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오세아니아

苦中作樂 12 - 윌페나 국립공원

張萬玉 2013. 3. 5. 12:35

브로큰힐에서 격정적인 노을빛에 feel 받은 일행은 일정상 달릴 수 있는 최북단까지 좀더 가보자고 밀어부친다.

일정만으로 보자면 폭염을 피해 미친듯이 달려온 결과 원래 계획보다 이틀 정도 앞서가고 있긴 하다.

그래서 론리 플래닛의 길잡이에 따라 찾아낸 게 윌페나 국립공원. 

중간에 머물 데가 없으니 일단 움직였다 하면 500킬로인데...... 모두들 간이 부었다.

 

호기롭게 출발은 했으나 가히 사람을 잡고도 남을 만한,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 

겨우 머리통만 가려주는 Rest에서 점심을 먹는데 운전기사는 물론 모두들 기진맥진, 뒤늦게 후회해보지만 어쩔 수 없다. ㅠ.ㅠ

몇 백 킬로를 달려봐도 똑같은 풍경.

불타는 아스팔트 앞쪽으로는 열섬으로 인해 만들어진 시냇물이 흐르고 양 옆으로 단조로운 초원사막이 꿈속처럼 흘러간다. 이 길이 끝나기는 하려나?

곳곳에 말라붙은 왈라비 시체, 비틀비틀 길을 건너가는 목마른 에뮤떼.

자연의 무서운 얼굴의 또다른 측면을 본다. 죽음의 공포는 이렇게 서서이 조용히 다가오기도 하는구나.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기울 무렵. 왈라비가 먼저 마중을 나왔다. 

이 공원에는 왈라비가 천지다. 얘들은 물도 귀한 이 곳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거지?

간신히 텐트를 치고는 다들 엎어져 있는데 내일 걸을 Mt.올센 트레킹 코스 답사 나가자고 대원들을 모으는 서대장! 

과연 누가 나설까 했는데 그래도 지원자들 몇이 나선다. 신기한 사람들이야....

 

남은 사람들은 맥주 마시고......그러다가 말다툼이 시작됐다.

캠핑에 따른 짐도 만만치 않은데 작은 차를 탈 것이니 개인 짐을 최대한 적게 꾸려오라고 했거늘......

눈썹까지 뽑아놓고 온 사람들 입장에서는 장 보기로 차가 미어터질 때마다 욕심껏 꾸려온 개인짐들을 내동댕이치고 싶기도 하겠지.

트렁크 뚜껑 한번 제대로 못 닫고 다녔던 불쌍한 우리 차... ㅠ.ㅠ

 

한 차당 두 명의 기사가 배정되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한 사람에게 쏠리게 되는 상황도 문제가 되었다. 

알콜의 힘을 빌려 토로하는 K선생의 불만의 기조에 다들 공감은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불만의 화살을 맞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는 점잖은 선생님들......

게다가 궂은일을 도맡아온 사람이 이유있는 문제제기를 하는데... 오히려 설득당해야 하는 이 분위기는 뭐지?

차이를 가지고 시작한 여행, 어른스럽게 대처하지 않으면 오히려 흉이 되는 고상한 팀웍이라니.  

론은 좀더 나아가, '차이'가 '차별'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성숙한 민주주사회의 윤리를 건드리고 있었다. ㅋㅋㅋ 

국외자인 나로서는, '회의'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고 자발성에 의지하는 이 특별한 팀웍이 낯설던 터였는데 이 취중방담 덕에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이튿날 새벽, 시원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6시에 출발.

 사방이 말라서 속이 비어버린 나무 천지. 어떻게 살아남아 있는지 신기하다.

 

 

 

 1800년대말 이 지역을 개척해가며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다.



 

 

 

 

 

St. Mary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와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돌아가는 게 원래 스케줄이었지만

예상보다 짧은 코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들 약속이나 한 듯 Bride Gap쪽으로 접어들었는데.... 이때만 해도 우리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아무도 몰랐다.

 

 

 

 

 

 

끝없이 펼쳐지는 장관에 턱이 떨어진 것까진 좋았는데......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5.7킬로의 짧은 길이라고 얕잡아보고, 첫 쉼터에서 아침으로 꾸려온 빵을 먹느라고 물을 다 마셔버린 대가를 톡톡이 치러야 했다.

길은 돌길이라 발은 물집 투성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고스란히 드러난 몸은 땀 흘리는 것조차 잊었다. 수분이 모두 증발해버린 듯.

결국 탈진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나도 죽을 것 같은(!) 공포와 싸우며 죽을똥 살똥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이 살벌한 여정이 있기에 격한 감동도 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물을 가지고 비틀비틀 탈진자들을 구하러 온 것이다. 널부러져도 모자랄 판일텐데..

 

 

 

콜라와 물을 7달러어치나 마시고 갈증의 늪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일단 발에 잡힌 물집 터뜨리고 (태양 아래 텐트에서) 땀흘리며 강제로 낮잠.

 

이제 갈증 다음으로 싸워야 하는 것은 배고픔.

오지중의 오지로 들어오면서도 장을 충분히 보지 못한 데다가 윌페나로 들어올 때(주가 바뀌어) 과일과 야채를 압수당한 터라 식량이 부족한 것이다.

양배추 2통, 양파 반 자루, 오렌지 10개.... 그래도 의자 아래에 깊이 숨긴 감자와 고구마 안 뺏긴걸 기뻐하며 소중하게 쪄먹었고

이제 남은 것은 라면 대여섯 봉, 쌀 서너 컵, 국수 한 봉지, 빵 반 봉지....열 두 명이 두 끼 먹기엔 좀 서글픈 양이다.

국수 삶아 마지막 남은 김자반 털어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에 비비고, 모자라는 양은 빵을 털어 해결한다.

 

마지막 날 아침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다. 라면과 흰 죽. ㅠ.ㅠ

그래도 식량을 털어내어 차가 가벼워졌다고, 내친김에 하이 3거리 지나 남쪽으로 내처 달리자고 기염을 토하는 불굴의 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