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운남성 유람기 13 - 남국의 정취?

張萬玉 2005. 7. 9. 09:14
어쨌든 일단 표를 사고 다음 차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악명 높은 중국화장실의 원형 발견...

담만 있고 문은 없는 화장실 입구를 통과하니 네 명의 아줌마 아가씨들이 정면으로 쪼그리고 앉아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문도 칸막이도 없이 구멍만 몇 개 뚫어 놓은 이 황당한 공간을 받아들인다는 게 그리 쉽지 않았지만 여기서 부끄러워하면 구경꺼리 될까봐 애써 천연덕스러운 걸음걸이로 뚜벅뚜벅 걸어 다섯 번째 비어있는 구멍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휴, 영파의 어느 공장 화장실에선가 이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만... 그래도 그땐 옆으로 앉게 되어 있어 이렇게 충격이 크지 않았는데....

 

쇼킹 화장실을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30분이 지나도록 금방 출발한다던 다음 버스는 보이지도 않는다. 잘못하면 4시까지도 도착 못하겠다는 불길한 예감에 할 수 없이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더니 생각보다 싼 60원을 부른다(관광객 실어다 주고 돌아가는 차였다).

후배는 점심 먹고 일찌감치 민족풍 정원에 도착해 시원한 숲속에서 우아하게 폼을 잡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 정원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예쁜 숲 속이다. 여기에 하니족, 뿌랑족, 다이족 무슨 무슨 족 등 씨쐉반나주에 사는 대표 다섯 개 소수민족의 주거와 민속을 전시하고 조그만 열대동물원까지 차려놓았다. 꽃들은 대부분 손바닥 만한 크기의 원색 꽃들인데 모양도 향기도 모두 요염하다.

여기서도 목욕춤 공연이 있는데 원림처럼 홀라당 벗진 않았지만 야한 제스처는 비슷하다.

 


쇼 준비중..(조카가 찍은 사진이라 배경이 밤이다.)

 

하니족 구역에서는 가니 차 한 주전자를 내놓고 차도 마시고 안마도 받으란다. 안마는 태국식 안마라는 말을 들은 바 있기에 못이기는 척 하고 앉았더니 장장 20분을 정성껏 주물러준다. 열 몇살 짜리일 듯한 소녀의 아귀심이 어찌나 야무진지 며칠간의 여독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다. 그렇게 힘을 쓰는데 겨우 10원이라니.

 

찻집 겸 간이 안마시술소...

 

좀 심하게 말하면 씨쐉반나의 분위기는 어쩐지 홍등가 같은 느낌이다(설마 씨쐉반나 사람들이 이 글을 읽지는 않겠지?)

거리를 활보하는 다이족 아가씨들은 <그린파파야의 향기>에 나오는 여배우 같은 얼굴. 순종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째 좀 뻔뻔해 보이는... 머리 한쪽에는 꽃을 푸짐하게 꽂고 딱 달라붙는 나시에 허벅지까지 찢어진 통 좁은 치마를 입고 있다.

 


 

무더운 날씨, 느릿느릿한 움직임, 관광객들만 보면 악착같이 달라붙는 호객꾼들, 결코 싸지 않은 물가에 보잘것없는 서비스, 빈티음식, 관광지 주변에 즐비하게 널린 지저분한 가라오께와 비디오방 등... 아, 빨리 이 불결하고 후덥지근한 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예전에 뭘 모를 때는 남국의 정취 어쩌구 하면서 기회를 만들어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지를 한번 돌아야지 했지만 동남아 쪽은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고호를 타히티 섬에 눌러 앉힌 게 눈부신 태양 아래 흐드러지는 이 원색의 여인의 향기 아니었을까.

 

어쨌든 오전에 헐레벌떡 한 덕분에 우린 느긋하게 쿤밍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울긋불긋한 민족의상 내지는 기념 티셔츠 하나씩 걸쳐 입고 열매목걸이 두르고 기념품 보따리를 바리바리 든 씨솽반나 관광객들로 비행기는 만원이다(쿤밍행 비행기가 20분 간격으로 있는데).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뜨는 바람에 밤 10시 넘어 쿤밍에 도착한 우리는 내일 마지막 코스인 삼림공원은 포기하고 운남성박물관에서 이제까지 본 소수민족에 관해 총복습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자고 합의, 쿤밍 제일의 번화가 동펑시루에 3성급 호텔 168원짜리 방을 잡았다.

 

쿤밍 제일의 명승지 신지와 삼림공원을 포기한 것은 애석하지만 내일아침엔 축복 받은 늦잠이 있다! 오늘은 8박 9일의 마지막 밤, 여행기간을 통해 제일 비싼 방에서 더운물 목욕 만끽 중.

 

1999.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