晝讀夜耕 3 - 과외교사 꼬이지 마세요
영화나 소설에서 과외교사를 유혹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라든가... 언젠가는 private lesson 이라는 일본배우 나오는 에로영화도 있었던 것 같고... 엄마가 아들의 과외교사를 유혹하는 얘기 등등...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도 아무튼 이 시추에이션에 야비한 흥미를 유발할 만한 소지가 다분하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못생긴 여드름쟁이 소녀 장만옥에게도 그런 시추에이션이 존재했으니... ^^
정식 과외교사로서 처음 데뷔한 것은 고2때... 중2짜리 애들 다섯 데리고 그룹과외를 했다.
원래 다섯명으로 시작했는데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다가 수학 수업준비가 너무 힘들어서(내가 원래 수학痴인데 무슨 배짱으로 수학까지 가르치겠다고 했는지....츠암) 두 달만에 영어만 가르치겠다고 하니 다 떨어져나가고 그집 딸네미만 남았다.
그집 딸네미는 내가 개발한 독특한 교수법에 힘입어(ㅋㅋ 진짜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참신했던... 기회가 있으면 추억의 그 교수법을 공개하겠음. ^^) 영어에 바짝 재미를 들였던 터라 그 애와의 인연은 꽤 오래 갈 수도 있었는데... 그만 나의 경거망동으로 6개월을 못채우고 끝나버렸다.
그 사연을 공개하자면.... (솔직이 좀 민망하다. 지금 생각해도...)
그 애에게는 나와 동갑내기 오빠가 있었다.
내가 과외를 하러 그 집으로 들어갈 때면 마당에 꼭 그애 오빠가 아령이나 역기를 들고 설치고 있다. 학교가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그 시간이면 학교에서 막 돌아와 가방 던져놓고 씻거나 쉴 시간인데 왜 하필 집에 오자마자 운동을 하느냔 말이다.
런닝 바람으로 땀흘리는 거 쳐다보기 거북해서 고개를 푹 꺾고 지나다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눈이 나빠(안경 맞출 돈이 없어서 멀리 있는 건 보기를 포기하고 살고 있었음) 길에서 만나도 모를 정도로... 그렇게 몇달이 지나갔는데....
어느날 동생이 봉투를 하나 들고 왔다.
열어보니 Ventures 악단 내한공연 표 한장이 달랑 들어있다.
돈 내고 콘서트 보러다니는 사람들은 매우 드문 시절이기도 했고 벤처스도 내가 좋아하는 악단이고... 꺄악~~ 얼마나 기쁘던지!!
솔직이 낯선 남학생이 보내준 표라는 사실이 덥썩 받아들기엔 조금 켕기게 만들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더 맘이 들떴는지도 모른다. 이걸 워째!!
어쩌긴 뭘 어째.... 조금 떨리긴 했지만 당돌한 데다 호기심천국인 소녀 장만옥,
향긋한 샴푸냄새 폴폴 날리려고 교복블라우스도 샴푸에다 빨아 입고
여드름 한 개라도 더 죽여보려고 공사하다가 더 성이난 볼떼기에 눈물을 짜면서
그날 수업은 어떻게 했는지... 부푼 가슴 콩당거리며튼 공연이 있는 이대 강당으로 달려갔다.
표에 적힌 대로 좌석을 찾아가니 그 남학생이 먼저 와서 기다리더군.
드뎌 가까이에서 대면할 순간이 왔다.
원래 내가 남자들 인물은 별로 안 보는 편인데도.....
.
.
.
윽!!
너무나 무서웠다.
진한 눈썹이 수풀을 이룬 데다
눈이 얼마나 깊고 진한지...
코는 얼마나 큰지...콧구멍은 또 얼마나 큰지...
입술은 얼마나 두툼한지... 볼살도 두툼하고...
그리고 그 얼굴을 가득 덮고 있는 여드름...
이목구비를 떼어놓고 하나하나 보면 잘 생긴 얼굴이라고도 하겠는데
그때 내 눈엔 그 남학생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도대체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몇 마디 말을 거는데도 못들은척...
공연을 보면서도 옆에 있는 사람이 마음에 걸려 좌불안석...
내가 여길 왜 왔노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다...
끝나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고 하면 어쩌나... 별 걱정을 다 하다가
공연이 끝나갈 무렵 화장실 간다고 하고는 나와서 걍 집으로 와버렸다.
참 못됐다. 철딱서니 없는 것... 좋다고 헬렐레... 따라갈 때는 언제고...
그날 이후 걔 오빠 다시 만날까봐 무서웠던 만옥이...
6개월 남짓한 과외선생을 그만두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다.
앗, 그리고....
인물 없는 남자분들, 욕하지 마십셔. 어렸을 때 얘기니까 이해해주세용...
저도 가끔 못생긴 여자 비하하는 남정네들의 글을 보며 광분하는 사람인디... 찔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