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추억
회고록을 쓰려면 차곡차곡 써야 하는데... 게으른 탓에 꽃다운 이팔청춘 초입에서 멈추고 말았다.
이제 그냥 띄엄띄엄... 무슨 계기가 있을 때 생각나는 대로 한껀씩 써야 할까보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데 비가 내린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라 대부분 학생들이 처마 밑에서 빗발이 좀 약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언제 그칠지 알아?' 하는 핑게로 그냥 빗속에 뛰어든다.
나는 아직도 비 맞는 게 좋다.
마음 같아서는 신발도 벗어던지고 맨발로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고 싶다.
산성비에 젖는 게 무슨 대수냐, 돌아가서 샤워하면 그만이지...
무슨 푸른 식물이나 된 듯 비를 흠뻑 맞고 있으면 몸도 마음도 싱싱한 기를 받을 것 같다.
허나, 이 나이에..... 그러고 다니면 정신나간 여자인 줄 알겠지..
오늘은 핑게김에 떳떳하게 비를 맞으며
갑자기 떠오르는 노래를 흥얼거려본다.'La pio ja'인가?
나 초등핵교 다닐 때 유행하던 노래... 펄시스터즈라고 있었다. 당시엔 나름대로 멋졌던....
"눈물같은 비가 눈물같은 비가 긴~긴날 흐느껴 울어도
빛~나는 태양 빛~나는태양이 가리워도
정다운 이 마주보며 하염없는 빗속을 걸어가~자"
요 대목에 이르러 나는 첫사랑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당시 그 애도 나도 어렸다.
('그애'는 **의 추억 카테고리 '첫눈과 첫사랑에 관한 짧은기억'에 나오는 남주인공이다. ^^)
둘 사이에 연애감정 비슷한 것이 무르익어 바야흐로 신체적 접촉을 갈망하는 시기가 되었으나 그 욕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어린 연인들에게 마침내 때가 왔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우산은 손바닥 만한 거 하나였던 것이다.
그애는 우산을 오른손으로 들고... 나더러 젖으니까 자기 팔을 잡으라고 했다.
(나는 항상 그 애의 오른쪽에서 걸었다)
마지못한 척 그애의 팔을 감아쥐는 순간 헉!! 찌르르~ 전기가....
생전 처음 느끼는 당황스러운 감각에 난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걸었다.
그 애도 마찬가지였다. 헤어질 때까지 우린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다. (순진한 것들...ㅋㅋ)
그 후 나는 그애와 약속이 있는 날 아침이면 비가 쏟아져주기를 빌었다.
당연히 우산은 가져가지 않았다. (앙큼한 것....)
나의 계획대로 그애의 오른쪽 팔은 늘 따뜻하게 나의 왼팔을 맞아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역시 비가 왔다. 우산도 당연히 하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따라 우산을 왼쪽손으로 든다.
참 불편하다... 나란히 걷자니 걔의 오른팔과 나의 왼팔이 덜렁덜렁 계속 부딪힌다.
'쟤가 오늘은 왜 그러지... 맘이 변했나?
오른팔 줘, 오른팔...... 난 네 따뜻한 오른팔이 필요하단 말야....'
허나...그애는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쓰는 더 즐거운 방법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데이트 해보신 분들은 다 아실 터이니 여기서 생략.. ^^)
-- 비 맞은 김에 신나서 주책 좀 떨었습니다. 어때요, 구식 연애가 더 재밌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