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허씨 일기 11 - 따라비오름
11월 18일
제주에 와서는 매일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무슨 바쁜 일이 있다고 사진만 올려놓고 한참을 밀어두었네.
어젯밤엔 이런저런 생각으로 제주에 온 이래 처음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해가 중천에 떠서야 겨우 눈을 떴다.
늦잠에서 깬 기분이 영 꿀꿀하여 공연히 정원을 서성거리다가......
하늘을 보면 어두웠던 기분이 활짝 갠다.
난 하늘을 볼 수 있는 한 즐겁게 살 수 있을 꺼야. 그렇고말고!
이 정원 곳곳엔 동백꽃이 만발이다.
이 집 귤밭을 임대하여 귤농사를 짓는 할아버지, 가끔 새벽에 드나드시는 기미가 보이더니 어느새 귤 컨테이너를 집채 높이로 쌓으셨다.
트럭이 와서 한 차 실어가고 파치만 저 만큼 남았다. 밭에 떨어져 썩어가는 귤도 부지기수인데........
요녀석은 유자라고 한다. 다 툭툭 떨어지고 있는데 저건 언제 따시려나?
몇 개 서리해서 유자차나 담아갈까? ㅋ
점심을 먹고 가시리마을 쪽으로 나갔다.
오름 10개!라는 목표를 향하여 오늘은 오르기 쉽고 전망 좋다는 따라비오름.
큰길에서 오름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갓길 거의 없는 왕복1차선, 그것도 무려 3킬로미터라 맞은편에서 오는 차라도 만날까봐 마음 졸였다.
초입은 너른 억새밭을 보며 걷는 목장길(갑마장길)이다.
백약이오름, 사슴오름, 모지리오름 등 수많은 오름들과 정석비행장, 멀리로는 한라산까지 놀라운 전망을 보여준다.
말굽형 오름이라 분화구도 세 개. 따라서 능선 둘레길도 세 배. 능선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딱이다.
억새의 군무가 장관인, 바람불어 좋은 날.
철 모르는 진달래까지 덩달아 춤을 춘다.
아직 남은 해가 아까워 세화리(아, 예쁜 마을!) 한 바퀴 돌아보고 해비치 해변 쪽으로 나갔다.
해는 서쪽으로 지지만 동쪽 해안도 해질녘이 되니 못지 않게 아름답다.
저 멀리 씩씩하게 걸어가사는 올레꾼들의 뒷모습.
여기는 20킬로에 달하는 마의 3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