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애월리 四季

김씨네 오두막

張萬玉 2015. 6. 20. 09:04

1월초에 20년지기인 부부교사가 방학을 맞아 제주에 들어왔었다.

3주의 일정이니 슬렁슬렁 한 바퀴 돌겠다고 첫 숙박지 절물휴양림으로 날 부르더니, 성산 찍고 표선 찍고 서귀포 찍고

드디어 서쪽으로 접어들어, 올레14코스길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다시 날 불렀다.

Jini Cottage, 한국말로 하자면 김씨네 오두막.

숙소도 아늑하고 예쁘지만 내가 쥔장 내외를 꼭 한번 만나봐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만나게 된 나의 제주 두 번째 이웃 . 

배낭을 메고, 다시 자전거로...... 바람처럼 십 년 넘게 세계를 떠돌던 쥔장.

여행중 라오스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맡아 운영하던 중 운명처럼 한 여인을 만났고,

함께 펼쳐나갈 미래를 꿈꾸며 제주도에 정착한 지 이제 일 년차라고 했다.(뎅기열에 걸린 쥔장을 간호해준 미모의 간호사...캬, 이거야 말로 영화 아닌가?)

 

오두막이라고 하기엔 너무 근사하고 복잡한 이 목조주택은 쥔장이 손수 지은 집이다.

설계도 직접 하고 몇몇 전문적인 공정 외에는 해머와 드릴 움직여가며 그야말로 직접 지었다.

위에서 봤을 때 물고기 모양을 내려던 탓에 실내 구조가 좀 삐딱해졌지만 내 눈엔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창의성으로 느껴진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행복하다는 손님들의 후기가 빗발치는......묘한 쉼터. 

 

 

숙박손님이었던 내 친구들이 돌아간 뒤 밭에 넘쳐나는 작물들을 나눠먹자는 핑계를 들고 나 혼자 처음 놀러갔던 날,

실례가 될까봐 밥 때를 비켜서 갔건만 수다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어느새 점심 때가 됐는지 쥔장이 슬그머니 주방으로 사라지더니

'제대로 짬뽕'을 뚝딱 만들어 내온다. 15분도 채 안 걸렸다.

이 집 요리사는 남편, 워낙 솜씨가 좋아 아내는 설겆이 담당으로 내려섰다고 한다.

손님들의 아침식사는 물론, 숙박요금에 포함되지 않는 저녁식사조차도 시간 약속만 해두면 공짜로 준단다.

단골 메뉴가 무려 흑돼지 스테이크와 텃밭 샐러드.

그래도 되느냐고 물으니 자기가 워낙 요리하기를 좋아해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을 때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행복하고

어차피 자기네 부부도 식사를 해야 하니 손님 주려고 하다 보면 자기네도 잘 챙겨먹게 되니 좋단다.

 

아무리봐도 지니코티지의 운영방침은 수지타산이라는 관점에서 통념과 딱 맞아떨어지지가 않는다. 

성수기요금도 따로 안 받고(심지어 라오스에서는 성수기 요금을 손님 많으니 괜찮다고 싸게 받고 비수기에는 손님이 적으니 더 비싸게 받았다고 한다. ㅋㅋ)

아침식사는 원하면 룸서비스까지 해주고

쓰레기는 아무데나 버리란다. ㅋㅋ(수시로 청소하니까 상관없단다. 단, 보이는 데에댜 버려야 한다. 숨기면 절대 안 됨!)

 

여행은 온전한 자유를 찾는 연습이다 

자유엔 복잡한 규칙이 필요없다

온전한 자유를 표방하는 지니코티지 

불가피한 최소한의 규칙 이외엔 이기적인 자유를 지니코티지에서 누리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busyfrog 에서 인용.

 

여기가 이 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라 하는 코너.

정원 쪽으로 통창을 내고 바로 아래 원목으로 길고 좁은 탁자를 달았다.

안팎의 명암 때문에 어두컴컴하지만, 요 자리에 앉기만 하면 바로 시인이 되고 송라이터가 된다.

