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민 VS 유목민3 - 하늘 아래 내 설 곳
옛 얘길 쓰다보니 씨잘데없는 주저리가 길어진다. 얼른 마무리해야겠다.
좋아하는 영어공부 얘길 사실은 더 하고 싶지만 주제에 벗어난 얘기니 다음으로 넘기고...
알바 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던 *선생 영어교실 교사노릇도 하다 보니 어영부영 1년 반이나 했다.
아, 그러고 보니 '匠人편집실' 하던 때가 *선생 하기 전이었군...
우리집 서재를 사무실 삼아 당시 고가장비에 속하던 매킨토시도 한대 들여놓고.... 번역, 교열, 편집대행을 한다고 명함에 새겨 출판사 시절에 맺었던 인연을 향해 좌악 뿌렸다.
마침 출판사들도 인원을 줄이고 아웃소싱에 많이 의존하던 때라 일꺼리는 많았다.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후배를 하나 영입하여 밤을 새워가며 일했다.
워낙 이런 일은 임금이 짜고 납품기일도 촉박하다.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요 까놓고 말하면 노가다... 한 출판사에서 하청받은 비디오 사전 작업을 할 때는 정말 끼니도 제대로 못챙겨먹으며 연속 날밤 새우다 쓰러질 뻔하기도 했다.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어쩌다 카드 주문제작(카드 속지와 봉투에 주문자가 원하는 메시지와 로고를 별도로 제작하여 붙여주는 일)도 했다. 출판물 동네와는 또 다른 이 동네(판촉물, 달력, 다이어리 제작으로 먹고사는 동네) 일은 나름대로 폭넓은 세상경험을 하게 해주었다.(이 얘기도 기회대로 다시 해야지...)
그 일도 한 2년...
돌아보면 나름대로 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 일들을 계속 했더라면.... 힘들고 마음에 안 차더라도,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끌고나갔더라면 지금쯤 그 동네에서 나름대로 一家를 이루었을 텐데....
시작이 별볼일 없었어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친구들이 지금 어엿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 그런 후회가 맞는 듯하다... 그러나...
암만해도 나는 기질적으로 정착민은 못 되는 것 같다.
아이들 가르칠 때 성문종합영어 앞부분에서 이런 예문을 본 기억이 난다.
"유태인들은 장사를 할 때 과일이나 생선처럼 매일 팔아치워야 하는 물건이나 보석처럼 몸에 지닐 수 있는 것들을 취급하려고 한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면 언제든지 장사를 접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도 고정된 일에 매이기를 꺼리는 어떤 심리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걸까. 가끔 '내 한입 풀칠할 수단만 있다면 호의호식 안 바라고 평생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겠는데....' 이따위 허황된 생각이 마음만 먹으면 곧 손에 잡힐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많으니...
그러나 질기게 묶인 내 전생의 업은 어떡하나... ㅠ.ㅠ 내 처지를 돌아보면 몸도 마음도 이미 많이 무겁다. 마음잡고 품위있게 정착민의 삶을 배우라고 한다.
그러려면... 그리고 흔들리지 않으려면....내 발로 내가 설 곳을 다져야 하는데....
새로 시작해야 할 서울시 정착민의 생활을 탐색하는 마음이 괜스레 바빠진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해묵은 '알바' 컴플렉스를 버릴까, 즐길까....
나는 무엇을 하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알바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