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터키 4 -5 : 트라브존 / 여름궁전과 힐랄의 집

張萬玉 2017. 10. 6. 12:30

모처럼 일정 안 잡고 늦게 일어난 날.

빨래도 하고 노대통령 추모식과 503호 언니 재판소식을 보며 뒹굴다 11시 넘어서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어딜 좀 가볼까. 비는 내리고....

일단 점심을 먹고 아야소피아, 아타튀르크 여름별장에 다녀오기로 한다. 별 기대는 없지만 메이단과 좀 떨어진 동네이니 핑게김에 다른 동네 구경 좀 하려고...




그런데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박물관이라고 쓰인 건물이 눈에 띄길래 잠깐 둘러보자고 들어갔다.

헌데 암만해도 여긴 안내책자에서 봤던 데가 아니라 무슨 민속박물관 같다. 요 며칠 근교 산간마을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조금 흥미로웠을 테지만 전시품이라고 챙겨놓은 것들이 거의 민속의 본거지에서 봤던 것들이라 실망. 오디오해설기까지 돈 주고 빌렸는데...





오기가 나서 안내책자에서 소개한 박물관을 찾겠다 마음먹고 점심 먹었던 레스토랑 주인에게 물었더니 길 건너 언덕으로 올라가라고 너무 자신있게 가르쳐 주는데... 애써 오르막길을 올라가봐도 못찾겠다. 트라브존 박물관아, 도대체 어디로 숨은 거니?
막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떼의 남자고등학생들이 몰려와 도와주겠다고 에워싼다. 그러나 자꾸만 길 건너편을 가리키는 거다.
'거기 나 다녀왔다고!'
말도 안 통하고 내가 다녀온 쪽으로 자꾸 가라니 성가시기만 해서.. 됐다고, 내가 찾아가겠다고 뿌리치고 돌아서서 몇걸음 더 가니 바로 고풍한 건물이 보인다. '봐, 여기잖아!' 하고 보란 듯이 들어가니 얘들이 아니라면서 따라들어오고... 점잖은 아저씨가 맞아주고....ㅋㅋㅋ
입장료도 안 받고 안으로 모시길래 얼씨구나 하고 들어가보니....헉, 개인의 갤러리 겸 작업실이었다. 아이고 창피! 헌데 얘들은 왜 또 따라들어와가지곤...
애들이 뭐라뭐라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신사분이 애들을 주욱 세워놓고 나더러 같이 사진을 찍자는 제스처를 한다. 개그가 따로 없다.
기념촬영이 끝나고 이 번거로운 친구들을 떼어버리려고 아야소피아 가는 버스 정류장을 물었더니 또 따라오라고 외친다.

버스 타고 얼른 이 자리를 떠야지 창피해서 원....하고 부지런히 따라가는데
엇, 길 건너 골목에 안내책자에서 본 박물관이 떡하니 서 있다. 애구, 늬들이 말한 데가 여기였구나. 미안하다 얘들아. 어쨌든 웃겨줘서 고마워. ^^



















우여곡절 끝에 만난 박물관이니 재미있으려고 노력하며 한 바퀴 돌고 아야소피아 가는 돌무쉬에 올라탔다.

마을버스처럼 동네 골목까지 누벼주는 2리라짜리 승합차 돌무쉬는 비탈과 좁은길이 많은 트라브존에 딱 맞춤한 교통수단이다.

15분쯤 달려 아야소피아 도착.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에 지어진 중세의 성당인 듯 프레스코화도 남아 있다. 언덕 위에 세워져 전망도 근사했다.

성당도 성당이지만 관광지 냄새 나는 메이단을 벗어나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수수한 동네에 들어오니 신이 난다.

병원 구경도 하고 공짜 홍차도 한 잔 얻어먹고 할머니들과 손짓발짓 친한척도 하고....












