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유럽

이탈리아 9 - 산지미냐노

張萬玉 2009. 3. 3. 10:51

8시 10분 포지본시행 기차를 타러가는 길에 내일 탈 니스행 유레일 예약까지 하려니 마음이 바빴다.

헌데 설상가상 다른 구간 같지 않게 뭔가 절차가 좀 까다롭다. 

니스까지 가는 열차시간이 독일 철도청에서 보여준 열차시간표와는 많이 다르게... 3번이나 갈아타야 한단다.

게다가 첫 기차와 마지막 기차는 예약을 안 해도 되는 지방열차이고 두번째 세 번째만 예약을 해야 한다는데

구체적인 시간을 좀 알려달라니까 역무원 아저씨가 영어가 잘 안 되는지 거북해하면서 구체적인 시간을 안내창구에서 확실하게 알아본 다음에 자기에게 얘기하란다.

바빠죽겠는데.... 노인이 담당하는 창구 앞에 서면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

그래도 시간 되는 데까지 해보자 하고 인폼에 가서 피렌체에서 피사까지, 피사에서 제노바까지, 제노바에서 벤티밀리아까지, 벤티밀리아에서 니스까지... 

이렇게 시간을 각각 받아들고 와서 겨우 예약을 마쳤다.

포지본시에서 산지미냐노 갈 때는 버스를 탄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기차편도 버스편도 많았다.

버스에서 샤먼 출신 유학생과 그녀의 룸메이트인 인도네시아, 인도 아가씨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사이에   

아름다운 벌판에 시선 한번 못 주고 금세 산지미냐노 도착.

 

산골마을 아니랄까봐 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늘어선 기념품 매장을 멧돼지들이 지키고 있다. ㅎㅎ

 

 

음, 제대로 고색창연.... 마을 입구부터 마음에 든다.

피렌체의 부호들의 성채는 무지막지하게 큰 돌로 쌓아올려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지만

이 마을의 성곽과 건축물들은 작은 벽돌돌로 쌓아올려진 것이라 웬지 가엾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산지미냐노는 성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성 안만 돌아보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고 박물관과 종탑까지 꼼꼼하게 돌아본다고 해도 두 시간이면 '구경'은 다 끝난다.

 

 

 

마을의 중심이 되는 교회 앞 광장

 

 

마을 전망을 보려고 교회 옆 종탑에 올라가려니 종탑 아래층의 미술관과 마을에 있는 에트루리아 박물관 표까지 함께 묶어 판다.

사실 종탑에 굳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마을 전망을 즐길 만한 곳은 많아 보이지만, 성화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고 우피치 미술관에서 실컷 보긴 했지만

이 작은 마을에서 가장 큰 볼거리라니 살짝 애처러운 마음이 들어 티켓을 샀다.

그래도 사진은 얼마든지 찍으라고 하여 인상적인 작품 몇 점이 사진으로 남았넹...

 

 

 

 

 

 

 

 

 

 

 

 

이건 그림이 아니고 실제상황이다. ^^

 

 

숙소의 룸메이트 아가씨 둘을 만났다.

남미여행 때는 룸메이트들이 오늘 어디서 시간을 보낼 건지 시시콜콜 점검을 하고 나서는데 이상하게 유럽땅에 오니 각자 노는 분위기다.

오늘 여기 오는 줄 알았으면 출발을 같이했을수도 있는데.....(하긴 그런다고 뭐가 다르랴.)

그래도 같은 숙소 출신이라고 이 할미를 반가워해주니 고마울 따름. 

아가씨들은 이 마을이 심심하다고 오후엔 시에나로 간단다.

조각피자로 점심 때우며 이런저런 얘기. 둘 다 직장 다니다가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상태라 걱정들이 많다.     

 

 

 

동네 골목길에 신호등이라니!!

 

여기는 마을 경찰서다. 멋지구리!!

 

 

이 작은 마을에 '범죄 박물관' 이 두 군데나 있다. 기웃거려보니 형벌과 고문을 위한 기구들을 전시한 곳인 듯하다.

난 이런 데 시르다. 공짜라도 안 들어간다.

 

 

에트루리아 박물관도 빈약한 편인 데다 해설이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서 뭐가뭔지도 모르고 바보처럼 돌아봤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에트루리아인의 유물들은 대영박물관에 많이 있다)  1

 

 

 

박물관에는 산지미냐노 출신 미술가들의 작품도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2를 형상화한 작품 같다.

