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성 유람기 1--곤명시 뒷골목의 하룻밤
여행을 좋아하지만 시간상 경제상 강소성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 지 1년 만에 일주일치씩이나 배낭을 꾸리게 되었으니 길 떠나기 전에 얼마나 가슴이 부풀었는지... 그런 연유로 떠나기 보름 전부터 이책 저책 인터넷 자료까지 뒤지며 법석을 떨었지만 첫째 시간부족 둘째 정보부족으로 기본적인 한계를 안고 떠나는 길이 되었다.
책에 길을 묻는 나그네들--쿤밍
취호공원에서 다리쉼을 하며
상해 홍차오공항에서 18시 35분에 쿤밍행 비행기가 뜨게 되어 있다.
김포공항에 쿤밍 직항이 없기 때문에 함께 가기로 한 후배가 오후 2시에야 상해공항에 도착했는데, 한국은 중국처럼 오래 놀질 못하니 눈치 살펴가며 얻은 휴가라, 하룻밤은커녕 고국의 소식이 그리운 선배를 위해 꾸려온 과월호 잡지만 한 가방 풀어놓고 바로 공항으로 뛰어야 했다.
남편의 퇴근시간 때문에 맨 마지막 비행기표를 끊어놓았더니 뀌양을 경유하여 가느라고 세 시간 반씩이나 걸린단다. 한국 가는 시간의 두 배다.
밤 9시 30분경 뀌양에서 잠시 서더니 짐이 하나 남는다고 비행기를 한 시간 가까이 세워둔다.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덕분에 예정보다 두 시간 가까이 늦은 밤 11시 20분경 간신히 쿤밍공항에 도착했다.
비상사태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원칙에 따라 공항리무진을 타야 하지만 야심한 밤에 공항버스가 어딨나. 35원 달라는 걸 5원 깎아 택시를 타고 이튿날 행선지인 석림행 버스 떠나는 기차역 부근 장거리버스터미널 앞에서 하차. 택시에서 내린 곳은 밤이 너무 깊어서인지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컴컴한 뒷골목이다.
잠은 싼 곳에서 잔다는 원칙에 따라 좀 큰 호텔 앞에 내려준 기사의 호의를 무시하고 침대 하나에 20원이라고 외치는 아가씨를 따라 가는데 운전사가 차를 몰아 계속 따라오며 거기는 안전하지 않다고 애타게 외친다. 성의는 고마워도 일행이 네 명이나 되는데 뭐가 위험하단 말야.
하지만 남편도 너무 뒷골목으로만 간다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나를 만류하다 못해 화를 낸다. 할 수 없이 비교적 수수한 호텔을 골라서 들어가니 거기는 외국인이 못 자는 데라고 그 옆의 호텔로 가란다. 이름하여 황금사자호텔. 내가 보기는 여기나 거기나 비슷한데...
욕실 딸린 160원짜리 2인실을 100원에 흥정하고 짐을 풀고 나니 새벽 1시 가까운 시간. 겉보기엔 여인숙보다 약간 나은 정도지만 더운물도 나오고 이부자리도 깨끗하다. 하룻밤 고맙게 잤다.
199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