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서 겨울나기
원래 양자강 이남 지방은 겨울에도 난방을 안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이 97년 처음 상해에 왔을 땐 두꺼운 스웨터와 내복 그리고 전기장판에 의지해서 정말 심란스러운 겨울을 났죠.
기온 자체는 그리 낮지 않으니 밖으로 나가면 포근한데 집안은 썰렁하기 그지없는 이상한 상해날씨... (거기다가 상해의 겨울은 雨期라서 뼈에 스미는 추위가 혹한보다도 더 심술맞게 느껴진답니다. 동북에서 온 친구들도 상해에서 겨울나기가 연길보다 더 힘들다고 해요)
가족들이 더운바람 나오는 에어컨을 싫어하니 오래 틀 수가 없고, 전기식 라지에터는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올 뿐만 아니라 장시간 틀면 휴즈가 나가버리고.... 전기난로는 국부난방용으로나 쓸까... 크게 도움이 안 되죠. 아무튼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 것이 가족 최대의 과제였답니다. 여러가지 눈물겨운 실험도 해봤죠..
오죽하면 울아들 중국어과외 선생님이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이 "옷 더 입어"였겠습니까. 한국에서 살던 버릇으로 집안에 들어오면 양말부터 벗어던지고 내복 입기를 거부하고 벌벌 떨며 돌아다니는 아들놈에게 늘 내가 하던 말이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상해 한국가정엔 보일러를 놓은 집이 거의 없었죠.
몇몇집이 개스보일러를 놓았지만 액화가스라 화력이 약해서 별로 재미를 못보았던 것 같고... 2, 3년 지나서 한국회사들이 시공하는 열판(열량과 면적이 전기장판보다 훨씬 큰)이 큰 호응을 얻어 현재는 이것이 한국가정 겨울나기 수단의 일반적 형태가 되었죠.
하지만 요즘은 주택을 구매하는 한국가정이 많이 늘었고 따라서 장식할 때 보일러 놓는 것은 기본이 되었죠. 더군다나 요즘은 천연개스관이 다 들어와서 액화개스를 사용하던 시절에 일찌감치 개스보일러를 놓았다가 실패했던 경험을 되풀이할 염려도 없게 되었죠.
저희는 4년전에 액화개스가 화력이 너무 약하다고 해서 주유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기름보일러를 놓았답니다. 따뜻한 바닥에 등 지지는 맛은 그만인데...
문제는 그놈의 기름배달이군요.
한국처럼 주유소에서 주유차가 와서 한드럼 채워주고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동네 시장에서 오토바이로 야채 실어나르는 총각에게 석유통 두 개 사주고 배달을 부탁했죠. 다섯차례를 왕복하면 저희 기름통이 꽉 찬답니다. 한 철에 두 번 정도 부탁하는데 저는 러셀님이 "워스한구어런" 하는 것처럼 "워스 **화유엔더" 라고 하죠. 그러면 대번 알아듣고 달려옵니다. 올 겨울엔 아직 안 불러봤는데 아직도 그 야채전에서 일하고 있는지...
한국사람이 더 많아질수록 사는 환경은 더욱 더 한국사람 살기 편해지겠죠?
2004. 12
지금은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개스보일러를 놓아 편하고 따뜻하게 겨울을 나고 있죠.
상하이에도 이제 웬만한 지역에는 천연개스가 다 들어오기 때문에 연료공급 걱정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