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佛山 / 湯沐園 / 王村口
심씨 아저씨의 도움으로 묵게 된 천불산대주점은 천불산풍경구 안에 있는 별 네 개짜리, 시진핑 주석도 들렀다는 방 70개짜리 호텔인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믿거나 말거나 투숙객은 (월요일인 이튿날 밤) 나 혼자였다. @. @
짐 풀고 나니 어느덧 네 시.
천불산 구경은 내일로 미루고, 마을 구경 겸 그 동네의 명소라는 탕목원 온천에 가서
새벽 다섯 시부터 뛰어다녔던 피로라도 풀까 하고 호텔 문을 나섰는데......
첫걸음부터 난관이다. 첫구간부터 터널이 가로막고 있다.
엔간하면 암흑과 매연을 좀 참고 재빨리 빠져나가보겠지만, 이건 길어도 너어무 길어...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데 버스는 아니 보이고....... 또 갇혔다. 이를 어쩐댜?
그래도 숙소가 정해진 느긋한 입장이라 안 되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지나가는 차량들을 향해 막연히 손을 흔들던 끝에 택시를 한 대 세웠다.
뒷좌석에 앉은 소녀 셋은 주말에 왕촌구에 있는 집에 갔다가 수창현에 있는 기숙학교로 돌아가는 여고생들이었다.
(마을 구경부터 하고 가려던 계획은 일단 미뤄두고) 탕목원까지 10원에 가기로 하고 합승.
기사와 주고받는 얘기를 엿들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게 된 소녀 하나가 정순원을 아느냐고 물어온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서 1등을 먹은 '더 원'이라는 가수란다. 난 몰러~ 시즌1 이후엔 안 봤으니께.
인터넷을 검색해 프로필과 그의 히트곡들을 보여주는 열성 소녀팬. 요즘 매일매일 그의 노래에 파묻혀 산단다.
참 넓고도 좁은 세상이다.
탕목원은 아름다운 우시강 가 따티엔(大田)이라는 마을에 있는 노천목욕탕.(온천이 나오는 건 아니니 그냥 목욕탕이다)
건물 딱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아봤다. 내가 기대하는 온천이 아니라 중국식 물놀이장이겠구나... ㅋㅋ
역시 그랬다.
변변찮은 샤워시설에 그냥 따뜻한 실내수영장. 증기가 빵빵하게 나오는 습식 사우나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예쁜 언덕 하나를 깎아 군데군데 앉힌 노천탕까지는 좋은데, 비어 있거나 다 식은 물 위로 낙엽쪼가리와 물잠자리들이 떠다니거나.
그 넓은 욕장에 손님이라곤 노골적인 연애질에 몰두하고 있는 젊은 커플과 나뿐.
수영복 없으면 입장불가라고 해서 울며겨자먹기로 즉석 구입한 60원짜리 나이롱 비키니 쓰리피스를 걸치고
홀로 나풀나풀 온 목욕탕을 누비고 다니는 늙은 여자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구나. ㅎㅎ
우쨌든 오랜만에 목욕탕 수영(한국에서는 금지되어 있는)과 습식사우나로 땀 실컷 빼고 신선한 숲속을 누비고 다니며 실컷 노니 뭐 좋기만 한데에~ ^^
원래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홍싱핑(紅星坪) 온천은 안 가도 되겠다.
돌아오는 길 역시 난관이다.
원래는 목욕 마치고 슬슬 걸어서 동네 한바퀴 한 다음에, 거리가 멀지 않으니 택시로 돌아가자 생각한 건데
직원들에게 콜택시 번호를 물어보니 이 동네엔 택시가 없고, 천상 40킬로가 넘는 수창현 택시를 불러야 한다네.
그러면 요금이 목욕탕 입장료(128원)보다 더 나올 테니 배보다 배꼽이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큰길로 나서서 막연히 버스를 기다려보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다섯 시 이후엔 천불산 가는 버스가 없고
한 30분 기다리면 왕춘커우 가는 막차가 천불산 입구로 지나갈 거라고 알려준다.
버스가 이렇게 드문데 이 동네 사람들은 불편해서 어떻게 사냐고 했더니 모두들 자가용(오토바이)이 있어서 문제 없단다.
친절한 아주머니 덕분에 무사히 3원짜리 버스로 귀가.
텅 빈 호텔 식당의 나홀로 성찬이 민망하길래 룸서비스! 불러 따끈한 청경채국수 한 그릇으로 다사다난했던 하루 마감. ^^
풍경구 입구가 코앞이라서, 문지기가 출근하기도 전인 이른 시간에 천불산으로 들어섰는데 비가 뿌린다.
사진은 잘 못찍겠지만 이런 날씨도 나쁘지 않다(朦朧美..)
바위 하나를 통째로 깎아 새긴 부처님 두상.
근엄한 얼굴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었다. 꽤 인간적인 웃음이 귀엽기까지 하다.
바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열심히 돌을 쪼아댔을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신은 인간에게 고단하고 지루한 인생과 함께 열정이란 선물을 주셨다. 참 다행한 일이다.
천불산 풍경구는 저 부처님 머리 하나로 인해 조성된 풍경구인 듯,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코스가 단조로워 좀 아쉬웠다.
너무 일찍 산에서 내려왔길래 오늘은 왕춘커우에 가보기로 한다. 어제 나를 구해준 그 버스가 지나가는 동네다.
강가의 작은 마을은 궁핍하지만 아직도 낙천적인 기운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높은 지대에 낸 신작로에서 벗어나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골목동네가 나오고, 한 단계 더 내려가면 강가로 나갈 수 있다.
대부분 집들이 현관에 제단을 차려두고 부처님이나 모택동 사진을 모셔놓았다.
앗, 교회다!!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과 함께 엉성한 크리스마스 트리도 있고
(사진에는 없지만) 교회 명의로 발행한 2015년 달력까지 걸려 있는 걸 보면 유적지로 남아있는 건물 같진 않은데
오래 안 쓴 건물처럼 곳곳에 먼지가 쌓이고 문이 잠겨 있었다.
헉, 이 동네엔 아직도 60년대 구호가 살아 있구나.
50년대 구호까지!(헌데 저 글씨는 혁명정부 건물 유적지를 꾸미기 위해 근래에 쓴 것 같다)
이 작은 마을이 절강성 남서쪽지역 홍군 게릴라부대의 베이스캠프였던 거다.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게릴라부대를 조직하고 3년간의 유격전 끝에 국민당군을 물리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너무나 초라한 혁명정부 유적지.
이 마을의 대표 (혁명)기념관이 따로 있긴 하지만 너무 으리번쩍해서 안 들어가봤다.
그해에 산중의 격전으로 피가 오계강을 적시매
물과 물고기가 깊은 정을 나누는 가운데 깨끗한 기운이 월광봉에 머물도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시 같은데 암튼....이 동네 유일한 공원인 월광산공원이 너무 작고 초라하다보니 그 시비마저도 위안이 되는 듯.
돌아오는 막차가 너무 늦어 시내로 돌아간다는 자가용을 10원 주고 얻어탔다.
대중교통편은 너무 적지만 인정만은 풍성한 동네.
수창현 구석구석을 좀더 돌아보고 싶긴 하지만 기동력이 이렇게 떨어지니 뭐.... 내일은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