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유럽

스위스 1 - 라우터부르넨 / 융프라우요흐

張萬玉 2009. 3. 3. 11:35

4인실 쿠셋 칸에 달랑 나랑 인도 아줌마 뿐이다.

처음 타보는 쿠셋 칸이 신기해서 세면대에서 손도 씻어보고, 잘 시간도 안 됐는데 의자 뒤쪽 서랍식 침대도 꺼내보고.......

이부자리도 깨끗하고 푹신한 게 웬만한 호스텔보다 낫다.  

 

 

 

나보다 세 살 위인 아줌마는 남편과 여행중인데 예약을 잘못 했는지 남편은 다른 칸에 있단다.

내외간에 같이 지내라고 표 바꿔줄까, 물어보니 불편 끼칠 수 없다고 정중히 사양.

이들은 브라만 계급인데 성직에 종사하지 않고 사업을 한다.

내가 작년에 뭄바이 여행을 계획했다가 폭발사고 나는 통에 남편이 반대해서 못 갔다니까 자기 집이 뭄바이 근교에 있다고 남편이랑 놀러오라고 한다. 

일주일 간 잔치를 열어주겠다는데 빈 말 같이 안 들리는 것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인도영화에서 보았던 대단한 부잣집 스토리가 구구절절 튀어나오는 거다. 

자기네가 살던 성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기네는 성을 하나 새로 사서 이러저러하게 꾸몄다는 둥, 자동차 인테리어 사업을 한다는데 그 규모도 유럽 각지와 상하이까지 넘나들고...... 사업의 주도권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해외 거래처 순방을 구실로 아내와 세계 각국을 주유하고 있다네.

아저씨 영어는 그런대로 들을 만한데 아줌마 영어는 많이 괴로워서, 아저씨가 자기 칸으로 돌아간 뒤에는 잠을 핑게로 좀 피해볼까 하지만

오랜만에 말동무를 만났다 싶었는지 아줌마의 수다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겠는데)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진짜 한번 놀러가서 영화에 나오는 뻑적지근한 잔치상 한번 받아볼까, 부자 인도인을 한번 친구로 둬볼까 싶은 생각이 없잖아 있었지만... 걍 접고 말았다.

편견에 속할 발언 한 마디 해볼까. 솔직이 여행을 통해 만난 인도인들을 통해 나는 인도인과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세계관이니 가치관이니 이런 것과는 별도로,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사회적인 매너가 내겐 영 낯설다.

자기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을 엄청 챙기는 반면 그 외 사람들에게는 최소한의 배려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도 내가 그리 완고한 사람은 아니니 언젠가 이런 편견이 깨질 날이 오기를......  

            

밤새 달리던 기차는 새벽녘에 프랑스 국경을 넘고, 아침을 먹고 나니 스위스 국경을 넘고......

그리고는 창밖으로 아름다운 호수 풍경을 펼쳐놓기 시작한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라우터부르넨 행 bob열차로 환승한 뒤 20분쯤 달리니 목적지인 라우터부르넨 역이다.

특급열차로도 열 몇 시간 걸리는 긴 여정이지만 침대열차 덕에 편안하게 왔다.  

숙소로 정한 Valley Hostel은 역사 바로 뒤쪽. 내가 훌륭한 호스텔에 대해 던지는 찬사 '호텔급 호스텔'을 넘어 '별장급 호스텔'이다. 

 

 

도착한 시간이 1시였는데 아뿔싸! 12시부터 4시까지(씩이나!) 리셉션이 쉰다네.

배도 고프고 밤새 야간열차와 인도 아줌마 수다에 시달린 끝이라 잠이 마구 쏟아지는데 사람이 없으니 뭘 어째볼 도리가 없다.

문을 두드리다 보니 식당이 열려 있길래 슬그머니 스며들어가 의자 붙여놓고는 한숨 달게 잤다.    

 

 

 

 

'에구, 그렇게 힘드셨세요?'

상냥한 리셥션 아가씨는 이 호스텔의 안주인이다. 좀 친해진 다음에, (통통한... 이 말은 안 했음) 맥라이언 닮았다고 하니까 되게 좋아한다. ^^ 

 

 

# 라우터브루넨

 

스위스에서는 우선 은행업무를 봐야 한다. 금융업을 주로 하는 나라라서가 아니라 이 나라는 유로화를 쓰지 않기 때문에......

돈값도 비싸고 물가도 비싼 나라라 지폐 한 장 뽑아쓰려면 후덜덜이다.

