 시스티나 교회로 들어가 한 바퀴 돌고 나오니 바로 싼 삐에뜨로 교회 광장이다.

교황 즉위식 때 TV중계로 보았던 그 넓은 광장이 바로 여기구나. 헌데 이 넓은 광장을 내 똑딱이가 어찌 잡을 수 있으랴, 포기.
교회 앞에 세워진 기둥이 284개,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16m란다. 
그 위쪽에는 성인들과 교황들의 모습을 조각한 대리석상들이 가득 세워져 있다.  

 

윗 사진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

이 곳이 바티칸 시국 및 전세계 카톨릭교회의 영수인 교황폐하의 집무실이다.
교회의 축일이나 기념일에 교황께서 나타나시는 발코니가 바로 저기였구나.   
 
 
바티칸 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교황의 왕관 조각.
저 조각을 볼 때마다 웬지 섬찟한 기분이 든다. 그 의미 때문이 아니라 뭔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양 때문에....

  

밖에서 놀라고 안쪽으로 들어와 다시 놀란다.
하긴, 이곳은 교회이자 또한 왕궁 아닌가.

 

21세기에도  자연채광이 조명의 첨단으로 꼽히고 있으니 참 선진적인 건축물일쎄.  

 

미켈란젤로의 역작 피에타. (성모 마리아가 너무 젊고 예쁜 게 옥의 티.. ^^)

 

젊고 핸섬한 신부님들.. 좀더 가까이 다가가 찍고 싶었지만....^^

 

 자, 이제 인간 세상으로 나가 이곳에서 받은 감동을 널리 전하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