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과 중국여행사
언젠가 읽기교재에 실린 중국의 여행업에 관한 글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다.
“국내여행”, “국외여행”이라고 하면 우리 상식으로는 여행하는 지역에 따라 구분한 개념일 텐데, 그 글의 필자는 외국인의
중국여행을 “국외여행”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중국인들의 국내여행을 “국내여행”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면서(외국으로의 여행은 “해외여행”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국내여행”이 시작된 시기를 94년으로 서술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명대학 출판부에서 발행한 외국인용 어학교재에
실린 글이니 엉터리 내용은 아닐 테고... 이것이 공인된 개념인지도 의심스러웠지만, 무엇보다도 외국인이 여행을 하든지 내국인이 여행을 하든지 그
여행주체가 왜 여행의 핵심개념이 되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교수님께 질문을 했더니 여행업이 생성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주셨다.
중국의 개방은 79년부터 시작었다고는 하나 그 속도는 중국정부의 통제 속에서 조절되었고
일반적으로 개방을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당시 여행이라는 개념은 “중국에 투자할 목적으로 訪中한
외국인에게 허용된 여행”의 개념이 주종을 이루었으며, 이러한 여행에는 목적지와 투숙지, 만날 인물들, 볼거리 등이 미리 정해져야 하는 접대관광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고(사상적 통제의 목적 또한 컸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외국인 차별요금이라든지 외국인이 묵으면 되거나 안 되는
숙소라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반 서민들로 말하자면 레저로서의 여행이 중국 일반서민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듯하다. 자기 지역에서 태어나 자기 지역에서 공부하고 자기 지역에서 안배해주는 직장에 다니며 수중에는 돈이 없어도 기본적
의식주에 문제가 없던 시절에 “여행”이란 개발되지 않은 소비욕구였다. 상해에서 태어나 상해에서 학교를 다니고 상해에서 직장을 다닌 우리 교수님도
나이 오십을 바라보던 시절에 처음으로 항주 서호로 여행을 가봤다고 하셨다.
이제 사통팔달 교류에 막힘이 없고 구매력도
일정하게 형성된 중국인들 사이에서 “여행”은 가장 선호하는 레저형태로 꼽히고 있다. 그래도 아직 여행은 중국인들에게 크게 맘먹고 하는 호사에
속한다. 중국에서 여행을 하려면 여행비용에서 교통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돈이 많든지 시간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상해 사는 사람이 서안 병마용 구경을 간다고 할 때 왕복 비행기로 가지 않는 한 최소한 3박 4일이 필요하다. 밤에 떠나는 기차를 타면 다음날
저녁에야 도착을 하니 서안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아침에야 시 외곽에 있는 병마용을 구경하고 단 반나절의 관광을 마친 뒤 저녁에 밤기차를 타더라도
다음날 저녁에야 상해에 도착하게 된다. 토요일, 일요일만으로는 부족하고 따로 휴가를 내지 않으면 도저히 떠날 수 없는 여행길이다.
비행기로
왕복한다면? 성수기가 아니라면 서안까지는 관례에 따라 15% 디스카운트 받는다 해도 1200원 가량이니 왕복 2000 인민폐가 넘는다. 이
비용은 대졸자 초임의 2/3을 초과하는 거액이다. 여기에 숙박비, 식사비용, 관광지 입장료까지 더하면 거의 한달 월급이 다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의 여행은 주로 5일 이상 쉴 수 있는 노동절, 국경절, 춘절휴가에 집중되어 있고 대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한다. 상해에서 비행기로 왕복하는 서안 병마용 관광은 2,000원 남짓이다. 특별히 가격이 비싼 옵션항목을 빼고는 모두
포함된다.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그외에도
우리와는 다른 취향의 차이도 있는 것같다.
나는
중국에 오기 전까지 가이드가 딸린 여행은 외국인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한국에 들어갔을 때 여행사에 근무하는 친구 덕분에
교통편과 숙박을 제공하는 패키지 국내여행을 이용해볼 기회가 있긴 했지만 거기서도 가이드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같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인식에 따르면 가이드는 여행의 필수품목이다. 나름대로 그 이유를 분석해보면,우선 중국은 가이드의 원초적인 역할이 꼭 필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라가
크다 보니 지역적 차이도 크고 민족도 많고... 사투리도 심해서 어떤 지역은 같은 중국인끼리도 소통이 안 될 정도니 말만 중국이지 외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게다가 교통이나 숙박 등 관광인프라도 취약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실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사전정보에만 의지하여
여행을 떠났을 경우 목적지에 도착도 못해보고 돌아올 수도 있다. 또 자유여행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자유여행자를 위한
사전정보도 그다지 풍부하지 않아 물어물어정보에 상당히 의존을 많이 하게 되는데(나의 경험담), 일년에 몇 개씩 새로운 도로가 생겨나는 중국의
변화상은 현지인조차도 헤매게 만들 정도이니 길잡이로서의 가이드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소수민족 거주지에선 소수민족 혹은 소수민족 복장을 입은 아가씨들이 가이드를
합니다)
둘째, 중국인의 관광취향에 따른 필요 때문이다.
