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투병일기1 (4개월차)

張萬玉 2011. 5. 8. 23:56

남편이 췌장암 4기 판정과 함께 1차 항암치료에 들어갔던 날이 작년 12월 17일이었으니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넉 달 반째.

잡초 죽인다고 멀쩡한 잔디에 제초제 뿌리는구나.. 싶은 두려움 속에서 시작했던 항암치료 첫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치료는 어느새 7차로 접어들었고

당사자도 간병인도 치료에 동반하는 부작용의 괴로움에 어느 정도 적응하여 '5개월에서 1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거의 잊은 채 살고 있으니

이쯤에서 살짝이나마 자축하고 지나가도 되지 않을지. 

 

한 세트의 항암치료는 3주에 걸쳐 진행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젬스타빈이라는 주사를 맞고 젤로다라는 약을 하루에 1050mg씩 복용하면서 두 주일간 암세포를 공격하다가

암세포와 더불어 손상을 입은 백혈구와 정상세포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일주일을 쉰 다음 

혈액검사를 통해 암세포가 좀 줄었는지, 전이가 더 진행되지는 않았는지, 무엇보다도 몸 상태가 이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백혈구 수치가 허락한다면 당연히 다음 사이클로 들어간다. 앞으로 이렇게 몇 사이클을 더 돌아야할지 현재로서는 의사, 박사님께 물어도 소용이 없다.

오직 하늘님만이 아시는 일이니 애타게 궁금해도 꾹 참고 진인사대천명 하는 수밖에....    

 

항암제의 독성과 부작용에 대해 무시무시한 얘길 듣기도 많이 들었고 남편도 예외 없이 항암주사 맞고 난 후 2, 3일간은 후유증에 시달리긴 하지만

아직은 항암제를 '보약'으로 알고 정성껏 섭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두 세트의 치료가 끝난 다음에 찍어본 CT는 종양이 6.3센티에서 5.8센티로, 다시  5.2센티로 줄었다는 낭보를 전해주었다.

한 세트 치료가 끝날 때마다 실시하는 혈액검사 역시 최초 3600까지 찍었던 종양지수가 2900 - 1900 - 1650 으로 점차 떨어져간다고 했다.

 

부쩍부쩍 자라던 암 세포의 크기를 줄여주고 날뛰던 종양지수의 고삐를 바짝 잡아준 녀석이 고맙긴 하지만  

주사만 맞고 나면 멀쩡한 사람이 금세 소금 맞은 배추처럼 시들시들해지니...

게다가 그 힘든 정도나 회복되기까지의 기간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더해가는 것 아닌가 싶은 걱정 때문에

이 녀석과 이별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시련은 딱 주사 맞은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토요일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훌훌 털고 일어나 마당 쓸고 반달이 똥 뉘고 음악 크게 틀어놓고 밥 한 그릇, 내놓은 반찬접시 깨끗하게 비우고

특히 주사가 없는 '휴식주'가 시작되면 휴가 받은 군인처럼 신이 나서 오늘은 도시락 싸가지고 어딜 좀 가볼까 궁리하느라 분주하다.     

믿거나 말거나.... 남편의 몸무게는 지금까지 단 1kg도 줄지 않았다.

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과의 치열한 전쟁은 알 바 없는 평화로운 나날이다.

 

최근 들어 살짝 염려되는 건 항암제의 약발이 슬슬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

마지막 CT에서 원발 암의 크기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양지수도 1065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췌장암에 원래 약물이 잘 안 듣기 때문에 췌장암 생존률이 낮다는 얘기도 있지만

의사선생님은, 암세포의 크기를 줄이기보다(팍팍 줄면 또 팍팍 는다고 한다) 활동을 정지시킨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요즘의 치료방향이 바뀌고 있다며

항암치료를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이건 맷집 키우라는 말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주 잘 하고 있는 거라고 하신다.

이 말씀이 사실인지 격려의 말씀인지 아리송하지만, 일단 전이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4기임에도 불구하고 전이가 멈춰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과 격려를 받기로 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작용도 적은 편이고 무엇보다도 통증이 전혀 없다는 것도 큰 다행이다. 

어차피 암은 당뇨병처럼 꾸준히 다스려야 하는 병이다.(5년까지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라고 '보지만' 그 후에 재발한 경우도 없지 않다)

겸손하고 꾸준하게 건강을 돌보다 보면.... 언젠가 2010년 12월 17일을 웃으며 회상할 때가 오겠지.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암 투병중이거나 간병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 몰라 우리 나름의 보조치료 방법을 말씀드리자면..

 

1. 넥시아 복용

경희대 동서신약연구소에서 개발한 옻 농축 캡슐로, 혈액암 등 전이암 치료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약으로 치료했던(인과관계는 명확히 밝힐 수 없지만 ^^), 그리고 치료중인 지인들의 간곡한 권고로 12월말부터 복용하기 시작했다.

