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박민규가 만든 카스테라를 먹어보니....
오븐은 언제나 예열되어 있다. 세계의 재료도 언제나 당신의 주변에 쌓여 있다. 결국 이 많은 물질과 물질과 물질을 어떻게 리믹스할 것인가... 관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민규는 그렇게 카스테라를 만들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식에 따라 냉장의 세계 속에 일단 집어넣어서...
박민규가 만들어낸 <카스테라>가 어떤 맛이었냐 하면
매우 친근하면서도 낯선... 우리 아들넘 맛이었다.
첫째, 사용한 재료를 보면
울 아들이 초중고... 대학시절까지 끌어안고 주무르던 것들이다.
SF, 괴수대백과사전, 과학기사를 유난히 많이 다루었던 90년대 초반의 소년중앙, 너구리, 대왕오징어, 개복치, 고무동력기, 외계인, 초코파이와 오예스의 비교분석, 알바, 편의점, 고시원....
둘째, 만든 방식
일단 섞는다. 열심히 반죽한다... 반죽에서 빛나는 전구가 나올 때까지...
어른들은 혀를 찬다...
짜슥아, 될 걸 주물러라...
그래도 열심히 반죽하다보니 카스테라의 분자구조를 형성하는 점성이 형성된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고 환상을 현실 속에 반죽해넣는 유목민의 반죽법(늘 새로운 것과 접속할 수 있고 결합할 수 있는 게 유목민의 생존능력이라고 했던가?)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환유에 절이고(우리와는 다른 물질시대에 산 사람들 특유의 기법으로 보인다. 메뉴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풍부하다) 얼렁뚱땅 딴소리도 썰어넣고('기초공사 부실'이라는 기성세대의 의혹을 피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여기에 멋들어진 아포리즘도 한방울 떨어뜨린다.
셋째, 완성된 맛을 보면.... 약간 비리다.
지난 토요일에 20대 두 명과 함께 본 '웰컴투 동막골'의 맛이랄까.
아름다운 화면, 아름다운 설정, 아름다운 스토리... 다 좋았는데
그냥 '만화'였다.
(만화는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지, 뭬 상징을 찾고 의미를 찾고 비판을 하고......
군등내 나는 거지.)
그래도 자꾸 가슴이 허전해지는 것은 지금 한국 사회에 '만화'만 가득한 거 아닌가 하는 불안..
'딴소리'와 공허한 '아포리즘'에 열광하는 세태에 대한 안쓰러움.. 웬지 모를 부채감...
(주제넘은 거지..)
하지만 <카스테라> 한권 가득 넘쳐나는 '현실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적은', '마이너리티'들의 가슴을 뻥 뚤어줄... 그 무언가는 어디에 있는 걸까... '딴소리' 아니라 정색을 하고 달려들어 열을 올릴 만한 우리의 미래는?
박민규가 빚어낸 카스테라의 비릿한 맛은 사실 그의 솜씨라기보다는 우리시대의 솜씨,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한계인 줄 알면서도 나 역시 비릿한 그맛에 만족하지 못해 자꾸 어버버 어버버 하고 싶어진다.
성장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의 소설이 내 눈에 '성장소설' 쪽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미 그 소설의 주인공들이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연령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며...
가지고 노는 장난감만 다를 뿐 정착민의 기득권에서 일찌감치 자의반 타의반 열외가 된 어른 유목민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며...
아예 우리사회를 덮고 있는 공기조차도 마이너 정서에 깊이 감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우리 사회 전체가 지독한 성장통을 앓고 있는 듯 느껴진다.
나야 뭐 문학의 길에 함께 서 있는 동업자의 관점이 아니니 작품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그런가보다' 이해하는 수준이지만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뒤에 붙은 해설을 옮기자면...
'포스트모던 소설미학의 내면화된 최신버전...' 이라고 한다. 즉 80년대의 소재를 90년대의 소설언어를 사용하여 결합하되, 박민규 특유의 멋진 솜씨로 버전업 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그물을 빠져나가기 힘들어진 21세기 소설의 길을 넓히는 하나의 참신한 시도로 평가받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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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카스테라의 대부분을(가장 하드한 언어로 씌어진 네 꼭지만 빼고) 읽고 나서
고미숙의 <열하일기, 역설과 웃음의 유쾌한 시공간> 부록에 붙은 '용어해설'을 훑어봤다.
그 영향일까... '유목민'이라는 키워드와 포스트모던하게 구워진 박민규의 카스테라가 오버랩되는 묘한 경험을 했다. 꿈속에서....
지난밤 꿈의 뒷맛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남긴 독후감이라
읽으시는 분들은 이 글이 좀 어리둥절할지 모르겠다.
(플라이급님, 확실히 노친네의 독후감이라... 좀 난감하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