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제주허씨 한달살이

제주허씨 일기 7 - 거문오름

張萬玉 2014. 11. 13. 12:04

11월 12일

 

인터넷으로 어렵사리 예약해둔 거문오름에 오른 날.

516도로 중간쯤에 펼쳐지는 숲터널을 몇 번이나 찍어두고 싶었지만 갓길이 없을뿐만 아니라 인도조차 없을 지경이어서 매번 감탄만 하고 지났지만

오늘은 어떻게든 한컷 찍어두리라.

하지만 차를 세울 만한 곳은 경치가 기대에 못 미치고, 근사한 곳은 여전히 차 세우기가 마땅치 않고......

나름 신경써서 몇 컷 잡아두긴 했지만 영 마음에 안 찬다.

 

숲터널 지나 성판악주차장 지나 우회전하면 삼나무가 빽빽하게 담장을 치고 있는 비자림로.

사려니숲과  절물휴양림(입구는 이쪽이 아니다) 사이로 난 이 길은 동쪽까지 길게 이어진다.

 

거문오름은 아시다시피 거대한 용암굴들의 원천이라는 이유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오름이다.

해설사는 이 오름을 자식들을 낳아 내보낸 어머니의 자궁에 비유한다.

 

정상까지는 그리 높지 않다. 쉬엄쉬엄 300계단 정도?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이런저런 오름들이......

죽 솥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듯 하는 거대한 용암의 바다를 그려보았다. 

 

그 대단한 광경을 목도한 생명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지금 이런 광경을 보고 있는데......일만 년, 아니  고작 일천 년 후에 이곳은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

 

분화구로 내려와 '태극길'이라고 명명된 알오름 둘레길을 탐방한다.

곶자왈, 일본군이 파놓은 땅굴들, 용암폭발로 인해 찢겨진 함몰구 등등...... 숲은 생존을 위한 가혹한 전투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척박한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고자 제 몸을 찢어 나눈 나무들이 여기저기...

 

곰솔, 편백, 삼나무를 갑옷처럼 걸친 검은오름의 모습.

정상까지 40분, 분화구 탐방까지 2시간 반 정도 걸렸나?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쉬엄쉬엄)

분화구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능선코스까지 하면 모두 세 시간 반 걸린다는데, 나는 볼일이 너무 급해 능선 코스는 포기했다.

감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탐방안내소로 돌아가는 짧지 않은 억새길이 나를 기다린다.

거문오름은 그 '의미'로 나를 감동시켰지만, 억새길은 비주얼로 나를 압도한다. 찍고 또 찍고......

 

 

 

 

  

 

 

 

 

돌아오는 길에 산굼부리에 들어갔다.

산굼부리는 어느 오름에나 있는 것이지만 이 길을 오갈 때마다 입구가 자꾸 눈길을 끌길래......

공연히 6000원 버렸다는 생각은 안 할란다. 이곳 역시 억새벌판이 장관이니까..ㅎㅎㅎ

오름까지 오를 시간이 없는 사람은 여기서 잠깐 기분 내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