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유럽

민박집 이야기

張萬玉 2009. 3. 2. 10:28

정말 용감하세요 : 느네는 혼자 출장다니는 사람 보고도 용감하다고 그러니? 왜 여자라고 혼자 못 다녀?

하긴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도 협력자가 나오긴 하지. 나도 협력자들을 눈밝게 알아보고 눈밝게 조직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수다의 기술.

 

사람의 선택 : 수수한 차림, 혼자 있는 사람, 나이 좀 든 사람. 한 공간에 오래 같이 있을 때, 이동시거나 바쁠 때는 말 걸지 말 것 

심심한 거 즐기는 사람, 커플은 피하고

특히 커플 중 남자에게 말 걸면 남자는 눈치보고 여자는 쌩해지기 마련이니 물론 남자가 더 친절하지만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걸을 것. 

말 거는 요령 : 한 공간을 오래 공유할 운명에 있을 때가 가장 유리한 조건/ 같은 호스텔, 같은 기차, 같은 투어 등등 

가벼운 도움을 청하거나 가벼운 도움을 주면서 말 트기 : 과하면 의심 받거나 부담을 준다. 물어보는 것도 기본적인 것을 물어보면 얕잡힌다. 알 것이 분명한 전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나도 초보는 아니라는 것을 살짝 보여주되 처음부터 자랑하면 못쓴다.

여행 많이 하는 사람, 혹은 작가 냄새를 약간 풍겨주는 것도 상대방의 흥미를 유발하고 나에 대한 대접을 달리하게 만드는 요인

처음부터 말을 많이 하면 기피인물이 되거나 곧 어색한 침묵이 찾아올 수 있으니 처음에 말만 좀 트고 어느 시점에서 상대방이 신나서 떠들도록 한다.

 

무섭다는데... : 무서우면 돈 단속. 무서워봐야 유럽에선 소매치기니 돈 있는 곳에 신경을 집중시키되 겁먹을 건 없다. 요즘애들은 어디다 잘 두고 다니는데 그건 당연히 분실하려는 수작이다.   

 

호스텔 언니 말에 따르면

탐험이냐 탐심이냐 : 몇년 전만 해도 호스텔을 찾는 배낭여행객들 보고 도미토리 위주로 시작한 민박들 / 지금은 더블룸 혹은 싱글룸이 대세

호스텔 규칙 안 따르려면 왜 싼 데 와서... 그런 사람 얘기들은 참고로만 할 것, 싫어할 것도 없고...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라

나도 궁상 혹은 철지난 낭만을 구가하는 고리타분한 인간으로 보겠지... 라는 생각이 들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것.

나다운 스타일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누려라. 점점 더 차별화되는 나에게 익숙한 스타일 / 과감하게, 그러나 여유있게 즐겨라.

 

이탈리아에 흘러들어온 사람들 이야기 : 매력적인 호스텔 언니 / 미국화교 / 조선족 언니

 

이탈리아의 웃기는 물건들 : 구급차, 가로등, 비데

 

 

구 멤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신 멤버 세 병 들어옴. 한 명은 어설프게 겉멋든 노처녀. 엄청 시끄럽다. 별로 준비도 안 해가지고 와서 아주 기본적인 것까지 귀찮게 묻고... 그리고 익살맞게 보이는 발랄한 20세 초반 둘이 들어왔다. 모두 나에게 호의적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제일 오래되어서 방장 격. ㅎㅎ

 

조선족 음식 하나 빼고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흡연공간, 물 보충, 충분한 소켓, 충분한 샤워공간, 무엇보다도 따뜻해서 행복.

호스텔에 묵을 때는 자러 들어온다는 컨셉이지만 한인민박은 멤버들과 서먹한 관계만 일단 익히고 나면 집에 오는 기분이다.

 

술주정

 

10시 반이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든다.

