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가본 적도 없는 나라의 국적을 가진 할머니

張萬玉 2005. 5. 23. 17:59

평소에 블러그를 열 때 무심히 지나가던 '오늘의 태그'에 눈길이 닿길래 살펴보니 '국적'....

최근 뉴스에 자주 나오는 이중국적 문제를 다뤄보자는 취지일텐데 나는 이 태그를 가지고 샛길로 빠지려 한다. 몇년 전에 만났던 어느  할머니 생각이 나서...

 

한국에서 놀러온 친구와 함께 예원상가에 갔었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 씌울까봐 '혼자 흥정하지 마라'고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눈을 파는 사이 이 친구가 한 옥제품 가게에서 초로의 판매원과 뭐라뭐라 얘기를 하고 있다. 

 

어, 쟤가 그 사이에 중국말 몇 마디 배웠다고 써먹는 건가? 얼른 달려가보니...

그 할머니가 이상한 한국말을 하고 계신 게 아닌가.

조선족인가 했는데 잘 들어보니 조선족 말투도 아닌 것이 영 어설프다.

알고보니 이 할머니는 조선족도 아니고 한국어 배운 한족도 아니고... 탈북주민은 더더욱 아니고

 

놀랍게도 북한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 신분...

그러나 북한에 한번 가본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북한에 대해 어떤 호의도 가져본 적이 없는... 진짜 쌩뚱맞은 북한사람이다.

 

이 할머니의 부모님 고향은 예산이라고 했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상해로 온 아버님(혹은 부모님)이 이곳에서 자기를 낳았고 대여섯살 무렵 해방이 되었는데 글쎄, 귀국선을 기다리던 사이에 중국과 한국이 단교가 되어버렸단다. 

운명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지. 그렇게 할머니는 북조선 국적을 갖게 되었다.

 

일본에도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북한국적을 가진 우리 교포들이 많지만 중국에도 그런 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후 어떤 이유로 부모님과 헤어져 일찌기 고아 아닌 고아로 힘겹게 살아온 이 할머니... 비록 국적은 북조선이지만 스스로는 한국사람이라 여기고 있으며 방법이 있다면 죽기 전에 꼭 국적을 되찾고 싶다고 하신다.

 

언젠가 어학교재에서 읽은 얘긴데... 일본이 패전하여 황급하게 철수하면서 중국 동북지역에 떨구고 간 일본아이들이 1만 명이 넘었는데, 당시 중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한 일본청년들은 1972년, 일본과 중국이 수교를 하게 되면서 국적을 회복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내가 만났던 할머니는 어쩌다가 북한의 국적을 갖게 되어......한국과 중국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에도 자신의 뿌리를 찾기는 커녕 고국에 한번 다녀갈 방법조차 없는 것이다.

 

국적...

자진해서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억지로 빼앗긴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