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陳사장 딸네미 결혼식에서 만난 사람들

張萬玉 2005. 6. 23. 18:07

중국의 노동절, 국경절, 춘절은 국가적인 명절이기도 하지만 이날을 개인적인 기념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때를 기다려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노동절에도 내 주변에서 다섯쌍이 결혼식을 올렸고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두 쌍이(요란한 폭죽소리로 미루어) 결혼을 했다.

어제 결혼한 아가씨는 우리 회사 제품의 대리상이자 우리 남편의 7년지기인 陳사장의 둘째딸로, 아빠 잘 만난 덕에 하객이 300여 명 가량이나 되었다. 중국의 보통 결혼식 치고는 꽤 성대한 편이다. 그저께 참석한 徐기사의 결혼식 하객은 겨우 30명 남짓이었는데....

자기가 새신랑이라도 된 듯 노란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로 멋을 낸 陳사장과 평소의 스웨터 패션 벗어던지고 보라색 투피스에 드라이빨 한껏 살린 陳사징 부인이 떠들썩한 비명(?)으로 손님들을 맞는다. 7년 전 큰딸을 결혼시킬 때는 살림이 옹색해서 제대로 못했던 모양인데 둘째딸 때는 고향 친척들까지 불러올려 마음껏 잔치판을 벌이게 된 것이 못내 기분좋은 눈치다. 응석받이 막내를 보내면서도 전혀 섭섭한 기색이 없다. 누군가 "자네는 오늘로 인생의 임무를 완성했네" 하니까 "그렇지! 맞아!" 하면서 박수까지 친다. ㅎㅎ

陳사장의 안내로 우리는 다른 두 쌍의 부부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올해 64세 동갑인 黃사장 부부.

천진대학에서 정밀기계를 전공한 캠퍼스 커플로 대학 졸업 후 상해시 대형 국영기업에 분배되어 40년간을 함께 일했다고 한다. 60세에 퇴직한 후 알토란같이 모아둔 26만원(인민폐)을 가지고 전등용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시작하여 이제 만 4년차를 맞고 있는데, 품질도 안정되었고 매출액도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하단다.
전량 미국으로 수출을 한다기에 어떻게 거래선을 개척했는가 물었더니 모두 친구들 덕이라고 한다. 미국에 가 있는 친구들뿐 아니라 미국에 연고를 둔 친구들까지 나서서 도와주었다면서 친구들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재산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자기는 진짜 부자라고 자랑을 한다.

다른 한 쌍은 아내가 전자부품재료 판매대리를 하고 있고 남편은 대학교수다.

아내는 활발하고 남편은 얌전한데 아주 둘이 잘 어울린다. 결혼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아직 아이를 갖지 않고 있단다. 장사가 너무 잘 되어서 아이 낳을 틈이 없다는 농담 끝에 자기는 딩크족 축에 드는 것 같다고 한다. 중국사람 입에서 딩커주~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니 이제 중국은 인구 걱정 접어도 되는 거 아닌가 싶다. ㅎㅎ

손님들과 인사 나누기에 바쁜 陳사장도 짬날 때마다 자리로 돌아와 이야기에 끼어든다. 하얼빈공대 졸업하고 장강삼협 건설팀에 배정받아 막노동 하던 얘기, 국가가 분배해준 직장을 마다하고 상해로 온 뒤 온갖 직업을 전전하던 얘기, 전자부품용 도료의 세계적 메이커 D사의 판매대리를 하다가 프리랜서로 독립하게 된 얘기.....

우리가 그 양반을 만나게 된 건 그 무렵이다.

손에 쥔 것 없이 사무실 간판만 떡하니 걸어놨지만 자신의 부지런함과 그간 다져놓은 인간관계에 자신 있었기에 걱정하지 않았단다. 인터넷 검색으로 열심히 원료상을 개발하고(우리와도 그렇게 연결되었다) 부지런히 고객들을 찾아다니고 기술자 이상으로 제품에 대해서도 연구를 아끼지 않던 그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안이한 중국사람들"이라는 선입견에 대해 재고하게 만들 정도였다.

 

50 넘긴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활력에 넘치던 모습과 행동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그는 현재 12苗(1苗 : 666 평방미터)의 필지를 사들여 버젓한 공장을 짓고 있다.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우리 테이블만 해도 사업을 꾸리고 있는 네 사람 다 (우리 남편 포함해서) 이구동성으로 "지난 세월은 힘들었지만 이제 해볼 만하다", "노력도 많이 했지만 운도 따랐다고 생각한다" 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중국의 경제가 가히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소자본이지만 열심히 그리고 꾸준하게 한발 한발 내딛는 사람들... 이들에게서 중국의 힘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이들의 한 발 한 발에 보람을 안겨주는 중국의 경제환경에 대한 일말의 부러운 마음도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