이 코너에 앉고 싶어 가다가도 들르고 오다가도 들르고...... ㅋㅋㅋ

지니는  쥔장의 성인 김씨의 일본어  혹은 중국어 발음이자 '램프의 요정' 이름.  암만해도 내가 쥔장의 마법에 걸린 모양이다. ㅋㅋ  

 

공용공간인 거실은 쥔장이 인도네시아를 여행할 때 만나 친구가 된 일본작가의 작품들이 걸린 갤러리다.

나무껍질들을 주제로 한 멋진 시리즈와 아기자기한 판화들이 걸려 있는데, 제대로 찍어둔 사진이 없넹..

 

 

객실은 쥔장 취미활동(!) 부산물들의 전시장. ㅋㅋ

놀러갈 때마다 손에 페인트붓이나 드릴을 들고 있는 모습이더니...... 어느새 탁자도 만들고 침대도 만들고 복층도 올리고......

전공도 아니었고 생업도 아니었고 그저 취미활동이라고 했다. 부럽부럽! 타고난 재주에 부지런한 성품이 더해져야 가능한 거겠지.

심지어 이 양반은 바느질도 잘한다. 갈 때마다 만져보는 가죽 파우치는 한땀 한땀 공들인 그야말로 '명품'이다.

명함조차 나무조각에 인두질로 하나하나 직접 새겼다.

명함을 이렇게 비싸게 만들어도 되느냐고 했더니 우리집을 대표해주는 물건이니 당연히 공을 들여야 한단다. 

 

지니코티지라는 상품을 가장 값나가게 해주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쥔장님 부부의 인간미일 것이다.

순수한 멘탈에 말수 적고 독창적이고, 까다롭진 않지만 청개구리 기질 다분하고...... 처음엔 딱 내 이상형인(!) 쥔장님에게 꽂혔지만

옆에 계신 싸모님이 시청률 40%라서 (어젯밤 본 '프로듀사'에서 인용. ㅋㅋ)...

사모님을 내 팬으로 만들어 쥔장님 곁에 오래 머무르려고 싸모님을 집중공략하다 보니 

려깊고 야무지고 다정한 데다 예쁘기까지...... (사심 가득한 의도와는 달리 ㅋㅋ) 사모님의 매력에 오히려 더 빠져드는 중이다. ^^

아, 그리고 빠뜨릴 뻔했다. 이 집 식구는 명실공히 셋이다. 동네에서 젖먹이 때 입양된 또.

자식 없는 부부의 따님 자리를 독차지하고 특이하게도 개 사료가 아닌 무 배추 귤을 먹어가며 제가 사람인 줄 알고 크는 한 살배기 암컷 진도개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웬만한 외출엔 당연히 동행, 밤에 혼자 두면 울까봐 외박을 못할 정도로  애지중지한다.

영리하고 애교가 많아 지니코티지의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녀석,

헌데 요즘은 사춘기를 겪는지 자주 보는 나에게조차 꽤나 도도하게 굴어서 날 슬프게 한다.

주인 아닌 사람이 명령을 하거나 머리를 만지면 인상을 쓰면서 으르렁... 하이고 잘났어!   

그래도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는 녀석을 못잊어서 또 간다. 또 보러......^^

 

개업한 지 반 년 남짓.... 4월까지만 해도 손님이 뜸했던 이 오두막이 요즘은 매일매일 만실이다.

메르스 때문에 외국관광객이 뚝 끊긴 자리를 청정제주를 찾는 육지 손님들이 메우고 있기도 하고

그동안 들인 정성에 값하듯 지니코티지도 이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모양이다.

심지어 어제는 부부가 묵는 방까지 내어주고 텐트로 이사했단다. 세상에!   

아몰랑~ 지니네가 바빠지면 난 누구랑 놀아~

 

P. S : 갈 때마다 노는 데 정신 팔려 제대로 사진을 못 찍었다. 대충 찍은 사진이 오히려 민폐가 되진 않았는지... ㅋㅋ

더 좋은 사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요기로......

http://cafe.daum.net/busyf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