중국의 유명관광지에는
빠짐없이 역사가 있고 고사가 있다(별 것 없다 해도 창의성이 풍부한 중국인들은 꼭 무엇처럼 만들어낸다). 중국사람들은 꼭 식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이 방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여행을 계기로 그런 쪽으로 교양을 넓히려는 욕심들을 갖고 있다. 여행지역의 자연적인 특징이나 풍속,
특산 등에도 관심이 많아 돌아오는 길에 보따리들을 잔뜩 들고 온다. 오고가는 길의 관광버스춤이나 밤새 술 마시는 맛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충당하는
한국 관광에 비하면 대단히 교양있는 여행풍토라 할 수 있겠다.
(현지 가이드들은 현지의
역사, 문화, 정보를 쫙 꿰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의 현저한 행동경향의 차이를 들 수 있다.
한국인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놀 때도 직접 노는 쪽을 좋아하는 반면 중국인들은 남들이 노는 것을 관조하기 좋아한다. 또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국사람들 같으면 누구라도 나서서 해결하려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인데 중국인의 경우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책임지고 리드하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풍채가 이 정도 돼야 해결사 노릇 하는
데 지장이 없을 듯...ㅎㅎ)
나 역시 직접 나서기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패키지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다녀온 곳은 후기 한편 쓸 정도의 감흥도 남아 있지 않고, 두세달 지나면 그 지역에 대한 정보가 머리 속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사진을 찍으면서 전에는 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손에 지도를 들고 물어가며 다닌 곳에서야 새로운
문물을 발견할 수 있고 새로운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도 풍성하게 꽃피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쫓기는 나로서는 일주일씩
몰아 쉬는 짧지 않은 휴가를 도저히 그냥 반납할 수 없어 몇 번 여행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직장에 매인 몸을 찾아오는 친지나 벗들과 잘
놀아주지 못하는 대신 여행사를 붙여주기도 한다.
2000년 이전만 해도 여행사에서는 외국인에 대해 약간의 난감함을 표시하거나
영어가이드를 별도로 붙여주겠다며 추가요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면
말 못하는 손님들을 위해 평소에 준비해둔 A4지 2장 분량의 생존중국어를 프린트해서 여행사에 들고 간다. 이 손님들은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며 이 종이 한 장이면 혼자라도 상해로 돌아올 수 있다, 말을 못 알아들어 빠뜨린 관광에 대해서는 여행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면,
큰 여행사의 경우 외국인이 낀 단체를 인솔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팀에 끼워준다.
그렇게 하여 두 팀을 보내보았다.
두 팀 다 만족하였고, 새로운 경험에 너무나 즐거워하였다. 장거리 여행에 참가하는 중국인들은 아직도 일정한 경제력과 문화수준을 갖춘 계층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해 대부분 호의적이고 그 중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몇 끼어 있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쾌한
여행이 될 수 있다.
가이드와의 여행이 그리 재미없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어를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아주 훌륭한 실습기회가 된다.
역사와 문물을 설명하는 가이드의 고급중국어로부터 외국인을 배려한 느린 중국어까지 골고루 있으니 수준에 맞게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intensive training course를 거치고 난 4일 혹은 5일 후에는 입만 열면 중국어가 튀어나오는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어에 “1(人+分)錢 1(人+分)貨 ”이라는 말이 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이 말을 직역하자면 모든 상품의 가격에는 거기에 어울리는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중국
여행사 상품의 특징은 이 말의 의미대로 지불한 가격에 딱 떨어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필요에 따라 여행상품을 잘
선택한다면 비록 취향이 다른 한국인의 입장에서도 중국 여행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충분히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앞서 언급했지만 중국인들이 여행을 떠나는 시즌은 5월 1일
노동절휴가, 10월 1일 국경절 휴가, 춘절(구정) 휴가로 집중되어 있는데, 그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기간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도시의 소비를 진작시켜 국가 경제의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중국정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사흘 휴가에 토요일과 일요일을 앞뒤로 붙이고 그 다음주
토요일 일요일은 출근을 하게 하는 놀라운 융통성을 발휘하여 장거리 여행의 여건을 충분히 만들어준다.
이
기간에 여행인구가 집중되다 보니 여행사 상품 가격이나 비행기표, 기차표, 관광지 입장료 등은 모두 두 배 정도 오른다. 비행기표나 호텔은 한달
전에 예약을 해둬야 한다.
이런 시기에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여행을 떠난다고 혼자 얼쩡거리다가는 대중교통편을 얻지 못해
걸어서 10리를 걸어야 할 경우도 발생할 수 있고 길잠을 잘 수도 있으며, 모처럼 마음먹고 떠난 여행길에서 좋은 풍광 대신 앞사람 뒤통수만
구경하면서 지루한 진땀만 흘리다 돌아올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한국에 계신 분들이 중국여행을 계획하실 때 이 점을 꼭 고려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