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花樣年華

晝讀夜耕 2 - 같이 하교해주기

張萬玉 2005. 6. 9. 21:25

두번째 알바는 고1 때.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사립여고로, 여중이 같은 건물에 있었다.

이 여중 3학년에 악명놓은 양아치 칠공주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KR 7'.... 가출을 밥먹듯이 하던 이 아이들이 유기정학 두 번에, 한번만 더 가출하고 무단결석하면 졸업 직전이고 뭐고 상관없이 퇴학을 시키겠다는 학교의 최후통첩을 받게 되었다.

 

이들 멤버 중에 아버지가 으리으리한 관변단체 임원인 Y가 있었는데, 남은 석 달 동안 등하교를 함께 하며 가출을 막아줄 고등학교 언니를 찾아달라는 Y 부모님의 요청을 받고 1학년 주임이던 우리 담임에게 의뢰가 들어왔던 것이다.

공교롭게 이번에도 4/4분기 등록금을 받는 조건이었다. (그게 얼마였을까? 상당히 궁금하다..)

나도 나름대로 '놀아본' 경력이 있는지라 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아주 쉬운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은평구 구산동의 2층 양옥집이다.

현관에 딱 들어서니 눈에 들어오는 게 거실에 깔린 호랑이 가죽과 독수리 박제....

얼마나 강렬한 인상이었는지.... 지금도 그집을 생각하면 그 죽은 동물들이 제일 떠오른다. 

 

알고보니 Y의 아버지는 세번째 아버지였다.

첫번째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Y의 큰언니를 낳았고(패션모델인데 가끔 집에 왔다) 둘째아버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Y, 세번째 아버지가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영감님인데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이다(여권의 막강한 실력자 K모씨 부인이 한 파티석상에서 직접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는 걸 보면 아마 Y의 엄마도 이력이 평범한 여자는 아닌 듯.) 같이 산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지만 쌈도 싸서 서로 먹여주고 우리들 앞에서도 무릎을 베고 눕는 등 신혼부부 뺨치는 애정표현이 참으로 볼만했다. 

 

그래도 Y는 아버지를 싫어하지도 반항하지도 않고 그저 무관심이다. 자기가 필요하면 넙죽넙죽 '아버지'라고 잘도 부른다. 그 또래 아이치곤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아이. 

나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머리카락 안 짤리고 방안에 안 갇히도록 해주는... 자기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줄 수 있는 사람.... 그게 나였다. 처음 만난 날 하교길, 집에 다 오도록 눈길 한번 안 주다가 한마디 한다는게.... '차비 좀 많이 땡겨. 나한텐 땡전 한푼 안 준단 말야.'

 

처음엔 학교 친구들에게 딴데 입주해 있다는 얘길 안 했기 때문에 방과 후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려야 하는 것도 힘들었고, 집에 오면 Y는 제 방에 딱 쳐박혀버려 날 완전히 자기와는 상관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니 이 집에서 겉돌고 있다는 더러운 기분을 떨쳐버리기도 힘들었고.... 결정적으로는 내게 줄 방이 물이 새서 수리를 한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그집 일하는 언니와 같이 방을 쓰라고 하는 데에 자존심이 팍 상해버렸다. 

 

그냥 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미 납부한 등록금을 무슨 수로 갚으랴.... 

번민을 달래기 위해 밤마다 그집 장서에 꽂힌 소설들에 정신을 팔았다. 이럭저럭 일주일 정도 견디니 나를 은근히 챙겨주는 룸메이트 식모언니에게 정이 들기 시작하고, 이어 Y의 엄마, 그집 강아지와도 친해지고 , 결국 Y까지 슬슬 내게 수다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하여, 어쨌든 시작한 일이니 잘해보자고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사실 Y는 타고난 성격이 솔직하고 명랑한 아이다. 코드가 안 통하는 사람들에게는 '너, 나 알아?' 버전이지만 말이 통한다 싶을 때 줄줄 쏟아내는 무용담은 완전히 코믹버전이다.

가출해서 양동 쪽방에서 남자애들과 칼잠 자는 이야기(한쪽 구석에서 '콩'까는 애들도 있단다),

밤에는 술마시고 대낮이 되어야 일어나 명동 신세계백화점으로 출근을 한다. 세수는 백화점 화장실에서, 돈 있으면 빵과 우유로 아점 때우고 없으면 고픈 배를 움켜쥐고 로라장에서 죽친다.

오후에 애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삥' 뜯어가지고 분식센터에 내려가 거하게 한끼 건지고.....

꼰대 떴을 때 '발르던' 이야기, '삥' 뜯을 때 면도칼 씹거나 소주병 깨어서 위협하는 이야기....

 

나도 어른들이 '불량'하다고 보는 삐딱함에 여전히 끌리고 있는  사춘기 청소년이었고, 좀 '논다는' 애들과 일년 넘게 어울려다닌 이력도 있지만, 기타치고 탁구치고 독서실에서 밤 새우던 그 아이들에 비하면 얘들은 진짜 '쌩양아치'였다. 암만해도 '삥' 뜯고 '콩'까는 대목에 이르면 치밀어오르는 거부감을 거부할 수 없었다. 

 

KR-7 멤버들 중에는 이미 퇴학을 당한 아이가 셋이나 되고 나머지 네 명도 Y의 부모님 말고는 아무도 퇴학문제에 신경을 안 쓴단다. 자기도 엄마가 하도 울고불고 거기다 나까지 왔으니 내 얼굴 봐서 석달만 참는 거지  마음 잡은 건 아니라고 한다.

 

내가 있는 동안 Y는 정말 약속을 거반 지켜주었다. 딱 한번 나와 함께 간다는 허락을 받아 로라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네 시간 뒤에 만나자면서 나를 따돌렸다. 그때는 이미 그애와 '통하기'가 된 상태라 믿어주기로 하고 잠시 집에 들렀다 약속장소로 가보니 쎄주 한 잔 한 듯 얼굴은 붉었지만 30분 전부터 와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더 있다가는 못올 것 같아서 딱 세 잔 했다나.

 

겨울방학이 되면서 파란만장했던 나의 알바와 더불어 Y와의 인연도 끝났다.

한참 뒤에 어떻게 듣게 되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연예인을 많이 배출하는 경기도의 모 예술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긴, 합죽이 턱과 히죽히죽 웃는 야릇한 미소만 빼면 흠잡을 데 없는 미모에 유머감각과 달변까지 갖추었으니 그쪽으로 정진해도 승산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TV에서 여적 본적이 없으니 ㅎㅎ

 

그 천둥벌거숭이도 이제 마흔예닐곱 되었을 텐데.... 어떻게 늙어가고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