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ncode 3 - 에스파한
에스파한은 테헤란 남쪽 약 340㎞ 지점에 있는 이란 제2의 도시.
사파비 왕조의 황금시대를 짐작하게 해주는 멋진 유적들, 메마른 이란에는 드문 오아시스 같은 풍경으로 '이란의 보석'이라는 칭송을 받는 곳이지만
내 기억에는 그런 객관적인 평가보다 이란의 첫 방문지라는 신선함, 그리고 길잡이의 오랜 친구 '서머네 집'에서의 추억이 더욱 진하게 새겨진 곳이다.
도시간 이동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했는데, 야간비행의 피로를 감안하여 일단 에스파한까지 전용 승합차를 대기시킨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귀국할 때 보니 공항부터 터미널까지는 택시로 40분 족히 걸리는 가깝지 않은 거리인 데다 테헤란의 교통정체가 장난이 아니라서
짐 끌고 시내 들어갔다간 여행 초반부터 만정이 다 떨어질 뻔 했다.
일동 기절 상태이건만 밝으면 못 자는 병이 있는 나는 괴로워 죽을 지경, 창밖 풍경에 몰두해보려고 얘써보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풍경이랄 것도 없는 단조로운 바위사막의 연속. 이 나라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몇 퍼센트나 될까.
버스로 이동할 때 창밖 찍는 재미로 시간을 잊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건질 사진이 거의 없다는 걸 안 다음부터는 차가 섰을 때나 한 방 찰칵.
참 검문이 많은 나라다. 에스파한 가는 길에도 검문 때문에 너덧 번은 섰던 것 같다.
'only God'......익숙한 글귀가 눈길을 끈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only Jesus라고 하지만 이 동네에서는 예수와 마호멧이 동급이다)
세 시간쯤 달리다가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점심을 먹었다.
라마단 기간인데도 고속도로변에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트럭 운전사들과 여행자들이 제법 있었다(노약자들과 여행자들은 금식하지 않아도 된단다).
각오했던 대로 닭고기와 양고기 케밥 중에서 선택할 것을 요구받고...... 고심 끝에 양고기를 시켰는데(사진은 닭고기)
어라, 딱 숯불에 구운 떡갈비 맛이다?
이리하야 생애 최초로 양고기 섭취 대열에 합류하게 된 장여사, 자주는 아니지만 가아끔 호기롭게 '양고기 케밥!"을 외칠 수 있게 되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어느덧 세 시. 조금 쉬려나 했더니 환전도 하고 해 떨어지기 전에 좀 돌아다니잔다.
엄두는 안 나지만 어쩔수 없다는 심정으로 뙤약볕에 몸을 던지긴 했으나 역시......
이맘광장 한 군데 돌았는데 모두 실신 직전이다. 아쉽지만 철수.
이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우리의 일정은 '오전', '숙소에서 휴식', '(오후가 아니라) 저녁'.... 그렇게 고정됐다.
바람도 없는 무더운 저녁이지만 라마단을 해제하는 아잔 소리에 힘입어 다시 씩씩하게 거리로 나선 일행들, 망고주스 햄버거 사들고 씨우쎄 다리로....
비록 가뭄 때문에 강바닥이 다 드러나긴 했어도 이스파한 사람들의 자얀데 강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은 대단한 듯하다.
이 강을 건너는 11개의 다리 중 특히 야경이 아름다운 씨우쎄 다리와 커주 다리가 특히 사랑받고 있다는데, 소풍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라마단이 끝난 시간이라 그런가? 먹을 거리를 싸들고 나와 여기저기 퍼질러 앉은 가족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젊은이들......
자정이 가까워져가는데도 도대체 집에 갈 생각들을 안 한다.
그렇게 놀다 이튿날 새벽 네 시에 잠깐 요기를 하고.... 그리고 다시 라마단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튿날 다시 이맘 광장에서 시작해서 체헬 소툰 궁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와 한숨 자고
해가 기울 때쯤 버스 타고 졸파 지구 아르메니아 교회 보러갔다가 '내 친구의 집' 방문, '음주' 없는 '가무'만 즐기고......
