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제주허씨 한달살이

제주허씨 일기 14 - 結局

張萬玉 2014. 11. 25. 11:35

11월 21일(금)

서귀포시에는 (어쩌면 제주시 역시) 도민들을 위한 교육을 많이 한다.

어제 만난 Y가 중국어 무료교육에 참가하려고 하는데, 쌩초보는 안 되고 일정한 레벨 테스트를 거쳐야 초급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짬짬이 앱으로 들여다보는데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고 한다.

나의 이번 체류를 크게 도와줬으니 나도 뭔가 보답할 기회다 싶어, 나의 특기인 '긴급중국어' 프로그램을 가동켜보기로 했다,

중국어의 첫 관문은 발음. 조금 지루하더라도 병음과 성조의 기초를 정확하게 다져놓으면 한국사람들에게 중국어는 그리 어려운 언어가 아니다.

예전에 강의나 과외를 할 때 자주 써먹어 그 효과를 인정받은 바 있는 '사전 트레이닝 3회' 교재를 메일로 보내놓고 프린트해가지고 집으로 오라고 불렀다.

영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造音点에 대한 이해가 좋고 노래를 잘 한다는 본인 주장을 뒷받침하듯 음감(!)도 좋아

지금까지 가르친 제자 중 전도가 기대되는 베스트 3 안에 꼽을 만 하니 가르치는 내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서울 가기 전에 한번 더 봐주면 그 기초 위에서  '다락원 301구'를 독습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책을 성실하게 마친다면 그 교육에 참가할 자격이 충분할 것 같다.

 

공짜교습 감사하다고 Y가 데려간 효돈 소재 '전설의 국수'

돔베 수육 곁들인 고기국수와 비빔국수 세트가 2만5천원인데 나는 비빔국수 대신 보말(고둥)국수를 시켰다.(추천!)

제주 내려온 지 3년 되었다는 주인 언니는 수필잡지를 통해 등단하신 수필가란다.

정착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지만 귀농귀촌한 사람들끼리 돕는 모임으로부터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시며 나도 내려오면 친구해주신단다. ^^

 

 

여러 사람의 만류로 예례리 집을 포기한 뒤 접어버렸던 마음이 다시 부산해진다.

다시 제주 오일장 사이트와 제주대학교 커뮤니티,  '제살모"(제주에서 살기 위한 모임) 등등 닥치는 대로 뒤져보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텃밭 딸린 촌집, 지역은 서귀포, 화장실이나 부엌이 집 안에 있으면 바랄 것 없고 년세는 300 정도.

하지만 그건 그전 얘기다. 지금은 아무리 후진 집이라도 년세 300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게다가 거의 매매 매물 뿐이고 년세 500부터는 조금 있지만 원룸이나 연립이다.

년세 1000 이상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그런 데 살 거면 서울에 멀쩡한 집 놔두고 굳이 여기까지 살러 올 이유가 없지.

폭풍의 클릭질로 오후가 다 가고 있는데 눈에 번쩍 들어오는 두 글자, 전세!! 그것도 텃밭 딸린 농가주택, 딱 내가 원하는 사이즈의 아담한 독채다.

올라온 사진을 보니 내부는 리모델링해서 깔끔하고 주소지도 애월읍... 괜찮네.

무엇보다도 제주에서는 貴物로 치는 '전세'를 찾아내다니!!

당장 전화를 해서 부동산과 약속을 잡았다.

일단 보는 거지 뭐. 이때만 해도 내가 계약을 하리라는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는데....

 

11월 22일(토)

결국 일을 냈다.

텃밭 100여 평에 건평 25평 정도 되는 8천5백짜리 전셋집이다.

내부는 사진보다 훨씬 깔끔하고 아늑했고 밭에서는 채소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보너스로 아담한 꽃밭과 무화과 나무까지!

애월읍 한가운데 있는 동네라서, 의원이긴 하지만 병원도 가깝고 시외버스 정거장도 우체국도 편의점도, 심지어 하나로마트도 있다.

바다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 그렇다고 바닷바람 휘몰아치는 해변가도 아니다.

차로 10~20분 거리에 며칠 전 감탄해마지 않던 한담산책길도 있고 노꼬메오름도 있고,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운 길들이 사방에 깔렸다.

무엇보다도 내가 제주에서 살아보기로 한 가장 큰 동기인 텃밭이 딱 내 사이즈. 남들도 하는 거 나라고 못할 것도 없지.

생명 있는 것을 만지다 보면 내게도 생기가 돌지 않겠나.

잡초와 싸우다 지치면 뭐 2년간 별장 빌렸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고..

육지에 사는 주인이 28일에나 올 수 있다니 일단 가계약을 하고, 그날 주인을 만나 정식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11월 23일(일)

잔금을 12월 26일에 치르겠다고 했으니 이제 한 달도 채 안 남았네.

자취 수준의 살림으로 꾸릴 생각이니 일단 승용차에 실을 수 있을 만큼만 최소한으로 가져오고

꼭 필요한 가전이나 가구는 이곳 중고장터를 뒤져야겠다 마음먹고 있는데

기별을 들은 친정오빠가 자기 1톤트럭으로 실어다주겠다고 한다.

하긴, 다른 것들은 필요없어도 이부자리는 충분해야지. 연고지 생겼다고 기뻐할 사람들이 많을 텐데......

기름 보일러집이니 기름값 아끼려면 전기장판도 세 장은 있어야겠고......(영하로 내려가는 적이 드문 제주이니 가능한 일이다)

선사에 전화하여 화물 선적을 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니, 공인계량소에서 계량증명서만 받아오면 아무 문제가 없단다.

일단 이사에 큰 돈 쓸 일은 없겠구나. 무료숙박을 미끼로 여기저기서 물품 협찬을 받아 한 차 실으면 되겠네.

쌩돈 안 깨지게 서울에서 실어올 수 있는 건 다 실어와야겠다. 물품 리스트 작성 시작!(자, 안 쓰는 전기장판, 전기난로 찬조 받아요~ ^^ )

 

한겨울의 제주... 분명히 썰렁하고 심란하겠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열정을 식히지는 못할 것이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던 나의 마음도 2년간 이 땅에 꼭꼭 심어놓고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볼 꺼다.

과연 '여행생활자'에서 '생활여행자'로 변신할 수 있을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체류기의 결말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제주허씨 일기를 접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새봄에 텃밭일기로 다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혼자살이의 외로움을 견디려고 시작한 체류일기, 그래도 벗들이 찾아와봐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