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애월리 四季

추석선물 - 미란이

張萬玉 2015. 10. 5. 12:44

추석은 농경사회가 낳은 명절이기 때문에 가족을 전제로 할 때만 의미있는 날이다.

남편이 외아들이어서 남편 생전에도 세 식구 단합대회에 불과했던 추석이,  남편이 떠나고 나자 거의 의미를 잃었다.

기독교를 믿으셨던 시부모님 덕택에 차례상을 장만할 일도 없고

함께 있다면 토란탕 좋아하는 아들에게 토란탕이나 끓여준다면 모를까, 아들넘도 웬 알바를 이 명절에 밤낮없이 한다니......

게다가 가까운 분의 문상차 서울에 다녀온 지 보름도 되지 않았기에, 이번 추석은 난생 처음 매우 심심한 명절을 보내볼 셈이었다. 

헌데...... 이번 명절 역시 (명절과는 크게 상관없는) 시끌벅적한 명절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그 어느 때 명절보다 후폭풍이 오래 가고 있는.....ㅋㅋㅋ)

 

나의 추석연휴를 꽉 채운 그 첫번째 손님, 미란이.

이주민 까페에서 추석연휴 10일간 강아지를 돌봐줄 사람을 찾는 SOS가 떴다.

밖에서 키우는 '개'는 겪어봤어도 집안에서 물고빠는 애완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호기심을 충족시킬 절호의 기회!

늘 꿈꾸어왔던  애완동물기르기가 과연 올바른 선택일지 알아보기도 할 겸 시작한 두 살배기 마르티즈 미란이와의 동거.

영리하고 사람 좋아하는 요 애교쟁이 덕분에 이번 추석엔 참 많이도 웃었다만 결론은....

(애완동물은 거의 모든 것을 요구한다. 아니, 내가 자발적으로 거의 모든 것을 바친다... .ㅠ.ㅠ)

 

주인이 떠나고 나자 마구 짖어대며 구석탱이만 찾던 녀석, 밤이 되자 은근슬쩍 내 침대 발치에 자리를 잡더니 

아침이 밝으니 언제 낯을 가렸느냐는 듯 얼굴을 정신없이 핥아대며 빨리 일어나라고 야단이다.(자기 집에서도 그렇게 아침을 시작했나보다)

정신없이 장난을 치다가도, 사람 밥 먹을 때 식탁 옆에 두 발로 서서 낑낑대다가도...... 눈길을 거두면 바로 조신모드로 들어가는 영리한 녀석.

배변 패드에 정확히 대소변을 가려서 기특하다 했더니만, 집에 두고 외출을 하니 온동네에 배설물을 뿌려놓는 곤조도 있는 녀석.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 일단 마구 짖어대지만 어느샌가 슬그머니 그 옆에 앉아 바짓가랭이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함께 있던 인물이 안 보이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바로 인원점검에 들어가는 의리있는 녀석... ㅋㅋ

게다가 풍부한 리액션으로 개가 보여줄 수 있는 온갖 애교를 다 구사하니 이뻐하지 않을 재간이 있나. 

 

나한테 장난 걸지 말아요. 발동 걸리면 못말리거든요.

 

아, 꼬시지 마시라니까요?

 

이걸 그냥, 확 그냥 막 그냥.....(발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장난치는 게 그렇게 좋아요? 난 이제 좀 쉴래요..

 

아잉, 좀 쉰다니까요?

 

새엄마는 못말려.. 너무 철딱서니가 없다구욧!

 

정 그러시다면야.....

 

이번엔 손이 아니고 발이에욧?

 

앙!! 내 날카로운 이빨맛을 보여드리지!!

 

휴~ 이제 고만 좀.... 한숨 자고 다시 해욧.

 

코도 골고......

 

잠꼬대도 하고...

 

 

산으로 간 미란이

 

@ 어음리 빌레못 올레(feat. 노마드)

 

고운 산책길만 다녀버릇했는지, 인적 없는 깊은 숲길에 오자 무서워한다.

