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프리카

에티오피아 10 - 다시 아디스 아바바

張萬玉 2014. 10. 14. 13:15

비행기가 2시간이나 연착되는 바람에 6시가 넘어서야 도착.  

다니엘과의 약속 포기하고 점찍어놓은 숙소 타이투로 갔다. 40비르짜리 방 밖에 안 남아서 할 수 없이 거기라도 묵겠다고 했는데 역시나.... 

어둡고 침대 꺼지고 습기차고. 아침 없고 와이파이 없고 공항픽업 없고... 있는 건 론리에 나오는 이름값밖에 없다.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인근 Baro펜션에 남은 마지막 방 두 개를 얻었는데 300비르에 와이파이가 팡팡 터진다.

스탭들도 친절하고 분위기도 조용하고... 특히 정원이 마음에 들었다.

다나킬 투어에 함께했던 두 신사분들은 Bole 지역으로 갔는데 거기는 보통 150~200달러 한다. 시설은 잘 사는 나라의 삼성급 정도 되는데 가격은 사성급이다.


그러나.... 싼 가격 때문에 다 용서해주려던 마음이 하룻밤 지내고 확 뒤집혔다. 허술한 시설이나 더운물 안 나오는 건 문제도 아니다. 침대 매트리스가 경사지게 꺼져서 도무지 똑바로 누워지지가 않는다. 화산투어할 때 비탈에 깔았던 스폰지 요보다 나을 게 없다. 밤새 미끄러졌다. 게다가 밤이 되니 추워서 몸이 다 오그라드네.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몸을 좀 편하게 해둬야겠기에 자다 말고 일어나 아고다 사이트를 뒤져서 볼레 지역에서 그나마 싼 칼렙호텔 싱글룸을 71000비르에 예약했다. 홍쌤은 그냥 있겠다고 해서 이튿날 아침 혼자 체크아웃. 혼자 나가기가 좀 그렇긴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니니 나름 생각이 있는 거겠지. 맘 단단히 먹고 나왔다. 어차피 따로 떠난 사이니 하루쯤 혼자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도 있고.








Baro 호텔에서 박물관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기에 동네 구경 하면서 걸었다.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

이 박물관을 유명하게 해주는 인류 최초의 미라 '루시'는 별로 감흥 없었고, 그보다는 정원과 2층에 전시된 그림들이 좋았다.






















다시 15분쯤 걸어 아디스아바바 대학 내 민속연구소에 들렀다. 다나킬 투어 대신 갈까 했던 남쪽지방 소수민족들 마을을 아디스아바바 민속박물관에서 본 셈.
이 대학이 원래 하이레셀라시에 황제가 살던 궁전이라 캠퍼스 구경이 볼 만하다. 그가 사용하던 집무실과 관저도 보존해놓았는데, 내 초등학교 시절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동시대 인물의 거처라고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바나나와 오렌지로 점심 때우고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갔는데....

먼지 쌓이고 텅 비어 있는 기념관도 안 참전의 역사를 돈벌이 삼는 것 같은 이곳 사람들 태도도 마음에 걸린다. 이렇게 관리 못할 걸 왜 지어준 걸까...









택시 타고 볼레로 이동, 헤어진 일행들을 한국식당에서 만나 비빔밥 등으로 오늘의 첫끼이자 저녁. 포식.

현지음식이나 다를 게 없는 재료를 쓸 테데 음식값이 왜 그리 비싸야 하는 건지 좀 억울하지만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에 행복 만땅이다.

밥 먹다가 옆에 앉은 명성교회 선교사들과 주인아저씨가 나누는 얘길 듯고 있으니 실소가 절로 나온다. 15년이나 여기 살았다니 볼 꼴 못볼 꼴 다 보았겠지. 한때 개방 직후 중국에 살아본 사람으로서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아프리카 여행 중 가장 비싼 호텔에 체크인, 더운물로 실컷 샤워를 하고 나니 심신이 다 풀어진다. 일찌감치 취침 모드. 밖에서는 심란한 장대비가 내렸다.





이튿날 아침 일행이 다시 모여 메르까도(아디스 아바바에서 가장 큰 농수산물 시장)에 갔는데 내가 본 장터 중 최악이었다.


인도의 시장, 아니 뭄바이 외곽 아시아 최대 난민촌보다 더 끔찍하다. 비포장 진흙바닥에 가축들의 똥물이 흘러넘쳐 진창을 이루고 그 위로 쌓을 곳을 못찾는 농산물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도무지 시장 구경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악을 써대는 사람들을 헤치고 겨우 빠져나오다가 뭘 사라고 팔까지 붙잡는 녀석들과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더 기막힌 건 이 무시무시한 생존현장 바로 인근에 대통령궁과 국영방송국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눈도 없나? 최소한 길이라도 좀 닦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시장을 빠져나와 커피 볶는 집으로 유명한 토모카를 찾아가 생두를 좀 사보려고 했더니 로스팅한 것밖에 안 판다. 어쨌거나 향긋한 커피향을 맡으니 기분이 좋아져 볶은 콩과 그라인드 한 것을 섞어 좋은 가격에 듬뿍 샀다. 귀국선물로 충분하다.











 




Taitu에 점심 먹으러 갔다가 사막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애들과 마주쳤는데, 하룻밤이나마 고생을 나눈 사이라 그런가 어찌나 반갑던지.

예전에 왕비가 살던 집이라고 레스토랑이 제법 고급스럽다. (호텔은 꽝!이다) 음식도 그럭저럭 괜찮고 이층에 꾸며진 갤러리 구경도 볼만 했다.


 
















     


돌아가는 길에 눈에 띄어 들어가본 추모관.

붉은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곳이라는 간판이 낯설어 보였다. 이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 아니었나?

에티오피아는 1974년에 에티오피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출범시켰지만 내전과 소말리아 분쟁을 겪게 되는데 이 분쟁들은 주기적인 가뭄과 기근으로 악화되었고

기근은 1970∼80년대 수백만 명을 기아선상으로 몰고 갔다. 이 기간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추모관이라고 한다.

지금도 에티오피아는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1995년 연방헌법이 공포되면서 각 주들은 이전보다 큰 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고 쓰여 있다.



종합운동장 같은 곳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기 들어가봤더니 판촉을 위한 큰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저녁에는 또 한국식당 가서 된장찌개 먹고(몸이 피곤하니 입에 맞는 음식만 찾게 된다. 외국 가서 한국음식만 찾아다닌다고 쉽게 흉볼 게 아니네)

호텔에 딸린 공짜싸우나를 하러 갔는데 멋쟁이 검은미녀들이 흰 팩을 하고 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사는 게 이리 다를까.

아디스 아바바 최대의 번화가이자 외국 비즈니스맨들의 거리인 볼레 지역... 멋장이들도 많지만 구걸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아 돌아다니기가 힘들 정도다.




에티오피아에서의 마지막 날

새벽에 깼으나 그간의 여독이 몰려오는지 도무지 침대에서 나갈 마음이 안 생긴다. 아침도 안 먹고 12시에 체크아웃 시간까지 자다깨다....

다시 한국식당까지 찾아가 북엇국 먹고 좀 기운이 난다. 5시 30분에 출발한다는 호텔 무료 셔틀  시간까지 트리니티 성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몸과 마음을 다 쥐어짰던 에티오피아 여행... 처음 배낭 지고 떠났던 남미여행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한동안 단체배낭으로 다니면서 무디어졌던 감각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느낌. 앞으로는 웬만하면 혼자배낭을 고수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