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7 - 피렌체 2 : 여기저기
피렌체에서의 셋째날.
우피치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줄을 한나절 서야 한다고 들었기에, 밥 숟가락 놓자마자 우피치로 달려간다는 게... 길을 잘못들어 완전 멀리 갔다.
내가 방향 보는 데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이 이상한 방사선 도시(정확히 방사선도 아니다)는 시뇨리아 광장 가는 길에서 쬐끔 벗어났다고
당장 다른 방향으로 틀어 베키오 다리가 세 개 너머 보이는 지점까지 데려다놓는다.
덕분에 흰 차일을 치고 장사를 준비하는 노점들을 만났다.
피렌체 인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토요일마다 여는 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신난다, 오늘이 토요일이구나.
박물관 다녀와서 여기서 점심 먹고 놀아야겠다. 역시 나는 여행운이 좋다. 길을 헤매도 떡이 나온다.
우피치에 도착하니 8시가 좀 넘었다.
줄은 생각했던 것보다 길진 않았다. 3미터 정도? 30분이 조금 넘어서 입장했다.
관람객들은 우선 2층으로 올라가 디귿자 방들을 지나서 1층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2층 디귿자 끝에는 옥상과 커피숍이 있다.
제일 먼저 나타난 목판화덜은 가는 금색 선 장식과 푸른초록색, 빨강색이 주종을 이루는 평면적인 화법,
내가 볼 줄을 몰라서 그런지 좀 지루했다. 똑같은 주제.
왜 그렇게 그때 사람들은 수태고지와 성모마리아/ 아기예수 주제에 집착했는지 궁금하다.
1500년대로 오니 그림들이 조금 볼만해졌다. 회화는 표현주의 이전, 일단 사진처럼 보이는 단계에 이르기도록 시간이 상당히 걸린 것 같다.
그리스 로마 신화 테마가 등장하고 입체감, 양감이 더해지면서 조금씩 흥미로워졌다. 램브란트 자화상 두 개가 가장 기억에 남고.....
일단 그림들이 큼직큼직해지니까 디테일은 둘째치고 걸어놓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위엄이 살겠다.
카라밧지오의 그림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아줌마 둘이 목 자르는 그림이 지금도 생각나는데 제목이 뭐였더라?
오히려 조각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로마 카피라고는 하지만 대리석을 가지고 어떻게 저렇게 다리 근육(뼈와 근육이 붙은 부분)을 섬세하고 살아 있는 것처럼 묘사했을까.
발 시렵지? 하고 만져주고 싶더라니까. ㅎㅎ
우피치 미술관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우피치 미술관 기념사진이라곤 옥상에서 비둘기를 쫓아다니던 요 꼬마 사진 뿐이다. (클릭해서 보세요)
그리고 미술관 앞에서 생계를 구하는 조금 슬퍼 보이는 사람들...
"이봐요, 여기서 영업하지 말라니까!"
"나으리, 10분만 있다 가면 안 될까요?"
우피치에서 나와 아침에 봐뒀던 벼룩시장으로 갔다.
홈메이드 치즈와 햄, 수제 비누, 향주머니, 손뜨게와 직접 깎아 만든 목공예품들, 허브 화분들, 소장하고 있던 중고CD 등 구색도 다양하고 안 예쁜 게 한 개도 없다. .
쇼핑이 별로인 나지만 자연주의적 소박함과 소녀취향이 물씬 풍기는 매대 앞에서 잠깐 정신줄을 놓았다니까. ^^
루까에서 왔다는 눈이 고운 아가씨.
사진 찍으라고 포즈도 취해주고 자기 마을에도 놀러오라고 한다.
역시 자발적으로 포즈를 취해주시는 아저씨.
까막눈이라 무슨 현수막인지... ㅜ.ㅜ
아펜니노 산맥 마을에서 왔다는 예쁜 아줌마들이 밤가루 반죽에 크림치즈를 넣은 끄레뻬를 만들어 팔고 있다.
하나 사서 먹어보니 따끈하고 부드럽고 고소하고... 흠~
확실히 시골 사람들이라 그런지 소탈하고 친절하다. 이런저런 수다를 붙여보니 고맙게도 아예 옆에 의자까지 내어주고...
이탈리아사람 답지 않은 매끈한 영어로 자기네 마을 자랑을 하며 놀러오란다.
아는 사람도 없는 동네 가면 심심하다고 하니까 자기 전화번호까지 적어주며 와서 연락하면 집에도 데려가고 놀아주겠다고 한다.
귀가 솔깃했지만 버스편도 드물고 너무 멀어 엄두가 안 난다. 다른 일정 제껴두고 그냥 이런 데 확 묻어가야 하는데....
지금 같으면 분명히 그랬을 텐데.... 당시엔 왜 그리 소심하게 일정에 연연했는지...
그 소문 짜한 산 로렌초 광장 주변의 가죽시장.
구두, 가방, 지갑 등 가죽 제품이 진짜 너무 싸다.
이탈리아에서 쇼핑 안 하면 손해보는 거라고들 한다. 그래서 숙소 아이들은 매일 기차역 앞에서 떠나는 11유로짜리 아울렛행 버스를 탄다.
어떤 애는 집에 전화 걸어서 돈을 보내달라고 하기도 하고 전화 속의 어떤 엄마는 10개 사오라고도 한다.
리퍼블릭 광장 앞에 있는 앤드류 타이의 19불짜리 넥타이가 한국 가면 두 배 넘는 가격으로 팔린다네.
이제 여행 초입인 나는 배낭 무거워질까봐 아무것도 살 엄두를 안 내고 그러다 보니 쇼핑거리도 설렁설렁 지나쳐간다. 난 정말 여자도 아닌개벼. ^^
영업세 올린다고 산 로렌초 광장 앞 노점상들이 파업을 하고 있었다.
휴~ 먹고 살기 힘들다....
무심히 지나치는 평범한 집들조차 조상의 손길이 깃든 집들이다. 창문장식 하나, 문짝에 새겨진 문양 하나도 그냥 안 넘어가고 정성들여 멋을 부린....
이탈리아 사람들은 조상으로부터 풍부한 문화유산뿐 아니라 '미술유전자'까지 물려받은 것 같다.
보이는 모든 것들에서 품격이 넘쳐난다. 옷이나 장식품 뿐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용품까지도 내 눈엔 '작품'으로 보인다.
게다가 르네상스 시대의 부호 메디치家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니! 어찌 자신의 생활 구석구석까지 정성을 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이탈리아 사람들 특유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감은 바로 거기에 뿌리내리고 있는 듯하다.
관광객으로부터 구두를 주문받자 이탈리아 장인의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하던 구둣방 할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화요일엔 벨기에로 떠나요'란 영화였던가?
# 내 시선에 걸린 길거리 명물들
썩는 비닐을 이용한 거리 휴지통.
아이디어가 좋아보인다. 이거 우리 나라에서도 좀 하지, 했는데 여행 다녀온 후 우리나라에서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다.
가로등 아랫부분
(앞치마, 혹은 남성용 트렁크에 그것이 덮는 지점의 신체를 사실적으로 그린 기념품.
하도 웃겨서 하나 사볼까 망설이다 패스해버렸는데 이 역시 이탈리아 아니면 살 수 없는 명물이 아니었을까 싶은 게 좀 아쉽다눈... ㅋ)
몹시 시끄러운 앰뷸런스. 이거 지나갈 때면 혼이 쏙 빠진다.
집시들
그리고 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