오늘 와인파티 한다더니 주방 쪽에서는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궁금한 사람이 있다거나 이곳에 머물 동안 좀 부드럽게 지내기 위한 필요를 느낀다면 나가서 어울려도 큰 문제 없지만(이미 내 자리를 찾았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애들은 내가 당연히 안 낄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잘 됐다. 떠들든 말든 고맙게도 하루의 피로는 토스카니도 몇장 못 읽게 하고 달콤하게 꿈나라로 모셔갔는데

자다 보니 옆 침대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점점 커지더니 화장실 들어가서 토. 내가 들어가봐줘야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여행 와서 친구가 되었다는 아해가 들어가 등을 두드려주며, "괜찮아?" 연발. 더 시끄러워지는 줄도 모르고 

동행의 고통은 안타깝고 숙면을 취해야 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는 어린애 스러움.

나가서 사장언니 부르고 난리를 친다. 모두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보니 붉은 포도주자국이 피를 토한 것처럼 낭자하다.

언니는 한밤중에 토한 이불 치우고 화장실 치우면서도 얼마나 짜증이 날까마는 일단 체한 애 걱정하며 달래준다.

점입가경으로 술에 취한 이녀석은 흐느껴 울며 오빠 보고싶어를 연발... 한 시간 가까이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결국 언니가 다른 사람 자야 한다고 혼을 낸 뒤 사태 진정.

좀 조용히 하라거나 이불 뒤집어쓰며 항의 표시를 하면 냉정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건가?

내 아기가 아픈데 걱정 표시 안 하고 줄 서라고 하면 나쁜 사람 되는 건가?

아픈 사람을 위해주는 것과 공익추구 간의 갭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개인주의가 발달한 요즘 세상에서 공익에 대한 교육이 안 되면 그거 막 무지르면서도 해맑게 웃는 세대들 속에 있으면 할말을 잃게 된다. 공익에 해만 안 되면 하긴 어이가 없어도 뭐라고 할 수 없지. 그럴 경우에는 우리의 관점을 한번 뒤집어봐야 하고

그들이 이유있으면 입을 다물어야 하고 그래도 내 소신이 가치를 같는다는 확신이 서면 젊은세대와 대화를 해야 한다. 그게 우리 세대의 몫이다. 훈시가 아니라 토론을 해야 할 것이다.

 

하긴 여행길에서도 한국애들 대하기가 제일 어렵잖던가 말이지.  

 

... 대인관계가 익숙지 않아 그런 점도 있지만 남 도와주는 것도 익숙지 않지만 그런 만큼 남에게 도움 청할 엄두도 잘 못 낸단다.  

남의 일엔 관심 꺼주는 게 상식이고 예의라네. 아하, 그래서 여행길에서 만난 20대들 태반이 그렇게 쌔~ 했던 것이로구나.

세상이 확실히 변했다.

나도 지나친 친절이나 관심이 부담스럽고 경우없이 얽혀드는 사람들이 딱 질색인 쌀쌀맞은 도시 현대인이지만

가끔은 그 끈끈함이 간절히 그리워지기도 하니 갈데없는 20세기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겠다.   

  '프라이버시'의 영역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어진 요즘 나는 어디까지가 실례하지 않을 수 있는 영역인지 가끔 헷갈린다.   

 

겁없는 소비의 실체

거리를 다니다 보면 참 눈 베리겠다는 생각 많이 한다. 일부러 외면하고 다니고 사진도 안 찍었다.

G 세대들은 소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 모든 축복들은 다 우리를 위한 것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 하는 노력은 아름답다.

그러나 과연 그 몇백 유로 하는 백을 기를 쓰고 알바 해서 소유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나는 암만 생각해도 모르겠다. 백만 있으면 뭐하나, 옷이 완벽하게 코디되어야 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애티튜드가 있어야 하며 그 애티튜드는 일상으로 배어든 우아한 사고방식에서 나와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코디하지 않으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내지는 상류계층의 얄팍한 흉내밖에 안 되는 것이다. 패리스 힐튼 따라하기.... 정말 자존심 상하는 카피 아닌가? 나는 나인데 왜 패리스 힐튼을 따라해야 하는 건지?

