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애월리 四季

Inspired by <8년의 노마디즘>

張萬玉 2015. 8. 15. 10:19

이삼 년 전쯤인가, 인간극장에서 벨기에 입양아 수영씨의 이야기를 보았다.

여행중에 프랑스인 남자친구를 만났고, 여행중에 제주에 살고 있는 생모를 찾았고

결국은 제주에 정착하여 벼룩시장 상인으로, 저글링 공연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스토리였다.

그 사이에 2세도 태어났고 그녀의 남편 듀랭은 이미 제주의 예술가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그녀(그들)의 삶은 여전히 길 위에 있는 것 같다.

사진을 찍고 민속음악과 공예품들을 수집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은 여행길에 오른다고 했다.

나를 듀랭의 사진전으로 이끈 것은 이 멋진 포스터였다.

 

"히말라야 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에 우즈벡 바자르, 남미 알티플라노에 몽골 대초원, 갠지스강의 라오스식 논....
매튜가 여행에 통해 얻은 자신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전시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여행 중 촬영한 사진과 세계소리모음 시리즈를 통해, 서로의 여행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번 전시는 예술적 관점에서보다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 경험을 나누고 공유하는 시간입니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아트세닉은 듀랭과의 친구들이 얼마 전 마련한 작은 공간이다.

비록 습도 최고치를 자랑하는 지하공간이지만, 마임, 저글링 등 퍼포먼스의 상설공연과 워크샵이 이뤄지고 '노마드'  예술인들의 꿈을 키우는 산실.

 

전시회에 온 손님들에게 내기 위해 분주하게 짜이를 만들고 있는 듀랭과 그의 친구 프랑스인 텅.

기텅에게 발음이 비슷한 한국이름을 지어주겠다면서 홍길동 얘기를 들려줬더니 되게 좋아한다. '로빈훗' 같은 인물이라면서...

(며칠 후 제주 5대 벼룩시장 중 하나인 '지꺼진 장'에서 기텅 내외가 와플을 팔고 있길래 '홍길동씨!' 불렀더니 자기 이름인 줄 알고 돌아보더군. ^^)

 

   

좌) 폐타이어와 천을 이용해 직접 만들었다는 수영씨의 야성적인 액세서리. 나도 나이와 체격만 받쳐주면 당장 착용하고 싶네.

우) 듀랭과 마튜 2세. 프랑스인 아빠라 그런지 아이 정말 재밌게 잘 봐준다.

 

서울에서 놀러왔다는 듀랭의 친구가 열심히 배경음악을 울리고 있다. 에릭 크랩튼 메들리... ㅋ 

 

 

좌) 듀랭의 공연파트너 루벵.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여 한국생활 6년차인 재기 넘치는 연극인이다. 

전시회장에선 제대로 찍지 못해 페이스북에 올라온 그의 공연사진을 대신 올려봤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우) 한가운데의 쩍벌 아가씨는 루벵의 따님.

 

함께 간 친구가 내 집들이 미리선물용이라면서 (헉, 빨라도 너무 빠르다) 시원한 초원 사진을 한 장 샀다. 

라닥과 카시미르 사이의 어느 깊은 계곡길, 두루마기와 수염을 휘날리며 자그마한 사내가 걷고 있는...

사실 나는 포스터 사진이 제일 좋았는데...... 그 사진은 안 파는 모양이다.

 

전시회에서 돌아오는 길. 갑자기 마음에 불이 붙는다.

내가 찍은 사진들이 새삼 궁금해지는 거다.  뭘 모르고 찍어댄 사진들, 카메라도 솜씨도 성의도 부족해서 실망 속에 묻어뒀던 사진들이지만

그래도 뒤져보면 내게도 어~~~쩌다 저런 사진이 한 장쯤은 있지 않을까.

몇 점 골라 뽑아서 새로 짓는 집 다락방 한쪽 벽에 대형 백지도를 붙이고 해당 지역에 한 장씩 붙여놓으면 어떨까.

그래, 해보는 거야! 사진들을 고르는 김에, 묵혀둔 블러그 여행기 카테고리도 다시 채워보자고. 

일기도 없는 몇 지역은 가기나 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해져서 재생할 수 있는 건 이제 사진들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그거라도 뒤죽박죽이 되기 전에 본격적인 추억팔이 시대를 힘차게 열어보자고.^^

 

 

<부록> 인문학 콘서트에서 막간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듀랭과 루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