그래도 제 발로 6킬로 정도는 걸었을 거다.

주인과 떨어진 지 한 시간 만에 집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떨궈진 연약한 녀석.... 사시나무 떨듯이 떨긴 했지만

그래도 제가 의지할 곳이 어딘지는 알아채고 순순히 품으로 파고들며 안정을 찾았다. 

이후 매일 날만 밝으면 목줄을 물고 와서는 나가자고 졸라대는 걸 보면 그날의 충격이 꽤 신선했나보다.

 

 

 

 

@ 족은노꼬메오름 & 고사리밭길 (feat. 노마드)

 

큰노꼬메를 간다는 것이 수다에 정신 팔다가 족은노꼬메를 넘었다.

큰노꼬메에서 내려온 뒤 고사리밭길을 경유해서 궷물오름주차장으로 돌아가는 8킬로 넘는 길을 신나게 누벼주시는 미란이.

빌레못길 때와는 달리 우리를 끌고 갈 정도로 놀라운 체력을 과시했다.

땡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헥헥헥헥...... 내 갈 길을 가리라!

 

큰엄마는 왜 안 와요?

 

 

 이시돌센터 은총의 동산에서 노을의 은총을 듬뿍 받고 있는 미란이

 

바다로 간 미란이

 

노마드가 떠나고 비로소 단둘이, 늘 걷는 한담길 산책에 나섰다. 

곽지해수욕장 모래밭에 풀어놓으니 동네 아가들 등쌀이 안스러울 정도다.

모래 뿌리는 녀석은 아주 혼쭐을 내줬다. ㅋㅋ

 

 

 

섬으로 간 미란이

 

나가버릇하더니 이젠 아주 빚쟁이가 빚 독촉하듯 밥숟가락 놓기 무섭게 목줄을 물고 다니며 소란을 피운다.

하긴 오늘은 모두가 밖으로 나가는 일요일 아닌가. 늘 바라보기만 했던 한림항 건너 비양도로 납시기로 한다.

큰 기대 없이.... 그냥 서쪽 바닷가에 살았던 의리로.... ㅎㅎ 

비양도 특집은 다음으로 미루고..... 미란이 비양도 나들이 인증샷만 몇 장...(개 목줄 잡고 사진 찍기 쉽지 않았음.)

 

호돌이식당의 왕언니 복순이. 관광객 따라다니면서 가이드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순하고 영리한 녀석이다.

미란이도 언니가 맘에 드는 모양, 곧바로 어울려 잘 논다.

 

킁킁, 뭐지.... 이 달콤한 비린내는.....

 

지칠줄 모르는 탐색활동으로 목줄잡이를 지치게 하는 녀석.

 

어잇, 뭐해요! 빨리 올라오란 말예욧!!

녀석이 참 영리한 것이......

계단을 올라갈 때 발을 함께 떼기 시작해도 녀석이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서 여섯 계단 정도 올라가면 목줄이 당겨지는데

그 리듬을 눈치챘는지 정확히 여섯 계단 올라가면 잠깐 발을 멈춰 내가 올라오기를 기다려주는 거다. 엽렵한 녀석 같으니라고...

 

휴, 비양봉 정상이다. (바람을 느끼는 저 표정 좀 봐라...ㅋㅋ)

 

한라산을 배경으로 인증샷 한 컷 남겨주려고 했는데 폰을 남에게 맡겼더니 엉뚱한 배경이 찍혔다.

 

난생 처음 배도 타고, 팬들의 애정공세에 시달리고, 섬 한 바퀴, 봉우리 한 개 넘고......밧데리 방전.

목욕 시키자 마자 곯아떨어졌던 녀석, 친엄마의 발소리에 스프링 튀듯 뛰쳐나가며 뱅뱅 돌고 뒹굴고 야단이 났다.

예상은 했지만...... 지난 열흘간 우리의 추억은 대체 뭐였더냐. 흑흑흑...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렸건만 도무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내게는 분에 넘쳤던 추석선물 미란이.... 안녕~~ 다음에 엄마 육지 가시면 또 봐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