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그시절의 편지1 - 상해 이주 사흘째

張萬玉 2005. 6. 20. 12:10
 

벌써 금요일.

더위에 지쳐 허덕이다보니 눈 깜짝할 새 사흘이 지났다. 그래도 에어컨 덕분에 밖에만 안 나가면 견딜 만 하단다.

당장 먹을 게 마땅치가 않고 특히 김치거리를 구할 수가 없어서 청경채를 태국산 멸치젓에 살짝 절여 먹고 있지만 정환이는 상해 생활이 맘에 드는가보다.
모기도 더위에 지쳐 쉬는 요즈음인지라 관광은 엄두도 못 내고 꼭 가야 하는 시장, 위생검역소(신체검사 때문), 公安(주거신고 때문) 등 재미와는 거리가 먼 동네만 돌아다니고 있다. 그래도 정환이는 자전거 탄 수많은 웃통맨(팬티만 입은 사람)들과 시끄러운 중국말의 홍수 속에서 중국에 와 있음을 실감하며 재밌어 한단다.

나는 지난번 다니러 왔을 때의 신나던 느낌과는 다른 기분이다. 좀 심란하기도 하고....

97년 여름의 상하이 인민로


어제는 우리가 입주할 아파트를 보러갔는데 여기 시골동네에만 있다 보니 눈이 번쩍 뜨일 지경이다. 지금 있는 아파트를 보아하니 중국인 아파트가 거기서 거기겠지 하고 기대 없이 갔는데 지하철역부터 아파트까지 뻗은 아름다운 산책로에 제법 이국적인 정취가 있는 단지 내 정원, 봐줄만한 실내장식, 무엇보다도 베란다 앞에 꾸며놓은 정원(1층에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널 맞을 수 있게 되어 기쁘구나(난 쉽사리 기뻐하는 게 탈이란 말야. ).

오늘부터 중국직원을 포함하여 네 남자의 세 끼니를 빠짐없이 해바치려니 앞이 깜깜하다.

쇠고기도 마땅치 않고(물소고기인지 무지 질기다), 오이도 팔뚝만큼 길고, 해산물도 몽땅 냉동이고 간장으로 요리하는 것도 식초로 요리하는 것도 마땅치 않고(조미료가 전체적으로 이상하다) 된장도 없고... 이삿짐이 오면 좀 나으려나...

요즘 나를 괴롭히는 것은 유일하게 식품구입 문제다. 나가서 사먹어보려고 시도했지만 그건 더 어렵더구나.

현재까진 너무 더워 집에서 중국어공부만 하고 있고 밤이면 중국어 자막이 나오는 외국영화를 즐기는 게 유일한 낙이지만, 이번 주말에는 중국인 집에 초대도 받았고 박물관과 외탄에도 놀러나갈 예정이다. 틈대로 소식 전할 테니 간접경험으로나마 함께 즐겨주길.

무더운 여름에 몸성히 잘 있거라. 여기 비하면 한국날씨는 그래도 좋은 편이니 잘 참도록.

한국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날 챙겨줬던 네 생각이 많이 난다. 

어머니께도 안부를... 그리고 내 소식을 묻는 친구들에게도 대신 소식 전해주면 고맙겠다.

참, 한국에서 녹화해온 비디오가 너무나 좋더라(중국말이 서툴다보니) 혼자 보기 아까운 프로 있걸랑 녹화해뒀다가 올 때 가져오면 고맙겠쓰...

그럼 진짜 이만 쓴다. 안녕. 

1997년 8월 첫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