지금은 본당을 무슬림 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메이단으로 돌아와서 다시 아타튀르크가 말년에 요양차 머물렀다는 여름별장으로 갔는데 여기서 나의 터키 여행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쓰게 되었달까. ^^


아타튀르크 여름별장으로 올라가면서 돌무쉬 좌석이 하나 둘 비어가는데 혹시 내릴 곳을 놓칠까 싶어 앞에 앉은 아가씨에게 '아타튀르크 키요스크?' 하며 내리는 손짓을 하니 반색을 하며 '혹시 한국사람이에요?' 하고 한국말로 묻는다. 그러더니,
한국말을 공부하고 있는데 내가 괜찮다면 여름별장에 같이 가며 배운 한국말을 연습하고 싶단다. Why not?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입학시험을 며칠 앞둔 Hilal이라는 이 아가씨는 대학에 입학하면 바로 터키정부의 장학금을 신청하여 연세어학당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한국어 실력은 많이 딸리지만 영어가 제법 유창하다. 연세어학당 입학시험에는 영어가 관건이란다.

재빨리 달려가 내 입장료까지 내주고 아름다운 정원과 내부까지 열심히 설명해주는 그녀가 어찌나 귀엽고 고맙던지 그녀의 한국말 연습에 보탬이 될 만한 쉬운 단어들을 골라 질문을 던지느라 구경은 뒷전, 별장을 다 돌아보고 났어도 미진한 마음에 별장 옆 홍차가...게로 들어가 이번엔 영어 수다....ㅎㅎ
엄마가 한국드라마 광팬이라고, 두 정거장만 내려가면 자기 집인데 바쁘지 않으면 자기 집에 가자고, 엄마가 아주 좋아할 꺼란다. 아이고 이런 행운이!!
갑작스런 방문이 실례가 되지 않겠느냐고 사양하는 척 하다가 덤썩 물었다. 이런 기회 절대 놓칠 수 없지! 이미 SNS를 통해 한국친구들을 여럿 사귀고 있고 그 중 한 친구는 터키여행 왔다가 자기 집에서 묵고 가기도 했단다. 엄마도 한국가정과 교류가 있기 때문에 한국말은 못해도 한국사람에 익숙하다고.




이 탁자는 자기 할아버지가 경영하던 호텔에 있던 것인데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여름별장을 조성할 때 기증한 거란다.

범상치 않은 가문의 손녀인 모양이다.






그녀의 집은 새로 조성된 고층아파트 단지. 흑해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집이었다. 아빠가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할아버지 소유의 호텔을 작은아버지와 함께 상속받아 그것도 운영하고 있다니 경제적으로 꽤 윤택한 집인 듯.

문을 여니 고1이라는 남동생과 6개월 된 늦둥이 여동생, 사람좋은 웃음이 떠나지 않는 젊은 엄마가 반갑게 맞아준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썰렁하다고는 하지만 한국 가정집에 비해 살림살이가 단촐한 편이라 실내가 꽤 넓어 보였다.(40평은 넘어 보임)
엄마가 39세라고 해서 어떻게 그리 일찍 결혼을 했나 물었더니 당시엔 그리 빠른 결혼 아니란다. 엄마 아빠가 어떻게 만났느냐 물었더니 아빠 교사 1년차 시절에 제자였던 엄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결혼은 아빠가 교사를 그만두고 나서 했단다. What a romantic story it is!! (엄마 아빠 나이는 다섯 살 차이)

집에 오고 나서는 대화 주도권이 활달한 엄마에게 넘어가고 힐랄은 통역만 하기도 바쁠 지경. 송일국과 김남길, 현빈의 출연작을 줄줄 꿰고 있는 엄마는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의 장소, 관습도 익히 알고 있었다. 아기가 좀더 자라면 한국에도 한번 와보고 싶단다. 트라브존에 사는 한국사람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에게서 레시피를 받아 김치도 담가봤으나 잘 안 되더라고 웃기도 하고....

웃고 즐기는 사이에 어느새 요리까지 했는지 황송하게도 저녁대접까지 받았다. 먹어보고 싶었으나 혹시 입에 안 맞을까봐 주문해보지 못했던 피망 속을 채운 밥과 호박 속을 채운 밥, 렌틸콩 스프가 차려졌다. 간단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터키식 집밥!
세상에 여행하면서 이런 호강은 처음이다. 한국에 오면 꼭 우리집에 초대하겠다고 약속했다. (페북친구를 더 이상 안 늘이려고 하는데...정말 어쩔 수가 없다.)

Please be my guest in Korea!!
인샬라!(as God's will) &마샬라!(God bles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