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운남성 유람기 8 - 虎跳峽 건너뛰기

張萬玉 2005. 7. 7. 09:06
아침 7시, 이곳은 아직도 한밤중이지만 먼 길을 가기 위해 기사아줌마가 새벽(?)길을 재촉한다.  나시족 여자들 부지런한 건 알아줘야 한다. 세벽 네 시부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니 아저씨가 정신 나간 것 아니냐고 놀라더란다.

 

나시족은 전통적으로 여자가 일하고 남자는 아편만 피우기로 유명한데 그 버릇 개 못 주고 오늘날도 여전히 여자들이 생활전선의 총대를 메고 있다. 이 아줌마네도 내외가 교대로 운전을 하면서 사는데 마작에 빠진 아저씨가 종종 제껴서 아줌마 혼자 일하는 경우도 많은 눈치였다. 돈만 안 갖고 가도 좋겠다나.

 

와- 동 트는 산길을 이리저리 달리는 기분이 그만이다. 험한 봉우리를 세 개쯤 넘었나? 한 시간 정도 똬리 튼 숲속 길을 돌아나가다 보니 녹색의 벽계수가 콸콸 흘러내린다.

오늘 가려는 곳은 후탸오샤라는 계곡으로(虎跳峽 : 호랑이가 뛰어다니는 협곡이라는 뜻) 어제 보았던 위룽쉬에산의 뒤쪽이다. 유명한 스키장도 이 뒷편에 있단다.


골짜기로 들어갈수록 장강삼협을 연상케 하는 협곡이 겹겹이 장막을 쳤는데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양의 바위 근처 성난 물보라와 함께 호쾌한 장관을 이룬다.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니 후배는 단양팔경의 아름다움도 이에 못지 않다고 갑자기 기염을 토한다. 하긴 그 말도 과히 틀리진 않다. 중국의 이름난 산수를 가보아도 늘 한국의 강산과 비교가 되는 건 단지 애국심의 발로만은 아닐걸.
중국의 그것이 규모 면에서 입이 딱 벌어진다는 정도?

 


2004년에 조카가 가서 찍은 호도협 사진...  당시 찍은 사진은 너무 색이 바래서....

 

시간이 일러서인지 인적이 드문 골짜기에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친다.

바람이 왠만하면 반대편 계곡의 벼랑길을 따라 한비야씨 권유에 따라 트레킹 흉내라도 내고 싶지만 아침도 못 먹고 얇은 남방 하나에 의지한 형편이라 아쉬운 대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호도협 자체도 멋있지만 호도협까지 오는 길의 풍경, 특히 평원 쪽으로 펼쳐진 농가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방향이 같다니 내친김에 티벳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중띠엔까지 가보자는 용감한 의견도 나왔지만 밤 10시나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다고 하고, 무엇보다도 리장까지 왔다가 麗江古城을 안 볼 수는 없기에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리장꾸청은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도랑(설겆이하고 빨래하고 요강까지 헹구는데 물이 아직 맑은 걸 보면 신기하다) 양편으로 오래된 기와집들이 빡빡하게 늘어선 동네로, 동산에 올라가보니 검은 기와가 끝없는 벌판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설을 지내고 놀러온 관광객들이 붐벼 꾸청은 완전히 시장판이지만 장사꾼에 시달리는 짜증 대신 오히려 여행지의 낭만이 느껴지니 이것 또한 소박한 리장의 매력이 아닐까.

 


산 위에서 본 리장꾸청 전경..(조카가 찍은 사진)

 


여강고성 전경 하나 더....

 

리장꾸청을 이리저리 끼고 도는 수로에서 빨래도 하고 세수도 하고....

 


 

기념품 상점에 널린 물건들도 마치 인디오들의 것처럼 화려하고 이국적인 무늬며 색깔이다. 반지, 악세사리, 벽걸이 등 저절로 손이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망설임 끝에 우리가 다닌 지방에 살고 있는 민족(백족, 장족, 이족, 나시족, 사니족, 묘족) 인형들을 골랐다. 동파문화를 소개하는 사진집 하나 사고....

 


기념품점 강아지와 놀고 있는 이 녀석은?

 

<바람의 딸>에 등장하는 벚꽃마을을 일부러 찾아갔지만 김명애씨 내외는(아니, 내외라기보다는 아르바이트 삼아 분식센터를 벌려놓은 남녀 고등학생 같은 느낌. 김명애씨, 실례!) 바글바글하는 손님에 치여 오셨어요? 소리밖에 못한다.

 

30분을 앉아 있어도 주문 받으러도 안 오고. 꼭 한국사람이려니 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손님들이 대부분 리장에서 몇 주씩 머무는 배낭족들이다 보니 물 먹고 싶으면 갖다먹으라는 분위기. 여기서 손님 대접 안 한다고 불평하면 확실히 튀지~~. 오랜만에 한국음식 먹고 주인이랑 수다도 떨어볼까 하던 어리석음을 떨쳐버리고 될 수 있으면 손 안 가는 걸로 골라 같은 걸로 통일시켜 주문한 이 언니의 넓은 마음 그대는 알까.

 

근데 웃기는 건 손님은 바글거려도 돈은 별로 못 벌 게 확실한 게, 우리가 위치를 확인하려고 3시쯤 들렀을 때 보았던 아이들(가장 좋은 곳에 열 자리 정도 잡아 한 쪽에서는 기타를 튕기고 한쪽에서는 카드 돌리던 눈이 게슴츠레한 노랑머리들)이 여섯 시에 밥 먹으러 갔을 때까지 있더니만 밤 9시 반에 다시 들렀을 때도 앉아 있더군. 그러니 사랑방이지 돈 버는 덴가. 하긴 아직 젊으니 "너희, 돈 벌려면 서비스도 향상해야 하구 환경도 어쩌구 저쩌구...." 이런 말은 별로 해당사항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벚꽃마을 까페.... 1999년에 갔을 때는 이런 분위기였는데....

 


2004년에 조카가 갔을 때는 종업원도 저렇게 많고 분점을 세 개나 낼 정도로 성업중이었단다.

 

암튼 너흰 젊어서 좋겄다 시무룩하게 중얼중얼거리며 대강 볶은 김치비빔밥인지 볶음밥인지를 간신히 얻어먹고는 그들의 의도하지 않은 무례함에 살며시 고개를 드는 섭섭함을 꾹 누르며 우리는 정통 나시 음악 콘서트가 열린다는 동파문화연구소로 향했다.

 

1999.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