원래 양방에서는 한방치료나 대체의학적 요법과의 병행치료를 금기시하지만 양방, 한방 협진을 하는 경희대병원측의 경험을 믿기로 한 것인데

현재까지 부작용은 전혀 없고, 더구나 전이도 전혀 진행되지 않은 현재의 상태가 이 약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약은 직접 암의 크기를 줄여주지는 못하지만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막는 데 일정 정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의료보험이 안 되어 엄청 비싸고 단기간에 그 효과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ㅜ.ㅜ    

 

2. 야채스프 복용

식품을 이용하여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 중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방법.

무, 햇볕에 말린 무청과 표고, 당근, 우엉을 넣고 한 시간 정도 끓인 물인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꾸준히 장복하면 효과를 본다고 한다.

좋은 재료 구하는 것도 끓이는 방법도, 보관방법도 까다로워 직접 끓여마시려면 공이 엄청 들어가기 때문에 

스프 끓이는 데 몰두하다 오히려 밥상이 부실해질까봐 걱정이 된 이 약삭빠른 간병인은 생협에서 구매, 150ml씩 세 번 공복에 챙겨주고 있다.   

체력을 지금 정도로 유지할 수 있는 데 이 요법이 일정 정도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다. ^^     

 

3. 뜸

암 세포가 열에 약하기 때문에 온열요법은 보조요법으로 많이 추천되는 방법이다.

남편도 처음엔 이 동네에 흔한 숯가마에 다닐 생각이었는데 체력소모가 많아 반신욕으로 바꿨다가.. 그것도 지친다고 뜸으로 바꿨다.

뜸도 종류가 많지만 저녁에 TV를 보며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왕뜸을 뜬다.

뜸 재료는 일반적인 쑥뜸에서 연기가 너무 많이 나기 때문에 황토로 감싼 쑥을 쓴다.    

 

4. 식사관리

세간에는 '항암식품' 내지 '면역력 강화식품' 리스트가 엄청 떠돌고 있다.

특히 외국에서 수입된 고가의 면역보조제 등은 그것을 구해 먹이지 않으면 정성이 부족한 것처럼 느끼게 할 만한 '전설'들로 포장되어 엄청 팔리고 있는 듯하다.      

헌데 병원에서는 인삼, 차가버섯 등 항암효과가 강력하다고 알려진 식품이나 엑기스 형태로 농축한 건강식품들을 섭취하지 말라고 한다.

개별적으로는 효과가 입증된 것들이라 해도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함께 섭취하면 엄청난 부담이 되거나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식품이라 하더라도 항암효능이 있다고 해서 지나치게 섭취하는 것도 맞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황토로 싸서 구은 마늘을 하루에 30통씩 섭취하고 나았다는 분의 얘기도 들었지만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다.

아무리 효능이 있다고 해도 과다섭취한 식품은 배설되기 마련 아닌가?

상상해보라, 하루에 30통을 먹으려면 한 끼에 10통, 즉 육쪽마늘 기준으로 60쪽씩을 먹었다는 얘긴데.... 과연 그 식사가 즐거울까?   

나는 그냥 '잘 먹이려고'만 한다. 심지어 항암효과가 있다는 식품들조차도 먹기 싫다고 거부하면 굳이 강요하지 않는다.

 

'채소 먹으면 살고 고기 먹으면 죽는다'고 할 정도로 강경하게 육식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만나봤지만

암 예방 음식과 암 치료기간의 음식은 다르며 현재로선 백혈구 수치를 높이기 위해 고단백 식품을 먹어줘야 한다는 선생님의 권고를 따르고 있다.

피하는 것이 있다면 설사를 유발할 수 있는 것(주로 '날것')들 뿐이다.  

 

음식 시중에 관해서는 언제 다시 한번 써야겠다.

어차피 현재 운용되고 있는 암 치료 방법은 거의 대부분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라 

일정부분이라도 의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토대로 하여 노선을 정한 뒤에 일관되게 밀고나가는 게 최선이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5. 맑은 공기, 운동, 즐거운 마음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치료일 것이다.

지금까지 남편의 병 수발 중 가장 잘한 일은 서둘러 공기 맑은 동네로 이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양차 내려온 게 아니라.... 신혼살림 같다는 노후생활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했다 치고 아예 주민등록까지 옮겨버렸다.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친구와 지인들이 가장 많이 해준 격려의 말씀이, "최선생은 의지가 강하니까 꼭 나을 꺼야"....였는데

그때는 그 의미를 '살기 위한 뭔가 특별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게 무엇일까 애를 태웠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납득해가고 있다. 죽고 사는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내는 것이 진짜 사는 길이며

이 깨달음을 실현해내려는 남편의 발걸음에 기꺼운 마음으로 꾸준하게 동행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간병이라는 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