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프리카

튀니지 21 - H'biba Ciao!

張萬玉 2019. 1. 29. 16:25

두 달 간의 여행이 순조롭게 끝나....면 섭섭하지. 결국 크게 한껀 했다.
트렁크는 마누 엄마 집에 맡겨놓고, 내 보조배낭이 사막의 추위를 막아줄 겨울옷들을 쟁이기엔 너무 작아
마누 친구에게 빌린 30L 배낭에 옷과 세면도구를 넣어가지고 튀니지 일주를 시작했었다.
세상에나 그 배낭을 튜니스로 오는 루아지에 두고 내린 것이다.

스타렉스 만한 루아지를 타면 큰 짐들은 대개 뒷좌석 뒤에 일괄 쟁인다.
사단은 수다에서 비롯됐다.
옆자리에 앉은 한국 열성팬 아가씨가 내가 타는 걸 지켜보고 있다가 기다렸다는 듯 토킹을 시작했는데
똑똑하고 재미있고... 한국 친구들을 사귀어본 경험도 있고.....아무튼 한 시간 반 걸리는 거리를 눈깜짝할 새에 와버렸다.
귀국선물 뭐라도 좀 사가야 하나 망설이던 중이었는데 마침 이 친구가 시장 근처에 산다고 해서 가는 길에 흥정 좀 같이 하자고
내리자마자 그녀를 따라 시장 쪽으로 헛둘헛둘 하다보니 등이 허전한 거다. 세상에 이런 일이!
아들넘 초등4학년 때 가방을 운동장에 내려놓고 놀다 그냥 집에 와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기막혀 하던 생각이 난다. 딱 그 초딍 짓을 한 거다.

사실 포기하자면 못할 것도 없는 짐이다. 아까운 생각하면 한이 없지만.
하지만 그 배낭이 마누 친구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찾기 어려울 꺼라고 만류하는 그녀를 보내고 루아지 종점으로 돌아가 안 되는 손짓 발짓 바보짓 섞어가며 한 시간 동안 뒤졌다.
작은 도시가 아니라서 일일이 배차관리를 하는 사무실도 있는데 함마메트에서 20분 전에 도착한 루아지를 왜 못 찾는단 말인가.
온동네 구경거리를 마다 않고 튀니지의 전설을 만들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네.
집 근처 메트로 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누도 못 찾을 꺼라고 그냥 오라고 하길래 전화번호 남겨놓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뭐 잘 안 잃는 편인 나의 여행 이력에 지울 수 없는 큰 오점이 남았다. ㅠㅠ

남의 배낭과 함께 사라진 품목 :
마누 엄마 생일선물로 고른 반지 알
마누 선물로 고른 영양크림
입고 찍으면 예쁘다는 찬사를 받았던 네팔산 판초
잘 골랐다고 칭찬 받은 새 수영복.
이란에서 산 줄무늬.두르면 젊어지는 마술 스카프
아껴입는 청바지
세면도구와 속옷, 약간의 기초화장품



이제 집에 가니 나머지는 상관없다만, 배낭은 하나 사줘야겠군.
읊어봐야 뭐하니, 잊어버리자. 최소한 지갑과 휴대폰, 여권은 살아있잖니.
아무튼 지금은 마누네 집. 마침 마누 엄마 생일이라 부엌이 분주하다. 다 털어버리고 즐겁게 마지막을 즐기려고 한다.









한국사람 거의 없는 동네에서만 살다가 한국사람으로 가득한 두바이공항 인천행 대합실에 발을 들이는 순간 훅 끼쳐오던 살벌(!)한 기운.

세련됐지만 무정하고 내 영역 들어오는 꼴, 나와 달리 튀는 꼴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공격적인 기운?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살기를 장착한 한국인들...경쟁사회에서 갈고닦은 내공 덕분일 거다)


뱀발

모로코와 많이 닮은 튀니지. 그러나 튀니지가 내게 훨씬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 때문이다.

다 자기 경험에 기초해서 하는 평가겠지만 내가 만난 튀니지 사람들은 허물없는 친구, 아니 사심없는 수호천사들이었다. 

어딜 가나 들리던 노래 한 곡으로 한 달 간 튀니지에 바친 내 마음을 대신해본다.


https://youtu.be/Ed_YNIcvZ4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