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한바퀴 3 - 남해
이틀 전에 달려왔던 길을 되짚어 통영대교를 지나쳐서 서쪽으로 간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날씨 쾌청.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거리를 보고 은근히 놀랬다. (200킬로 정도였나?) 서울에서는 거기가 거긴 줄 알았는데.... (기름값 만만찮겠군.)
그러나 국도 1021번, 1019번에 이어 이 1024번길도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운치있는 길이다.
알고 택한 것도 아닌데 가는 길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니.... 참 운도 좋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드라이브 본능을 원없이 충족시키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대~만족!
남해대교 건너와서 처음 만난 관광명소, 독일인 마을.
전망 훌륭하고 예쁘장한 펜션촌이라는 느낌밖에 안 들었다. 워낙 외제가 판치는 국제화된 세상에 살다 보니 이탈리아식 독일식 펜션이 신기할 것도 없다.
나중에 친구들이랑 놀러올 수도 있으니 숙박가격이나 알아볼까 싶어 한 집의 문을 두드리니
여느 농촌마을에서 만났을 법한 수수한 할머니가 뒷 길로 이어진 가파른 계단에서 내려오신다. 한 손엔 무거운 양동이를 들고 다리를 절며.....
방은 10만원 이하에서 재우면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는 커다란 suite room 밖에 없다고 미안해 하신다.
여기는 독일인마을 인근의 ㅎ 예술촌이다.
입장료가 싸길래 한번 들어가보긴 했지만...... 제일 볼만한 건 입장료 안 내도 되는 요강 구경이었다.
그리고 즉석에서 볶는 커피집의 웃기는 간판.(시력 좋으신 분 눈 크게 뜨고 읽어보셔요)
남해 오는 길에 멸치쌈밥으로 불린 배를 꺼치느라고 이미 한잔 마셨건만, 나도 모르게 뭐 무까, 잠시 고민했다는.... ^^
다음 목적지인 보리암까지는 아직도 십몇킬로가 남았는데 멀리서 특이한 봉우리와 함께 국립공원 표지판과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렇지, 보리암은 금산 정상에 있다. 휴, 금산 정상까지 걸어올라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저 바위 투성이의 가파른 악산을..!!
나는 이제 그렇겐 못 다니네. 굽이굽이 산구비를 돌아 보리암 제1 주차장까지 올라간다.
더 높은 곳에도 주차장이 있지만 차들이 입구에 줄 서 있다고, 셔틀버스를 타라는 권유에 따랐다. (그러길 잘했음)
셔틀버스에서 내려 약간 가파른 길을 1킬로 정도 걸어올라가니 어마어마한 정경이 펼쳐진다.
비슷하지도 않은데 갑자기 태국 치앙라이 인근 푸치파에서 본 일출이 떠오른다.
神氣랄까, 인간의 힘으로 가늠할 수 없는 어떤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지는 지점.
해는 저물고 잘곳을 정하지 않은 나그네의 마음이 서서히 바빠진다.
보리암에서 가다랭이마을까지는 아직도 몇십 킬로가 남아 있다.
Farm Stay 간판을 달고 있는 가천 다랭이마을은 마을 거의 모든 집이 민박 영업을 하는 듯하다..
즐거운 집, 마음 편한 집, 마음이 머무는 집, 해 뜨는 집, 넓은바다 집, 준혁이네 집, 종운네 집, 은희네 집.....
은희네 집엔 사람이 없고 종운네 집엔 비싼 방밖에 없다고 해서 대나무집으로 갔다.
허리가 기역자로 꼬부라진 할아버지가 어서오라고는 하시는데 어째 여자 혼자 다니느냐고 걱정이 늘어지셨다.
요즘 세상에도 그런 걱정들 많이 하시는가? 새삼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이후로도 자주 방문을 두드리셨다.
식당이 일찍 문을 닫아 혹시 밥 못먹었으면 라면이라도 줄까, 김치라도 줄까.... 자기 전에 문 꼭 잠그고 자라.... (할아버지, 저도 내일모레 환갑이라구요.. ㅠ.ㅠ )
자, 그럼 저랑 함께 동네한바퀴 하실까요?
지붕 옆으로 지나가는 동네길, 그리고 옥상 위 주차장... 아틸리아 포지타노에서 많이 본 풍경이다.
농촌 냄새 물씬 풍기는 멋진 벽화들...
(그런데. 벽화에는 있는 소가 정작 마을에는.....?)
최근 다랭이논을 따라 걷는 코스가 개발되었다는데, 하룻밤 찍고 떠날 곳으로 마음 먹고 있었기에 어디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아보지 않았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정답고 아름다운 풍경.
가까이에서 본 다랭이밭(보리인지 마늘인지 잘 모르겠다)
이 마을의 명소 암수바위.
동네 아래쪽에 있는 두 군데 식당(원조 할매막걸리집과 촌할매 막걸리집)을 지나 바닷가로 내려가면 멋진 해안길이 나온다.
검은 차일을 친 집이 아마도 촌할매 막걸리집인 듯...
건녀편 하얀 돔도 눈길을 끈다. 아마도 펜션?
이튿날 아침 일찍 마을을 떠나는데 동네 어귀의 푸른 바다가 배웅 나왔다.
때론 심심한 맛이 소란한 즐거움보다 몸에 착 감긴다. 푸근하고 따스했던 남해에서의 하룻밤.
이제 차머리는 서북쪽으로 향한다. 섬진강 매화길을 돌아보고 서쪽으로 몹시 달려 이번 여행의 종점에 닿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