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萬玉 2015. 4. 8. 17:20

박근혜 정부 들어 더 자주 더 가볍게 운위되는 이런 문구를 내 글의 제목으로 달게 될 줄 나도 몰랐다. ^^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 한번 들어보시구레.

 

중국비자가 나오기로 한 날이자 상해 행 비행기를 타기 바로 전 날 오후 한 시.

제주 집에 두고 온 무언가와 그에 딸린 서류를 급히 찾는 전화가 왔다.

뭐야~ 싶었지만, 내용을 들어보니 어떤 이유가 있어도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그쪽에다 대고, 그것은 제주에 있고 나는 서울에 와 있으며 내일 중국에 가야 한다고 알려봤자 무슨 소용이랴.

항공편을 알아보니 다행히 4시에 떠나는 제주행 비행기와 다음날 11시에 돌아오는 김포행 비행기의 싼 표가 날 기다리고 있다. 

내일 아침 일빠로 읍사무소에서 필요한 서류를 떼고 우체국으로 달려가 등기 부치고 김포공항으로 오후 두 시 전에 돌아오면

4시에 떠나는 상하이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역시 하늘은 긍정적인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시는구나. 크~ 

 

여행사 사무실로 뛰어가 여권 찾아오고 번개같이 보름치 중국여행 가방을 싸 김포공항으로 내달려 두 시간 만에 제주집에 도착

종일 폭우가 내렸다는 제주의 밤거리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 겨우 일주일 비운 제주집은 여행지에서 찾은 숙소처럼 낯설었다.

허나 정작 그보다 낯선 상황이 날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정전'

어둠속을 더듬어 두꺼비집을 열어보니 주전원이 떨어져 요지부동이다. 시간은 어느새 여덟 시를 넘어가고...... 

전공을 부르기엔 너무 늦은 시간. 내 비교적 독립적인 여성에 속하나 아직까지 전기공사라곤 전구 갈아본 것밖에 없는데

별별 궁리를 다 해보지만 답이 안 나온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천재지변은 아니라서 다행히 가스불은 살아 있으니 일단 촛불에 의지하여 라면 하나 끓여먹고

제주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헉, 밧데리도 얼마 안 남았으니 아끼지 않으면 완전 고립일쎄)

열쇠를 어디어디 두고 갈 테니 짬 나면 와서 좀 봐주고 혹시 수습 곤란한 대형사고라면 냉동실에 있는 고기와 생선이라도 챙겨가라고 부탁한 뒤

전기 없이는 꼼짝 안하는 보일러 노려봐야 무슨 소용? 일주일간 누적된 냉기를 쫓기 위해 이부자리 있는대로 다 깔고 덮고

그렇게 동짓달(은 아니지만) 긴긴 밤을 보냈더란다.

 

긴장감 때문인지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지길래 다시 하릴없이 두꺼비집을 쓰다듬다가 문득 깨닫는 바 있어 ㅋㅋ

주전원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 스위치를 모두 내려놓고 하나하나 올려보니, 오! 문제는 안방과 거실의 등을 관장하는 세 번째 스위치였다.

일단 가장 걱정되는 냉장고는 구했구나. 얼마나 다행인지! 게다가 더운물도 쓸 수 있고 휴대폰 밧데리도 충전할 수 있다.

혹시 하늘이 제주집 냉장고를 구하시려고 누구를 움직여 제주 집에 다녀오지 않을 수 없게끔 하신 거 아닐까? ㅋㅋㅋ

 

룰루랄라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식사를 챙겨먹고, 이후 일정에 생길 수도 있는 차질까지 감안하여 8시 반에 읍사무소에 갔더니

이게 웬일인고, 9시에나 시작할 줄 알았던 관공서 사무가 벌써 시작됐네. 새벽같이 밭일 나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배려인가?

읍사무소에서 나와 막 문을 연 우체국에 도착해서 등기 부치고 나니 시간이 남아돈다.

이렇게 공항에 일찍 도착시켜주신 건, 아침에 서두르느라고 쬐끔밖에 못 먹인 휴대폰에 전기 충분히 먹이라는 하늘의 배려?

역시 나는 긍정의 여왕이다. ㅎ~

 

무사히 김포에 도착, 국내선 청사에서 국제선 청사까지 봄바람을 즐기며 걸어서 이동하여 느긋하게 점심씩이나 먹고 상해행 비행기 체크 인. 

상해행 늦은 비행기가 쌌던 건( 나의 항공권 예매 기준) 앞으로 일어날 이 숨가쁜 스케줄에 대비한 것이었을까?

아전인수가 가끔은 유효하다. 남에게 피해만 안 준다면.... 너무 심하면 병이지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