에스파한에서의 2박 3일, 너무 짧았다. 지금 돌아보니 더욱 그렇다.
(어쨌든 에스파한 사진 좌르르 올라감다. 마음 가는 대로 써갈긴 낙서 같은 사진들뿐입니다. 관광명소가 궁금하시면 인터넷 검색하세요.)
# 이맘 광장 부근
에스파한의 대표 명소 이맘 호메이니 광장
천안문 광장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광장이라고 하는데, 나무며 분수로 꾸며놓아 그런지 그렇게까지 넓어뵈진 않았다.
하지만 내려꽂히는 땡볕 아래, 광장을 둘러싸고 이어진 바자르 안쪽 길을 따라 이동하면 상관없지만 급한 성질 못 이기고
알리 카푸 궁전에서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로 가로질러 가려고 한다면 정말이지 천안문 광장보다 더 넓게 느껴진다.
그나마 광장 한 가운데 시원한 분수가 있어줘서 다행이다.
분수에서 수영하다가 지나가던 아저씨에게 딱 걸렸지만 당당하게 대드는 꼬마녀석들(몸짓으로 미루어 짐작한 해설일 뿐 사실과는 상관없음)
이맘 모스크 내부.
카펫을 깔아놓은 안마당까지 하면 만 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을 듯.
정말 황홀한 '블루'의 향연.
타일이 도대체 몇 장이나 들어갔을까? 유럽의 대성당들 저리가라다.
왜 모든 사원이나 교회들은 이토록 화려하게 꾸며지는(꾸며져야 하는) 걸까. 그것이 진정 신의 위엄을 높여주는 것일까? 신도 그것을 원하실까?
마얀마에서, 가난한 여인들이 쌈짓돈을 털어 금박을 사가지고 불상에 덕지덕지 붙이는 장면을 보고 혀를 차던 나에게 친구가 그랬다.
그건 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고 싶어하는 마음이니 네가 분개할 건 없다고......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
사원 내부로 들어가는 어둡고 긴 복도가 인상적이었다.
모델 뺨치는 자태를 순백의 히잡과 튜닉으로 감싸고 나타난 '내 친구' 사머네의 동생.
바쁜 언니를 대신해서 우리를 안내해주러 왔단다. 영어 잘 하고 상냥하고...... 나이에 비해 아주 어른스러웠다.
알리 카푸 궁전의 '콘서트 홀'
악사와 악기를 닮은 벽감들이 스피커 구실을 했단다. 참으로 묘하고 신통한 인테리어 아닌가.
궁전 안에 방치되었던 프레스코화들을 복원하기 위해서 오늘도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미술대학 학생들.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 뒷쪽 골목의 기념품점들은 다른 블럭들보다 좀더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느낌은 느낌일 뿐 상품들까지 그러한지는 장담 못함)
드넓은 이맘 광장에 유일한 커피숍.(이곳 역시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 뒤쪽 골목길에 있다.)
어쩌다 다쳤느냐고 물어보니 나쁜녀석과 싸우다가 다쳤단다.
'나쁜놈 누구?' 나의 적 오바마란다. ㅋㅋㅋ
나중에 길잡이 얘기를 들어보니 코 성형한 거라나. 이란 사람들은 큰 코(특히 매부리코)가 컴플렉스라 코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데
성형수술에 큰 돈이 들기 때문에 완쾌된 후에도 밴드를 제거하지 않은 채로 성형수술 사실을 과시하고 다닌다네.
향신료 가게인지 약재 가게인지? 돌도 갈아 먹는지?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사지도 않을 거면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아저씨를 차마 방해할 수가 없었다.
체헬 소툰 궁전 현관에서 바라본 정원.
세계 각국의 대사들을 접견하는 영빈관으로 사용되었다는 체헬 소툰 궁전.
'번쩍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거울장식이다. ㅎㅎㅎ
이슬람 세계에도 서양세계 못지 않은 화려한 벽화가 있었네!
우즈벡인지 인도 무굴제국인지 터키인지.... 암튼 처참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유쾌한 전쟁놀이처럼 보인다.
오려붙였어도 봐줄 만한......^^
# 거리에서
이맘 광장에서 나와 체헬 소툰 궁전으로 가는 길.
