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다시 실크로드5 - 다시 가본 막고굴

張萬玉 2005. 5. 12. 19:34

4년 전만 해도 중국어실력이 짧아 가이드의 해설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귀가 뚫려 가이드의 해설을 거의 완벽하게 들을 수 있어서, 그 재미로 보았기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두번째 온 막고굴은 좀 심심할 뻔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불교痴에 미술痴이라서...

 

덕분에 필기는 잔뜩 해두긴 했는데, 이제 와 들여다보니 이 내용을 정리해서 블러그에 올려두는 게 어째 좀 심드렁하게 느껴진다. 내가 어줍잖게 '감상'이라고 적을 게 있다면 그저 역사 혹은 민속적인 그림읽기라고나 할까. 크게 신명이 안 나니 그것마저도 좀 번거롭게 느껴진다.

 

하여...

막고굴에 대해서는 예전에 써둔 글을 다시 올리고 조금만 더 보충하는 선에서 끝내기로 한다.

(사진 역시 막고굴 안에는 사진기를 못갖고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찍을 수 있는 곳만 찍다 보니 거의 비슷하기에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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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7. 6

 

이 굴 하나 보기 위해 몇 만리를 달려온다는 막고굴 앞에 도착하니 멀찌감치 산 허리에 송송 뚫려 있는 무수한 석굴 구멍부터 눈에 들어온다.

자그마치 3km에 걸쳐 있는이 석굴들은 기원 366년 이래 오랜 세월 동안 이름난 고승들이 찾아와 굴을 파고 면벽수도하는 세월을 거치면서 한 때는 1000개가 넘었다는데, 현재는 492개만이 남아 있고, 관광객에게 개방할 수 있도록 개발된 굴은 240여개라고 한다.


미가공 상태의 석굴들. 저 뚫린 구멍 안으로 들어가 면벽수도를 했다는 것이다.  @.@ 

 


(개방 막고굴 입구)

 

막고굴 관람은 입장료에 포함된 공개굴(15개)과 별도로 추가요금(60원, 200원)을 내고 보는 특별굴에 한정된다. 굴의 훼손을 최대한 막으려고 일정 시기마다 돌아가며 개방을 하는 것 같다. 혹시 막고굴에 대해 사전에 연구를 많이 하는 등 벼르고 온 사람들에겐 보고 싶은 굴을 마음껏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후대에 관광객을 위해 돌로 외벽과 난간을 만들었다. 문 하나마다 굴이 하나씩...

 

안내판에서 당일에 개방하는 석굴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자유롭게 들어가보면 그 굴 담당 해설위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일정인원이 차면 설명을 시작한다. 대개 각 시대를 망라할 수 있도록 그날의 공개굴을 선별하기 때문에 각 시대에 따르는 종교관, 신미관(申美觀)의 변화를 비교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불상, 민족 전통신화, 불경이야기. 장식 도안, 공양인 화상, 불교사적화 등으로 이루어진 벽화들을 감상할 때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각 시대의 사상들의 영향이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관람이 훨씬 흥미로워진다. 

 

예를 들어 수/당시대에 그려진 벽화에는 당시 유행했던 정토사상의 영향으로 관세음상과 11면 관음상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위진남북조 시대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 도가사상의 신화가 어우러진 초기 불교의 면모를 나타내는 듯 동왕공, 서왕모가 용차와 봉황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나 사람 얼굴에 뱀 몸을 가진 복희씨와 여와씨의 모습이 보인다.

 

돈황 벽화의 백미로 꼽히는 비천도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데 바로 돈황시 입구에서 본 요염한 조각상 천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이다.

비천도처럼 독특한 소재 이외에도 막고굴벽화의 색깔이나 문양에는 중국 여느 절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서역의 독특한 냄새가 있다. 복장도 그러하고 얼굴이 검거나 코가 큰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동서교류의 흔적이리라.

 


(96호 석굴의 외관. 석굴입구를 통해 지하로 들어가보면 고개를 90도로 꺾어야 보이는 3미터의 대형부처님이 앉아 있다. 이 외관은 석불을 보호하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진 포장에 불과하다)

  

수천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은 천연 광물성 원료의 색깔처럼, 변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온 인간의 불심.... 그리고 각 시대를 지탱했던 정신세계와 파란만장한 인간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 이 석굴이야말로 정성들여 보존하여 후대로 이어주어야 할 진정한 인류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우리 석굴암의 안부가 몹시 궁금해진다. 습기가 차서 벽이 망가지고 있다던데.... 어찌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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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3  추가사항

 

불교가 전파될 당시 이 지역에 광범하게 퍼져 있던 도교와 결합하기 위해 애쓴 흔적들

- 94호굴의 불상 : 부처님 뒤에 두 제자와 함께 엉뚱하게 도교의 태상노군이 서 있음

- 148호굴의 와불상 뒤에는 73명의 사람들이 열반에 드는 부처를 지켜보고 있음

   가이드는 이 숫자가 도교와 상관이 있다고 설명을 했는데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불상의 채색이 선연한 것이나 세 마리 토끼 그림으로 천장을 꾸민 것도 도교 영향이라고 함.

 

부처님의 설법을 대중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한 내용의 벽화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문맹인 대중들에게 그림으로서 소상하게 불경의 내용을 묘사한 벽화들이 퍽 재미있다. 

- 237호 : 석가모니 탄생 설화(흰사슴의 전설)

- 428호 : 석가모니의 전생(권선징악의 내용) 등등

 

藏經洞의 새로운 발견(16호 / 17호)

전에 왔을 때는 왜 이걸 못봤을까?

이 굴은 청나라 광서제 초기에 이 지방에 파견되어온 한 관리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이후 관직을 떠나 도교의 도사가 된 그는 불교에도 관심이 많아 이 유물들을 잘 보존해두었고, 이후 1904년에 이 유물들의 가치를 범상치 않게 여긴 왕종한이라는 사람이 독일과 일본의 역사학자들을 청하여 연구를 의뢰함으로써 이 유물들의 가치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돈황학'이라는 연구분야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로 이 유물들은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굴 옆에 만들어진 藏經洞 유물 진열관에 들어가보니 소수민족풍의 탱화들과 장족 혹은 토번족의  문자로 쓰여진 불경들, 다 삭아서 두루마리의 일부만 남아 있는 비단에 쓰인 불경, 호랑이뼈에 새겨진 불경, 마니경, 심지어는 진귀한 약초의 효능과 치료법을 적은 의학문건 등등 진귀한 유물들이 상당수 진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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뚠황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참고 사나 모르겠다. 뚠황시를 벗어나 다른 도시로 가려면 기차를 타기 위해 최소두 시간 반 이상 먼지를 뒤집어쓰며 사막을 벗어나야 한다. 창문틈으로 쳐들어오는 고운 모래먼지에 코와 입을 틀어막으며 우리도 세 시간 가까이 달려 뚠황 역으로 향한다.

 

도착한 시간은 네 시, 기차는 4시 30분발....

미리 연락하여 차려둔 간단한 밥상을 10분 내에 처리하고 우리는 헐레벌떡 트루판 행 열차에 오른다. 까딱하면 기차를 놓칠 뻔했다. 트루판 도착시간은 내일 새벽 다섯시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