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 부다페스트
# 부다 지역을 폭풍질주 한 사연
부다페스트역에 도착하여 프라하 가는 열차를 예약하면서 예약비를 유로화로 냈더니 거스름돈을 헝가리 돈으로 주길래
일단 그걸로 차비는 되겠다 싶어 역에서 헝가리 돈 인출 안 하고 빈 지갑인 채 숙소에 들어갔다.
고작 2박 3일 체류예정인데 헝가리 물가나 돈 가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괜히 유로화 지역의 물가감각으로 너무 많이 뺐다가 재환전하는 사태가 벌어질까봐
얼마 정도 인출할지 어디서 인출해야 유리한지 숙소에서 알아본 뒤에 하려고.
그런데 숙소 주변엔 현금인출기가 없네.
나중에 페스트 지역(강 건너 쪽 신시가지)으로 나가 보니 널린 게 현금지급기던데, 하필 부다 지역으로 먼저 건너가는 바람에......
마차시 교회 뒷쪽 하얏트 호텔이던가?에서 겨우 인출기를 발견할 때까지 물 한 병도 못 사마시고 버스도 못 타고.....
그러다 보니 강 건너 부다 지역을 두 번이나 왕복한 끝에 기진맥진.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덕분에 도착한 날 부다 지역을 주마간산으로나마 좌악 훑었다.
어둠이 내린 후에야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드럼과 일렉기타 소리가 귀청을 찢는다.
숙소 맞은편 술집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토요일 밤, 부다페스트에서는 절대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한다. 곳곳에서 파티가 벌어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숙소 사람들 모두 춤추러 나가버리고 (심지어 주인까지도) 텅 빈 숙소, 웬만하면 나도 뛰쳐나가보겠는데
다섯 시간 이상 발품을 팔고 나니 서 있을 힘도 없어서..... 진짜 나 혼자 발 닦고 잤다..
그래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자다 일어나서 잠깐......(자정 무렵에..ㅋㅋ)
# 소방의 날
며칠 전부터 갑자기 왼쪽 어깨가 고장나서 머리도 한 손으로 감고 있는 처지였다.
부다페스트에 유명한 온천이 있다기에 오늘은 열일 제쳐놓고 시간을 충분히 들여 여독도 풀고 가능하다면 어깨까지 치료해볼 작정이었다.
시체니 온천이 있는 시민공원으로 가는 길인데 갑자기 빨간 제복에 금모자를 쓴 근사한 브라스밴드가 발을 척척 맞추며 영웅광장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한바탕 근사한 연주활동을 펼치더니 어딘가로 향해 행진을 시작하고, 뒤이어 웬 소방차 행렬이......
흐흐, 구경났다, 구경났어.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많은 구경행렬에 신이 난 나는 어깨 통증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행렬 뒤를 따라.....
행렬이 도착한 곳은 시민공원.
오늘 소방의 날을 맞아 소방서가 시민들을 초청하여 각종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체험활동을 통한 안전교육도 하고 벼룩시장도 열렸고 의료팀이 무료 건강검진도 해주고 한쪽에서는 가수들이 공연도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소방관이야말로 (최고의 섹시 가이로 ^^) 존경받는다.
"코끼리 아저씨는 소방수래요. 불이 나면 빨리 와 모셔가지요."
헝가리 아이들도 이 노래를 부르는지? ^^
개성파 3인방
먹거리 3인방
무슨무슨 병에 효험이 있다고 소문 난 시체니 온천.
노천온천이라 그런지 치료하러 온 사람들보다 수영 등 물놀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물도 뜨끈하고 깨끗하고 희미하게 유황냄새도 나는 게 기대 이상이다.
세차게 물을 뿜는 돌사자 아가리 아래를 찾아들어가 한 시간 넘게 마사지를 했더니 온몸이 녹작지근 다 풀렸을 뿐 아니라
악 소리 나게 아프던 어깨까지 거짓말처럼 부드러워졌다. (이래서 온천, 온천 하나보다.)
온천을 한 끝이라 쏟아지는 졸음을 못 이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한숨 늘어지게 자고 나니까 어느새 저물녘이다.
