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성 유람기 12 - 올 때는 맘대로 왔지만 갈 때는 맘대로 못가!
2시간 거리인 백코끼리 야생구에 다녀와서 민족풍 정원을 보고 오후 8시 비행기를 타려니 일정이 빡빡하여 꼭두새벽에 일어났는데 왠지 후배는 느긋하다. 자기는 오늘 하루 헐레벌떡 관광에서 벗어나 시장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한국 들고 갈 운남성 특산차도 사며 여유 잡겠다는 거다.
어제 감람파행이 성에 안 찼기에 징홍 외곽을 한 차례 더 뛰어봐야겠다는 욕심에 오후 3시 안 되면 4시에 민족풍 정원 안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 가족 셋만 쓰마오(思牙)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산으로 산으로 올라갔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기를 두 번, 열대 숲 사이를 헤치고 가던 어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우리는 종점인 쓰마오 못 미쳐 싼쟈허에서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이게 또 돌아올 때 말썽이 될 줄이야.
아무튼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열대우림을 보고 신이 나서 입장권을 샀는데 여기도 리프트 표를 사야 한단다. 중국의 풍경구들은 리프트 같은 것이 없으면 다 돌아보는 데 최소한 이틀은 잡아야 할 정도의 규모이기 때문에 어딜 가나 리프트가 기다리고 있다. 고소공포증 환자라 리프트라면 딱 질색인 나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깊은 계곡을 발 아래에 두고 30여분 가량 리프트를 타는데 이곳의 풍경은 완전히 정글이다. 낯선 새소리도 들리고 빡빡하게 헝클어진 나무 종류도 처음 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정글에 300마리 정도의 야생 코끼리가 살고 있다는 것인데 대개 밤에 출몰을 한다니 약간 속은 기분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높은 나무 위에 간이숙소를 매달아놓았다. 사전 정보가 있었으면 어제 감람파에서 헤매느니 여기 와서 하룻밤 자는 건데...
리프트는 일방통행이라 내리자마자 우린 지름길을 택해 귀로에 올라야 했다. 세상에, 이런 뜀뛰기 관광은 또 처음이다. 남겨두기 아까운 풍경을 뒤로 한 채 가랑이에서 휘파람소리가 나도록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데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머머, 여기선 또 코끼리 쇼를 하네. 아들넘이 궁금해 하길래 에라 모르겠다, 생과일을 짜서 만든 망고주스와 파인애플 주스 한잔씩 사들고 서커스장으로 들어갔다. 있잖니, 거 왜 코끼리가 인사도 하고 외나무다리도 건너고 축구도 하고 그러는 거.
빠뜨릴 수 없는 요상한 재주 하나--코끼리 안마.
관중석에서 코끼리에게 안마 받고 싶은 남자 두 명 여자 두 명 나오라고 하더니 한 줄로 눕혀놓으니 그 사이로 코끼리가 지나가며 앞발로 사람을 지긋지긋 누르는데 정확하게 여자는 가슴을, 남자는 가랑이 사이를 눌러준다. 짖꿎은 놈들 같으니라구.
한 20분 보고 나서 옆에 있는 셀프 서비스 식당(역시 이곳도 다이족 빈티음식이다)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갈길을 재촉하려니 어럽쇼, 여기가 바로 출구네.
근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나가는 버스가 없는 것이다. 원래 버스 타던 곳까지 1킬로를 땀 뻘뻘 흘리며 돌아갔는데 도대체 이곳에서는 버스가 안 선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올 때는 분명히 여기서 세워주어 내렸는데.
여행사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게 중국 관광지 사정이라 일반 버스들이 여기서 못 서는 건 혹시 여행사들의 농간이 아닐까.(중국 물정을 잘 알게 된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곳은 대중교통이 없는 작은 마을이었던 것이다.)
내막은 알 수 없지만 1시간 가까이 버스를 세워보다가 도저히 안 되어 파출소로 쫓아갔다.
당신은 세울 수 있지 않겠느냐, 우리 비행기 시간 늦으니 좀 도와달라고 조르고 있는데 남편이 막 손짓한다. 징홍발 버스의 가장 가까운 종점인 멍양까지 가는 트럭을 세운 것이다(설마 종점에서야 버스가 서 있겠지). 트럭 뒤칸에 올라타고 30여분간 먼지 뒤집어쓰며 털털거리는 길을 달려 멍양에 도착하니 징홍발 버스가 막 출발해버린다.
속세로 나와 잠옷 입은
여인과 마주앉아 반찬거리를 다듬는 스님...
(아마 가족간일 겁니다. ㅎㅎ 여기선 아들 중 하나는 꼭 스님으로 만들고 싶어한다니까...)
1999.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