 

하지만 일면 물건을 고르지 못하는 저질안목의 열패감 또한 없지 않다. 물론 소비사회 속에서 형성된 가성근시이긴 하겠으나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히 열패감을 안겨준다. 미의식이 함량미달이라는 표시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도 적잖이 쪽팔리는 일이다.

게다가 아들 쟈켓 60유로, 남편 넥타이 20유로를 놓고 벌벌 떠는 사장님 사모님이라니... 이건 좀 문제 아닌가 말이지.

사봐야 살 줄 아는 것인데... 이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약점으로 치부하고 말까?

여행 스타일로 봐도 큰 캐리어에 각종 화장품, 드라이기, 분위기에 맞는 패션은 물론 그 디테일까지 알뜰하게 챙겨오는 센스 있는 아가씨들.

때로는 그 센스가 부럽고 삶에 대한 부지런함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몸이 좀 고생하면서 럭셔리하게 사는 부지런함.

미아의 여행가방, 남현씨의 차 뒷좌석. 차에서도 호텔같이. 뭐 그건 좋다 부러워할 미덕이기도 하지.

그러나 유럽의 계단이 무서워 배낭을 메다 보니 옷 세 벌을 가지고 번갈아 빨아입으려니 세면대에서 조물락 조물락이 참 옹색하기도 그지없다.

빨래를 맡기려고 해도 몇 푼 아끼자가 아니라 무게가 어느 정도 나와야 그것도 맡기지 빨래 안 하고 묵혀둘 만큼 옷을 갖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이 할미 체면이 말이 아니다. ㅎㅎ

 

공주가 되려면 자아가 더 커져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거기에 맞춰 관심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욕구, 자신의 개성을 중심에 두고 상황을 ㅈㅇ악할 때만이 공주의 위엄이 생긴다. 이기적인 것과는 다른 이야기.

짝눈을 고칠 수 없으면 짝눈 컨셉으로 갈 것. 그래야 아우라가 생기고 약점이 개성이 된다. 여행 스타일도 마찬가지.

 

 

하긴 나도 이제 좀 꾀가 늘었는지 어젯밤처럼 새벽까지 술 마시고 떠들며 시도때도 없이 드나드는 호스텔 방이 가끔은 질리기도 한다.

가끔은 싱글 내지는 최소한 4인 이하의 프라이빗 룸에서 이층 없는 침대에 허리 펴고 앉아 물건 다 펴놓고 실컷 정리하고 싶고 샤워할 때 최소한 옷을 젖지 않게 걸어둘 만한 공간이 있는 곳에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며 샤워하고 싶다. 그러나 이 정도의 조건조차 충족해주지 못하는 호스텔이 꽤 있으며 싼 호스텔일수록 그러려니 해야 하므로 숙소 비용을 30유로 정도로 상향조정해볼까 하는 유혹도 가끔 든다.

 

그러나 비즈니스 석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 것처럼 호스텔에서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메익 마이셀프 앳홈 하는 부지런함이야말로 젊은 마음의 표상이 아닐까 한다.

아이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나 따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세태의 변화이며 내가 엄마 세대에서 느꼈던 고리타분함과 답답함과 가련함이 아닐까 싶다. 이미 장기 배낭여행은 지나간 시대의 코다가 아닐까 한다. 풍요로운 시대의 여행 컨셉은 트렁크에 비행기로 날아다니며 쇼핑하는 뛰어난 센스.. 뭐 그런 거 아닐까.

아무도 배낭 지고 정처없이 흘러다니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아무러면 어떠냐, 나는 내 스타일로 인생의 모험을 즐기고 있다. 모험 없는 안전한 여행은 결단코 네버, 네버 내 흥미를 끌지 못한다. 나의 것으로 연관짓지 못하는 어떤 명품도 날 열광시키지 못한다. 아이쇼핑은 지루한 활동일 뿐이다.

편협하다고? 하지만 그게 나인 걸 어쩌니..  아이쇼핑을 즐기게 되는 것은 취향인가 이 시대 교양의 하나인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