막 정들기 시작한 이 도시와 내일이면 헤어져야 하는 게 어찌나 서운한지, 같이 밥 해먹자는 룸메이트들을 뒤로 하고 다시 숙소 문을 나섰다.
유명호텔이 있는 강변 뒤쪽으로 가면 서민들이 사는 아파트와 수수하고 정다운 동네 공원이 숨어 있다.
동네 공원을 빠져나가면 오페라극장 등이 있는 신시가지 중심가.
헝가리 대표음식인 굴라쉬를 시켜 먹어봤다. 제법 익숙한 맛이다. 옆 사진은 핫케익인데 설탕을 소름끼치게 뿌려줬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깊~은 지하 통로, 군데군데 녹이 슨 낡은 지하철, 동방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고풍한 驛舍.
어젯밤처럼 흥겨운 파티가 눈에 띄면 헝가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운껏 즐겨보리라 마음 먹고 있었는데
토요일 밤과는 백팔십도로 돌변한 일요일밤. 오가는 사람조차 없이 쥐죽은 듯 고요하다.
고요한 다뉴브 강변에서 나홀로 월하산책.
P.S. : 숙소 Budapest Centrum Hostel
예약할 때 받은 주소 나도르 거리 26번지를 못 찾아 30분 가까이 뱅뱅돌이를 했다. 24번지와 28번지는 있는데 유독 26번지만 없어서.
위치를 설명하는 글에, "역에서 내려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오시오"라는 설명도 있었기 때문에 헤매던 끝에 다시 역으로 원위치하여
노란 화살표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지만 그것도 못 찾고......
전화를 해보려고 해도 땡전 한푼 없네. 어떻게 된 게 대로변에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없고,
가게 같은 게 있으면 들어가서 물어보련만 밀어봐야 열릴 것 같지도 않은 육중한 석조건물들 뿐이고...
'에라, 환전소부터 찾고 그 다음에 공중전화 찾고.....' 느긋하게 마음 먹고 그 번거로운 짓을 시작하려고 할 무렵
다행히도 이 호스텔을 안다는 동네사람을 만나 드디어 찾아냈다.
거 참 이상도 하지. 그 번짓수만 엉뚱한 위치에 있더란 말씀. (멀지도 않은 곳에 있었는데...... 업은 아이 삼 년 찾은 격)
쥔장에게 노란 화살표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눈에 잘 뜨이게 그려놨는데 그걸 왜 못찾냐고 되려 날 눈 어두운 사람 취급이다.
나중에 나가 찾아보니 있긴 있었다. 나는 당연히 벽에 붙였거나 그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길바닥에, 그것도 230밀리 내 발 크기의 2/3 크기로 약 200미터마다 흐릿하게 한 개씩 그려놨더군. ㅋㅋ
어쨌든 위치는 좋은 곳이었다.
기차역에서 가깝고 쓰레빠 끌고 강변에 휘리릭 나가볼 수 있는, 그러면서도 북적대는 유흥가를 살짝 벗어난 서민 동네.
그럴 듯한 석조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복도식 아파트 같은 집들이 사각형을 이뤄 들어서 있다.
말린 옥수수와 넝쿨식물로 장식한 게 우리 숙소.
언제적에 지어진 건물인지 모르지만 엄청 낡았다. 웬지 바퀴벌레가 득시글댈 것 같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일단 숙소 안으로 들어오면......
깔끔하고 뽀송하다.
나름 세련된 원목가구에 깔끔한 이불, 적절하게 배치해둔 장식품들이 6인실임에도 불구하고 꼭 내 방에 온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을 준다.
쥔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쓸고 닦고 광을 내는 화장실. (잔소리가 많은 게 그 부작용이다. ㅎㅎ)
거실 벽과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참에 있는,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문양은 쥔장이 혼자 마스터했다는 '무슨무슨 미술' 작품이라고 했는데......
이 집 쥔장,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 딱 이틀밤밖에, 그 중 하루는 쥔장이 외출하는 바람에 별로 볼 기회가 없었지만 웬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