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네팔 12 - 포카라 8 / 히섭의 집

張萬玉 2018. 1. 6. 19:00

카트만두에서 한나절도 더 걸리는, 그것도 있을 만큼 있었다고 여겨지는 포카라로 다시 돌아온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번 여행을 시작하게 한 동기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네팔을 좋아하고 은퇴 후 네팔에서의 삶을 꿈꾸어온 경자씨 부부는 평소 후원해온 단체인 한네연의 네팔방문에 합류해서 활동이 끝난 후 자신들의 꿈을 펼칠 조건들을 확인해보기로 하고 선발대로 경자씨를 '파견'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여행 소식에, 현지인의 삶 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네팔어도 영어도 서툰 경자씨의 통역을 자처한 것이고.

그래서 '2018 인도-네팔 여행' 제3기에 접어든 24일부터, 경자씨의 한국 이웃인 조띠의 부모님(그 분들도 역시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집에 여장을 풀었다. 조띠는 한국인과 결혼한 지 10년을 넘긴 네팔여인으로, 경자씨의 네팔어 선생님이기도 하다.


뉴로드 쪽에서 사랑콧으로 들어가는 길목 동네에 있는 조띠 부모님 집에는 조띠의 할머니와 고모, 조띠의 남동생, 그리고 '확장된 의미의 가족'(세입자)들까지 10명이 넘게 살고 있다. 비록 바깥 화장실에... 더운물을 쓸 수 없는 환경이라 솔직이 안 심란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가족들의 정성 다한 환대는 그 모든 불편함을 떨치고도 남는다. 양배추 사다가 백김치도 담고 정말 백만 년 만에 얼음장 같은 물에 묵은 빨래 몽땅 빨아서 넘치는 햇볕 아래 바싹 말리고...
라이프 스타일이 어릴적 자란 달동네 시절로 돌아가니 마음까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하다. ^^


뉴로드 버스 터미널


치샤 콜라. 차가운 강이라는 뜻이다. 새로 조성된 주택부지에 집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다.

히섭의 집도 산골마을 카스키콧에서 이사 내려온 지 5년이 채 안 됐다고 한다.



히섭의 집 앞 골목. 오른쪽 단층집이 히섭의 집이다.

한국에 돈 벌러 가 있는 세 식구가 돌아오면 2층도 올리고 근처에 사놓은 땅에도 집을 하나 더 지을 거란다.


이 집의 어르신 히섭의 할머니.


히섭이 집에 없을 때 네팔어 통역 해주라고 이웃에 사는 동생을 데려다놓았다.

포카라대학 3학년 휴학중인 미자스는 영어도 요리도 잘하고 위트도 있는 멋쟁이다.


저녁 식사 전에 항상 럭시 한 잔.


저녁을 먹고 나서는 매일 가정예배를 본다. 힌두력으로 일 년의 마지막 달은 그래야 한단다.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히섭은 내게도 힌두교를 제대로 알리려고 꽤나 애를 썼다만.... (너무나 아는 것이 없고 정서적 문화적으로도 거리가 너무....)

예배를 인도하는 히섭의 모습은 거의 제사장 같다. 특히 공작 깃털로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일일이 짚어가며 낭독할 때. ^^




밖에 나가면 햇살이 따뜻하지만 집 안에 있으면 낮에도 추워서 덜덜덜...

K는 늘 할머니 난로를 안고 살았다.


히섭의 고모님


맨 안쪽 방을 우리에게 내어주고 아랫쪽 방 두 개에는 세입자가 산다. 방 안에 부엌까지 차려놓았다.


이 집의 어르신은 갓 80세가 넘으신 히섭의 할머니. 인물도 고우시고 지혜롭고 부지런하셔서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신다고.


세입자 젊은 아낙들


미자스의 형 밀란. 약간 언어장애가 있지만 택시 운전을 하며 집안의 가장 노릇을 잘 해내고 있다.

한국에 갈 거라고 하더니 정말 6개월 뒤 한국에 왔다.


동네 서점


놀랍게도 네팔 - 한 대역 동화가 있었다. 아이들보다는 한국어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간다고 한다.

번역자를 보니 네팔에서 오래 살았다는 한국 작가님이라는데...... 조금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쉬웠다.


동네에서 존경받던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른다고 하기에 따라나섰다.

이곳도 인도처럼 화장하여 재를 강물에 뿌린다. 상주가 삭발을 하고 흰 옷을 입는 등 장례 풍습도 비슷하다.

동네에서 30분 정도 더 들어가니 빙하수가 흘러내리는 푸른 강이 나왔다. 가까이 가기가 어려워서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삶은 전쟁이다. 모든 생물은 천지 한 구석 제 자리 하나 차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 힘이 다하여 벗어두고 가는 껍데기는 초라하지만 그의 战史만은 우주의 기운으로 남을 것이다. (바람이 몹시 부는 추운 다리 위에서 덜덜 떨며 해본 생각.)



<사랑콧 어드벤처>


한네연과 함께 3박4일 트레킹을 하고 나서 암만해도 내가 간이 부었나보다. 아침산책이라고 나갔다가 그만 사랑콧까지 올라가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하산길을 레이크사이드로 내려가는 급비탈 지름길로 잡고 들어섰다가 덤불에 갖혀버렸다.

히섭과 미쟈스에게 너희는 오늘 day-off 라고 큰소리치며 나선 길이었는데 좋은 길 놔두고 잘 알지도 못하는 숲길로 접어든 게 화근이었다. 아무튼 멀리 발 아래서 반짝이는 페와호수를 바라보며 되는대로 굴러내려오다 보니 온몸에 도깨비바늘이 달라붙었다. 수면양말 재질인 경자씨 바지는 바늘방석이라고 할 정도여서 밭담에 걸터앉아 거의 한 시간을 뜯어내야 했다. 놀멘놀멘 올라오는 데 한 시간 반, 내려가는 데 두 시간 반...아침에 떠난 길이 훌쩍 오후가 되었다.

















기진맥진 절뚝절뚝 제로까페로 찾아드니 라다씨도 burn out 상태. 손님도 많았고 저녁에 열릴 caring concert와 네팔 아이들이 찍은 사진 전시회 준비로 경황이 없단다. 모두 최선을 다해 살고 있구나. 간만의 체력전 덕분에 밤 10시도 안 되어 곯아떨어졌다가 네 시쯤 깼는데...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