 

 

왠지 윤사월3을 연상시키는 그림. 문설주가 아니라 문지방이지만.... 

조선땅이든 이탈리아땅이든 한적한 마을에 묻혀사는 처자들의 마음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마을 구경이 끝나갈 때쯤 성곽 바깥쪽으로 나가는 길을 발견했다.

여기가 김남희씨가 홀려서 걷던 길의 시작이었겠구나.

(나도 김남희씨처럼 농가나 수도원에서 1박 정도 해보고 싶었지만 농가는 대개 이틀 이상의 숙박자만 받기 때문에 그노무 '일정상' 포기했다.

한편 <토스카나>를 읽고 나니 농가 민박을 못해봤다고 해서 그렇게 서운할 일은 없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

 

나도 김남희씨 제안대로 성 외곽을 따라 잠시나마 걸어보기로 했다. 푸르게 펼쳐진 구릉을 바라보며 걷다가 둔덕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나의 욕구에 충실한 시간이 주는 충만감으로 행복한 오후였다.

살구꽃도 활짝 피었다. '투스카나의 태양'만 있었다면 100점이었겠지만 비가 내리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

 

 

건너 산비탈을 바라보며 한참을 음악에 빠져들었던 벤치

 

성곽 밖에서 바라본 마을

 

그렇게도 동경했던 투스카니의 초원인데.... 이렇게밖에 못 찍다니...ㅜ.ㅜ

 

말이 통하는 동네였으면 미친 척 문을 두드려 물 한 모금 청했을지도 모른다.

 

길 가에서 발견한 포도주 저장고 입구. 

 

 

3시 반 버스 타고 포지본시 역까지 나오긴 했는데 피렌체 가는 기차가 다섯 시 40분에나 있다고 해서 포지본시 마을로 들어가 정찰.

산지미냐노 성곽길을 따라 두 시간 가까이 걸었던 탓에 다리가 아파 간단히 둘러보긴 했지만 이곳 역시 아름답고 한가로운 전형적인 토스카나의 농촌임을 느낄 수 있었다.

푸른 구릉 위에 단 한 채 당당히 서 있는 농가의 모습은 성채 못지 않은 위용을 보여준다.

인구 천몇 명이라는 작은 마을들도 다 제각각의 자부심을 가지고 자존하는 모습. 참 좋아 보인다.

 

포지본시 가는 길목에도 구릉 위로 간간이 이런 성채가 보인다.

 

포지본시도 외벽을 시멘트로 싸바른 것 말고는 동네 골목 분위기가 산지미냐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뭘 봐, 내가 이상해?

 

오늘의 교훈 :  갈아타기와 기다리기를 두려워하거나 번거로워하지 말지어다.

어차피 여행자가 할일 뭐 있나. 새로운 경험과 배움은 마음만 열려 있으면 어디서나 온다. 괜히 분주하게 옮겨다닌다고 많이 배우는 게 아니다.

  1. 이탈리아 에트루리아(아펜니노 산맥의 서쪽과 남쪽에 있는 테베레 강과 아르노 강 사이의 지방)에 살던 고대 민족. BC 800년에 소아시아에서 에트루리아를 침입해 원주민들을 지배하게 된 종족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이들의 도시문명은 BC 6세기에 절정에 이르러 번창하는 상업 및 농경문명을 이룩하였고 고유의 문자를 사용했다. 그들의 무덤에서 발견된 프레스코와 사실적인 테라코타 초상들은 그들의 예술적인 업적을 보여준다. 이들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반도에서 세력을 잡은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 문화의 많은 장점을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본문으로]
  2. 이카루스는 뛰어난 장인이었던 다이달로스의 아들.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의 미움을 받아 자신이 만든 미궁에 아들과 함께 갇히게 된다.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힌 후, 날개를 만들어 이카루스와 함께 하늘을 날아 미궁을 탈출하게 된다. 이 때 다이달로슨느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이 밀납을 녹여 떨어질 것을 경고하였으나 하늘을 나는 기분에 도취되었던 이카루스는 계속 고도를 높였고, 결국 이카루스는 순간의 비상을 맛본 후 밀납이 녹아 떨어져 죽게 되었다. [본문으로]
  3. 박목월의 시.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 문설주에 기대어 엿듣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