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투병 선배의 조언 이후

張萬玉 2011. 6. 28. 11:17

요양원이 많은 동네다 보니 어쩌면 길가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그것도 같은 암 환자의 신분으로서 마주칠수도 있겠다는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손님이 오면 가끔 모시고 가는 백숙집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남편이 90년대 초반에 알고 지냈던 분이니 대략 20여 년만의 만남인데,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했지만 키도 몸피도 크셨던 당당하던 분이 너무 야위어서

그분이 먼저 남편을 알아본 뒤에야 남편도 겨우 그분을 알아봤단다.

작년 6월에 담낭암을 얻어 우리집에서 8Km 떨어진 에덴요양병원에서 요양중이시라고 했다.   

 

이틀 후... 남편과 함께 문병을 갔고, 우리의 고민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시작되었다기보다는.... 계속 줄어들던 암종 크기가 약간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CT 결과로 인해 생긴 불안에 불이 붙었다고나 할까.

그분 역시 담낭암 4기, 즉 다른 기관(간과 임파절)에 전이가 있어 수술을 할 수 없는 진행성 암 환자로 판정되어

일단 불붙듯 번지는 암의 성장속도를 잡기 위해 항암치료를 시작하셨지만

(항암 부작용이 심해서 그랬는지 항암치료 노선의 한계를 느껴서 그러셨는지)  표준 항암치료는 3차에서 중지하셨고

에덴병원에 입원하여 식이와 운동요법, 고주파 온열요법 등 면역력 강화의 노선으로 바꾸셨다.  

그러나 암이란 성질 급하고 교활한 놈에게 그런 근본적인 대책은 너무도 느긋하거나 고지식했던 건지, 암은 커지고 종양지표도 올라가고....

 

결국 항암 노선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대형병원의 표준치료보다는 좀더 의욕적인 치료를 해보려고

진행성 암 환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병원을 찾아가 동맥 내 항암(보통 항암주사는 정맥을 통한 전신주사이지만 이 경우 약물의 농도를 약하게 해서 종양에 가까운 동맥에 주사를 한다)과 토모 킬(토모 테라피 기기 중 최첨단 기기인 듯.. 이 기기로 저농도 방사선을 암 부위에 쬔다)을 병행하는 치료를 30회 받았는데 그 결과 원발 부위의 암이 없어졌고 종양지표도 뚝 떨어졌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표준치료가 안 듣는 것 같으면 무책임한 병원 처치에 끌려다니지 말고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좀더 공격적으로 원발암을 줄이고 종양지표를 뚝 떨어뜨려놓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이후 투병에 유리하지 않겠는가, 조심스럽게 조언을 하신다. 

 

안 그래도 표준치료가 안 듣게 되면 어쩌나 걱정만 하고 다른 궁리는 일체 안 했던 우리에게 이 조언은 적지 않은 도전으로 다가왔다.

정말 그분 말씀마따나 6센티나 되는 원발암이 깨끗해진다면... 아니 확 줄이기라도 할 수 있다면 적지 않은 비용과 여타 부작용도 감수해볼 만하지 않겠나.

하지만 얼핏 듣기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없진 않았다. 

원발암은 잡았지만 대신 좁쌀만한 암 세포가 복막으로 전이되었고 그녀석을 잡으려고 복막 내 항암을 했는데 그 결과 복수가 차고 황달이 왔다는 것이다.

황달수치만 내려가면 복막 내 항암을 다시 한 번 시도해보겠다고 투병의지를 보이시는 그분의 꾿꾿한 모습이 감동적이긴 했지만

'복막 전이' 및 '복수가 차는' 증상은 개인 차이나 암종의 차이로 치부하기에는 적잖은 부담이 아닐 수 없기에

'도전적인 비표준 치료'에 대한 판단은 그날부터 우리에게 들고있을 수도 놓아버릴 수 없는 펄펄 끓는 냄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는 첨단치료는 임상사례도 많지 않고 예후를 안정적으로 추적했을 만큼 역사도 길지 않을 것이니 판단은 어차피 우리 몫일 수밖에 없는데

뭘 좀 알아야 상담을 받아도 제대로 받겠다 싶어 의료 인맥을 동원하여 이리저리 물어도 보고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지만

속시원한 해답은커녕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10차 외래에서 8차 항암 결과인 CA 199 수치만 확인 한 뒤에 여전히 증가세라면 9차 항암으로 끝을 낼 건지

10차 항암까지 한 뒤 CT 결과까지 보고 정말 약이 안 듣는 건지 확인한 뒤에 끝낼 건지

10차 항암 결과 커졌다 하더라도 신경쓰지 말고 의사가 이끌고 가주면 가주시는 대로.... 칵테일 요법이든 표적치료든 체력 바닥 날 때까지 순순히 따라가볼 것인지....

만일 표준치료를 끝내버리면 이후 어떡할 건지...

강도 높은 항암으로 기를 좀 꺾어놓고 나서 '암이 자라는 토양을 바꾸는' 쪽으로 매진할 것인지

약을 바꾸거나 치료방법을 바꾸더라도 결국 재발과 전이를 반복한다니 더 이상의 항암은 접고 바로 그리 할 것인지.

선택에는 늘 댓가가 뒤따른다. 

안전한 선택도 모험적인 선택도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으며, 무선택 역시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대가를 피해갈 수 없다.

 

어째됐든 샘 병원에 가서 일단 상담은 해보겠지만 결정은 신중하게 할 꺼다.

동맥 내 항암약물도 분명히 몇 개월 못 가 내성이 생길 것이고 전이의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그렇게 암 세포를 공격하고 교란하는 와중에 결정적으로 기세를 꺾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있다면 모를까 결국 그것도 항암치료 아닌가)  

내일 경희대 병원 가는 날이니 담당선생님의 소견부터 좀 들어보고.... (지금까지의 기조로 보아 아마 급격하게 암을 건드리는 데는 반대하실 거다)

(아직 내성 여부가 확인된 건 아니니) 10차 혈액검사 결과도 좀 볼 것이고.... 

 

이상한 건 마음의 매우 소란한 한 편과는 달리 다른 한편은 점점 냉정하고 차분해져간다는 사실이다.

내 옆에 있는 당사자는 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웃음이 더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