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애월리 四季

몇 가지 시작

張萬玉 2015. 8. 27. 10:26

 

친구가 장 보러가는 길에 동행했다가 요가모임에 들어버렸다.

생협에서 식품만 파는 게 아니었다. 산하 소모임만 해도 스무 개, 여러가지 공익 캠페인도 활발하다.

젊고(거의 띠동갑들) 부지런한 여성들의 기운이 날 사로잡았다. 지금 내 몸과 마음 모두에 가장 필요한 것, 활기!

 

등록을 하면서 마침 옆방에서 모임을 끝낸 우크렐레반에 관심을 보였더니

오머니나, 이사님이 자기가 쓰던 우크렐레를 하사하시며 그 모임에도 나오라시네.

어버버버 하다가 졸지에 우크렐레반에도 등록. (코드라도 익혀두면 간단한 노래반주용으로 쓸만 하겠지).

일주일에 세 번이나 제주시까지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점점 익숙해져가는 독거노인 모드에 대한 3개월분 처방으로 적절해 보인다.

 

헌데 그걸로도 양이 안 찼나, 갑자기 오카리나까지 입양하게 되었다.

제주에 가장 어울리는 악기 같아서 언제고 시작해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 볼일로 구제주에 나갔다가 '흙피리오카리나'라는 간판을 본 게 실수였다.

모양도 크기도 점잖게 생긴 앨토 오카리나의 그윽한 음색에 빠져들었는데, 마침 동호회 모임이 시작되려는 찰나.

연습하는 사람들이 불어대는  '물놀이'(걸어서 세계여행의 타이틀곡)를 듣고 있자니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운지 등 기초를 좀 배울 수 있는지 물으니, 레슨은 따로 없고 매주 금요일 저녁 동호회 모임 30분 전에 오면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일단 기초 텅잉으로 오른손 운지만 연습해가지고 그 다음 금요일에 갔다.

악보는 볼 줄 알고 나름 음감이 있다고 자부하는지라, 열심히 독학하다가 어영부영 끼어들 셈이었다.

헌데, 4년씩 하신 분들의 손가락들이 32분음표와 꾸밈음을 싣고 거침없이 오카리나 위를 날아다니는 걸 보니..... 흑! 

겨우 왼손 운지를 익힌 입문자가 낄 자리는 없다. 혼자 연습할 수밖에.

그래서 요즘 아침저녁으로 머리가 띵해질 때까지 연습을 한다. 내일모레 첫 모임인 우크렐레는 뒷전으로 밀렸다.

사실 우크렐레 팀도 이미 3개월을 경과한 팀이기 때문에 눈으로만 익힌 코드 가지고는 민폐가 될 공산이 크지만

그건 그냥 기타 치던 감각으로 뭉개보려고....ㅎㅎㅎ (현재 스코어, 오카리나 승!)

 

 

드디어 요가반 첫 모임에 갔다.

취미동호회 수준 치고는 꽤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

유연성 하나는 자신 있던 내 몸이 몇 년간 방치한 결과 그냥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요가가 혼자 할 수 있는 수련이라지만 아무리 강한 의지로도 이렇게 망가진 몸을 움직이긴 어렵겠다. 더 나빠지기 전에 시작하게 되어 다행이다.

지금 기분으로는 집에서도 매일 요가매트 위에 누울 것 같으나......며칠 안 가 TV 앞에 눕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이 포스팅 시작만 해놓고 미뤄뒀다가 돌아오니 두번째 강습을 마친 시점.. ㅎㅎ 첫번째 강습 때보다 훨씬 부드럽고 개운하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어.)

뒷뜰 조릿대가 폭풍성장중이다. 좀 잘라줘야 할 텐데... ㅠ.ㅠ

 

이걸로도 모자랐냐고? 그건 절대 아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다는 걸 알고있기에, 이주민 까페에 뜬 '이주민합창단 창단' 제안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거다.

충동적으로 참가하겠다는 꼬리를 달고 나니 어느새 모임날이 되었다. 어째, 약속했으니 가봐야지.

모임 장소가 동네 교회라는 사실도 오지랍이 너무 넓어질까 소심해지는 마음에 뒷바람을 넣었다.

 

공지가 잘 안 된 건지 진부한 장르여서 그런 건지, 겨우 여섯 명 모였다.

하지만 모임 제안자를 비롯, 참가자들 모두 합창, 또는 중창단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합창단의 취지나 색깔 등에 대해 그리 크게 엇나가지 않아서  

진행된다면 한번 참여해볼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당분간은 동네교회에서 연습할 모양이니 이른 저녁 먹고 쓰레빠 끌고.... ㅎㅎㅎ

젊은 제안자의 열성적인 태도도 신뢰를 준다. 

반주자도 지휘자도 거의 물색해두었고, 육지에서 손꼽히는 시립합창단의 악보도 다수 확보해놓았다고......

단원 구성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지만, 안 되면 중창단이라도 건져야지.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대개들 이런 기대를 한다지만 뭐 끝이 꼭 창대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좋은 레퍼터리와 화음쌓기를 즐기는 각 파트 네 명만 있다면 내겐 족하다.

문제는 나의 망가진 악기인데.....(성대결절 후 10년도 넘게 노래를 거의 안 불렀다. ㅠ.ㅠ)

발성연습을 잘 하다 보면 혹시 득음을 할지 아나. (사실 이 절망적인 기대가 오랜 세월 합창단을 사모하게 했던 가장 큰 이유..)

 

고요하던 독거생활이 갑자기 시끄러워지겠다. 아침엔 발성연습, 저녁엔 오카리나 연습.. ㅋㅋㅋ ^^

지금까지의 경험상 석 달만 꾸준히 해도 뭐가 남긴 한다. 뜻하지 않게 한꺼번에 들이닥친 이 세 가지 음악활동을 끌어안고... 어디 한번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