웬수맞은 땡볕...... 그러나 숲은 아름답게 빛난다.
이 동네 영감님들, 왜 일케 하나같이 멋진지... ㅋㅋ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으며 영원한 삶도 없다'
어느 도시에도 거리 곳곳에 코란의 요절이 붙어 있다. 성서 구절이라고 해도 속을 만큼 성서와 흡사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영문으로까지 번역해놓은 것은 이 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 선교 목적?
버스 정류장에 붙은 광고. 아마도 보험 광고?
체중계를 앞에 놓고 영업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돈을 적게 주거나 안 주고 가버려도 속수무책일 맹인들이 대부분인데, 체중을 잰 사람들은 또박또박 돈을 내고 간다.
이란 여성들의 '공식 웃옷'은 온몸을 덮어쓰는 차도르 아니면 적어도 엉덩이까지 가리는 튜닉이다.
숙소 앞 공공기관 건물. 까막눈이니 뭐하는 곳인지 모른다. ㅠ.ㅠ
시내 버스 타고 졸파지구로 가는 길.
남자들은 앞 문으로, 여자들은 뒷 문으로 타고 좌석도 앞쪽에는 남자들이, 뒷쪽에는 여자들이 앉는다.
남녀 가족이 함께 타면? 아마도 중간 자리에 같이 앉지 싶은데....?
# 졸파 지구
이곳은 17세기초에 압바스 1세가 능력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을 대거 유치한 이래 지금까지도 수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주거지를 보나 상점들을 보나 사람들의 입성, 태도들을 볼 때 아무래도 이 동네가 에스파한의 강남 아닐까 싶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의 종교인 동방정교회가 몇 군데 있다는 걸 보니 이슬람교의 지엄한 통제 속에서도 그들의 종교는 일정하게 존중받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정교회 중 가장 크다는 반크 교회와 아르메니아교회 박물관.
내 눈길을 끈 전시물들. 오래된 성경, 독특한 성화, 타일 등등
한국어학원에서 1년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고등학생들. 한국말이 제법 유창하고 읽기 쓰기도 꽤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를 보고 따라 탔다가 몇 정거장 수다 떨고 내렸는데, 뭐가 그리 아쉬웠는지 바로 반크교회까지 찾아왔다.
수퍼주니어, 투에니원, 빅 뱅 노래 가사까지 줄줄 읊고...... 그 중 한 녀석은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려놓았단다.
# 커쥬 다리
이 야경은 씨오쎄 다리인 듯.
사머네 집에서 나와 커주 다리에 다시 간 것 같은데... 어째 사진이 한 장도 없네.
# 내 친구의 집
밤 9시에 남의 집 방문이라니... 보통 결례가 아닌데 이 동네에선 아주 정상적인 저녁식사 초대 시간이다.
'내 친구의 집'은 고급 주택가의 3층짜리 빌라였다.
그 집에 살던 '내 친구'는 그 사이에 결혼으로 분가를 했으니 정확히는 '내 친구의 친정집'이다. 길잡이가 이란어를 배우면서 하숙을 했던 집이기도 하다.
지금은 부모님과 미혼인 오빠, 동생이 살고 있는데 외국친구들이 왔다고 '내 친구'의 언니 내외까지 갓난쟁이를 데리고 놀러왔다.
우리 일행 열 두 명과 이란 가족 아홉 명 등 아기까지 스물 한 명의 큰 밥상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식사 후 달콤한 간식에 홍차까지 풀 서비스로 모시는 '내 친구'의 가족들
이란에서 '음주'는 불법이지만 '가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가무'는 불법이기도 하다. 남편, 오빠, 아버지가 아닌 남자 앞에서의 여자들의 가무 말이다.
이란 여자들이 집 안에서는 춤 절대 사양 안 한다던데 우리 일행중에 남자들이 있다 보니 이 스스럼없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손뼉만 신나게 쳐댄다.
나중에 부엌에 여자들끼리 모여서 한 판. ㅋㅋㅋ
사진 찍어주느라고 서머네의 미녀 동생만 빠지고 일동 찰칵!
분위기가 좋아서 올리긴 했는데 바로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