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프리카

튀니지 18 - 수스 / 모나스티르

張萬玉 2019. 1. 25. 16:07

오늘은 마트마타(인근 가베스)에서 수스로 오는 루아지에서 만난 Mejda양과의 데이트가 잡혀있는 날.

그녀의 학교가 있는 수스 인근 도시 Monastir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나스티르는 하비브 초대 대통령의 고향으로 볼거리가 많다고들 하길래 수스에 오면 안 그래도 한번 가볼 생각이었는데 잘 됐다.
사실 메즈다 양이 너무 어려서 종일데이트가 좀 부담스럽기는 하다.
그녀는 이제 대학 1학년생, 한국드라마 팬이고 영어 연습 하고 싶어하고...
이런 아가씨들은 튀니지뿐 아니라 터키, 이란 등 중동국가에 널렸다. 이 친구들과의 대화는 대개 앉은자리 30분이면 충분하다.
드라마도 잘 안 보고 패션에도 관심이 없는 나는 그 세계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고, 내 관심사에 대해서는 그애들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즉 같이 즐기기엔 세대차가 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데이트에 오케이한 것은 그녀의 지적 호기심을 살짝 보기도 했고, 결정적으로는 자기 자취방에 데려가겠다고 한 것 때문에. 나는 좀 길게 갈 친구다 싶으면 그녀(그)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을 좋아한다.
멋진 사람보다는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고 잘나가는 사람보다는 나에 대한 성심을 품고 있는 사람(그것도 막 내놓지 않고 은근히 알아채게 하는)이 좋다.
친구란 게 당연히 그렇기 마련이지만 요즘처럼 친구를 인맥으로 여기거나 놀 때만 뭉치는 사교모임, 실제인물이라기보단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근사하게 표현된 인물로 이루어진 페친 등등 여러 개념들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성품 같은 건 느낄 기회도 겨를도 없다. 사교성을 타고난 덕분에 그 세계는 그 세계대로 즐기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날로그 인간인 나는 좀 시간이 걸리고 좀 은근한 솔직한 사귐에서 안도감을 얻는다.
영화 로맨틱 헐리데이나 중경삼림 중의 에피소드처럼 주인 없는 방에서 주인의 성품과 취향을 느껴보는 것, 멋지지 않나?
(지금 나의 제주 집, 나의 공간에는 내 오랜 벗들이 교대로 다녀가며 나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ㅎㅎ)
낯선 내게 껌을 주고 모르는 거 있으면 전화하라고 번호 주고, 결국 집으로 초대까지 해주었지만 메즈다 양에게 그것까지 기대하는 건 아니고... 어쨌든 그녀와의 시간이 유쾌한 추억이 되기를 바라며 출바알~



튀니지 국민들의 애증의 대상 초대 대통령 하비브의 고향 사택.

1903년에 태어나 법조인, 언론인, 청년독립운동가를 거쳐 정치인으로 성장한 하비브 부르기바는 2차대전 종전 후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친서방정책을 펴며 교육, 인권 등 다방면에서 튀니지를 근대화시키는 데 큰 업적을 남겼으나 경제난 등 사회불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1987년 무혈쿠테타에 의해 30년 장기집권의 권좌에서 물러난 뒤 고향인 모나스티르에 유배(!)되어 전용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다가 96세를 일기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마쳤다.

이 호화저택이 지어진 것은 그의 하야 직후인 듯한데, 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림도 없지,라고 미워하는 한국인의 눈에도 이 집은 그냥 호화주택이 아니라 예술적 품격이 살아 있는 미술관이다. European Arabic이라고 해야 할까? European Exotic 이라고 해야 할까. 암튼 이 귀한 물건을 때려부수지 않고 살려두어 고맙다. 이왕 살아남았으니 비판적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로 해변과 면해 있는 정원도 근사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눈길을 끈 것은 이국적(페르시아풍) 그림이 새겨진 아름다운 타일 벽이었다.














모스티르 시내 구경






웬만한 도시 어디에나 있는 카스바


















하비브 대통령의 초호화 묘지









메지다네 학교 가는 길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의 시장끼를 해결해주는 노천식당










뱀발 : 오늘의 미담


미담 1

모나스티르행 루아지 정거장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연세 지긋한 아저씨가 꽤 영어를 하신다.

조금 가더니 차를 멈추며 여기도 모스타르행 루아지가 있는데 왜 시티 센터에 있는 정거장까지 가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이곳 루아지 정거장에는 캉타오윈 가는 것 밖에 없다고 들었다니까 자기가 알기론 분명히 있다고...

갑자기 차를 세우고는 꽤 멀리까지 뛰어가서 물어보고 돌아와,

있기는 있는데 모나스티르 외곽 2킬로에서 서는 거라고, 너는 길을 모를 테니 그냥 시내 중심으로 가는게 좋겠다고 다시 시동을 걸고 미터기를 켜신다.

 

미담2

루아지 정거장에 도착해보니 모나스티르뿐 아니라 튜니스 등 여기저기로 떠나는 루아지들이 다 모여 있길래

내일 갈 카이로완과 엘젬행 루아지가 서는 위치를 미리 확인해두었다.

모나스티르에 도착해서 내리려는데, 내내 내 옆자리에서 눈을 내리깔고 있던 얌전한 아가씨가 다급하게 부르더니 안 되는 영어 다 동원해서 '여기는 카이로완이 아니라 모나스티르'란다. 나도 알고 있고 카이로완은 내일 갈 거라고 손짓발짓 합쳐서 대답하니 다행이라는 제스추어.

아마 내가 카이로완 가는 루아지를 묻는 장면을 봤던 모양이다, 말은 안 되고 차는 떠났고... 그래서 오는 내내 걱정했던 모양이다.

이제 걱정을 끝내도 되는데 친구 만나러 택시 타고 간다니까 나서서 택시 잡아주고 택시 기사에게 내 목적지 알려주고 나서야 제 갈길로 갔다.

 

미담3

혹시나 싶어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 Mejda양이 제 친구들을 대거 동원한 것이다.

영어가 모자랄까봐 1시에 약속 있는 영어 유창한 친구까지 끌고 왔다. 오후 다섯 시쯤이나 되어야 끝날 만한 계획도 빵빵하게 짜가지고.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려고,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아이템들은 이미 내겐 익숙하여 패스해도 되는 곳들(카스바, 해변가 등등).

아무튼 성의가 괘씸하여 즐거이 끌려다니느라고 내가 기대했던 그녀의 자취집 방문까지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신실한 무슬림으로서 격변하는 현대를 살아내고 있는 튀니지 젊은이들의 고민을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점심값을 서둘러 치렀더니 마구 당황해하며 저녁은 꼭 자기들이 사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비록 값싼 거리음식이었지만 라블라비라는 매우 스파이시한 전통식 빵죽 한 그릇을 참 달게도 얻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