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萬玉 2015. 10. 5. 14:27

노마드와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다음칼럼 '나쁜여자' 시절부터 '팔찌의 제왕'에 등극했던 시절을 거쳐 '노마드'가 되기까지, 우리는 서로의 글을 무수히도 읽어댔던 쌍방 애독자 관계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오프라인에서도 두 번인가 만났지만. 

그만큼 그녀는 내가 소화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은 여자였다. 쉽게 씹히지도 않고 맛도 낯설었다. 

그런 그녀가 내 곁에서 일주일간 머물겠다고 했다.

흥미와 난감과 짜증과 기대가 복잡하게 소용돌이쳤지만 나라는 사람을 상당부분 구성하고 있는 호기심이 결국 이겼다.

 

구하기 어려운 명절표로 오느라고 신새벽에 집을 나섰다는 그녀가 제주공항에 도착한 것은 커피숍도 문을 안 연 이른 아침....

처음엔, 버스를 어찌어찌 타고 와서 골목길을 요래요래 돌아 들어와 내가 요가를 하러 가서 집에 없으니 어디어디에 숨겨놓은 열쇠를 찾아라.... 그랬다가,

요가 시간보다 두 시간쯤 일찍 나가 그녀를 픽업해다가 한라수목원에 떨어뜨려놓고 수업 마칠 때까지 놀고 있으라고 했다.

까짓 요가야 한번 쯤 빠지는 게 대수랴.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한 것은

'내 생활이 그렇게 네 마음대로 훅 들어올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는 팻말을 우리의 일주일이 시작되는 시점에 꾹 박아둬야겠다는 소심한 '조치'였으리라. 

그만큼 노마드는 내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ㅋㅋㅋ

그녀는 세상의 모든 인연들을 신이 부여해준 기회로 보고, 그것들을 잡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하려는 전사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에너지가 만드는 파장이 주변에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는지 본인은 알까 몰러. ^^

 

이튿날 오후, 미란이가 왔다..

주인과의 이별을 잊게 해줄 겸 바로 산책길로 이끌었다.

장소는 내가 즐겨 찾는 어음리의 빌레못 인근 8킬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주 공식 올레길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코스다.

한여름 가지 않았더니 이 길의 백미인 삼나무숲 옛길이 잡풀에 묻혀버릴 지경이 되었다.

여전사의 얼굴도 노을빛에 담그니 발그레한 소녀 얼굴로 변한다.   

 

 

 

 

이 시점부터 노마드가 매순간 '예술'을 열렬히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녀가 잠들어 있던 나의 예술세포를 흔들어 깨우니 심상했던 주변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같은 지점을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는 순간을 발견할 때 느끼는 희열! 우리는 '공명'을 넘어 거의 '열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