융프라우요흐 티켓값과 숙박비 포함해서 350스위스프랑을 인출하면서 더 이상의 스위스돈 인출은 없으리라고 다짐해본다.

 

 

다음으로 급한 일은 장 보기. 이 마을의 유일한 마켓 Coop이 저녁 6시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서둘러 장을 보고 기차역으로 내려가 내일 갈 융프라우요흐 티켓을 끊고나서야 동네 한바퀴에 나선다.

융프라우요흐 티켓값이 다른 봉우리 입장료에 비해 많이 비싸다. 유레일 쓴다고 할인 받아서 127스위스프랑.

굳이 이 봉우리여야 할까... 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지만, 잘 모르니 남들 따라서 가는 거다.

 

 

 

 

 

 

창밖으로 마주 보이는 동네 쪽으로 올라가다 눈에 띄는 집 마당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염소를 돌보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나라 시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미소로 아는체를 해주신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숙소에선 삼삼오오 모여들어 정보교류 및 단합대회를 벌이기 시작한다.   

세계일주중인 김군과 맥주 한 잔 하고 있는데 한국 아줌마 아저씨들 십여 명이 한 짐 챙겨들고 식당에 나타났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한국 등산객의 포스가 순식간에 식당을 압도한다.

한쪽에선 밥 안치고 한쪽에선 상추 한 다라이 씻어제끼고 한쪽에선 고기 굽고 쌈장 챙기고......

오남매 부부 다섯 쌍이 순식간에 차려낸 푸짐한 저녁상에 세계 각국 여행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팩소주 곁들여 화기애애한 저녁식사를 즐긴 다음 설겆이도 완전 뽀득뽀득 반짝반짝하게...  

 

헌데 뒤이어 이 막강한 한국팀을 능가하는 프랑스팀이 등장했으니......

이들도 십여 명 되는 가족팀이다. 식재료를 어마어마하게 챙겨왔는데 누구누구 생일이라고 했다.

테이블 세팅을 밤 열 시부터 시작하여 교양 있는 프랑스인답지 않게 부어라 마셔라 새벽까지 질펀하게 노는 소리가 들렸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식당에 내려가보니 간밤의 흔적을 깔끔하게 지웠을 뿐 아니라 언제 그랬는지 테이블마다 들꽃을 한주먹씩 꺾어다가 꽂아놨더라는......       

 

# 융프라우요흐

 

숙소 뒷쪽에 있는 라우터브루넨 역에서 BOB 열차를 타니 클라이네 샤이데크역까지 올라간다(중간에 두 번쯤 전망 보라고 세워준다).

 

 

 

클라이네 샤이데크 역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 가는 톱니바퀴 열차로 환승해서 다시 낑낑....

 

  

 

 

 

 

 

 

 

 

 

 

# 그린델발트

돌아가는 길에 클라이네 샤이데크 역에서 올라올 때와 다른 방향을 택해 그린델발트에서 내렸다. 

 

동화 속에나 나올 듯 조그마한 간이역   

 

 

이런 마을에서 살면 심성이 달라지려나?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밖에 안 되는 소년이 엄마를 도와 제초작업을 하고 있다.

 

 

 

와우~ 잊지 못할 한 장면. 어느 집이 공사를 하는데 건축자재를 (아마도 콘크리트인 듯) 헬기로 수송한다.

산악국가라 그렇군! 아니, 선진국이라 그렇군! 아니, 둘 다라 그렇군..

 

그린델발트에서 두 시간 정도 놀다가 다시 BOB열차를 타고 오늘 아침 출발했던 라우터부르넨을 지나쳐서 인터라켄에서 하차.

워낙 수려한 동네에 있어놔서 그런지 인터라켄 시내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패러글라이딩이 많은 동네. 귀여운 원숭이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난 아직도 이런 인형이 좋아죽는다. 비싸서 구경만......

 

"융프라우요흐 가기 전의 마지막......"

저게 저 정도의 절박함일까, 의아해 하는 것은 나의 몰이해? 

 

수퍼가 문 닫을까봐 돌아오자마자 수퍼부터 들러, 풀 먹는 소라고 큰 맘 먹고 제일 좋은 부위로 딱 한 점 구매했는데(한국 쇠고기값과 비슷)

공교롭게도 룸메이트가 된 중국 아가씨가 6시 넘어서 도착했다. 쫄쫄 굶게 놔둘 순 없고...... 손 달달 떨며 반 점 나눠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