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萬玉 2005. 8. 31. 23:05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그 유명한 봉천동 (구) 달동네.... 가파른 언덕배기의 딱 중간이다.

구간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급한 오르막 경사는 아마 45도 정도는 될 거다.

운전이 서툰 친구가 태워다주길래, 내리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니 비명을 지르더라.

"야, 빨리 내려, 빨리.... 브레이크 밟고 있기 힘들단 말야!"

 

처음에 이사와서는 외출할 일이 끔찍하여 장은 한꺼번에 보아 배달시키고(이 동네의 지리적 조건 때문에 마트에서의 배달업무는 기본이다) 외출할 일도 모아 모아 하루 한번으로 다 해결하면서 마치 쉬러 별장에 들어온 기분으로 살았다. '나 무릎 안 좋은 거 알면서 이런 데다 집을 구해주다니....'   연립주택 정도 얻을 돈을 보내면서, '딱 1년 뒤에 나가야 하는데 전세 안 빠지면 큰일이니 웬만하면 아파트로 구해달라'고 부탁할 땐 언제고... 열심히 발품 팔아준 애꿎은 시누이를 원망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한 달을 버티고 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모양.

뛰어올라오고 뛰어내려가진 못해도 적어도 외출은 여삿일이 되었다.   

 

평지에 조성된 '평화로운' 아파트단지에 익숙해있는 친구들이나 친지들이 우리집에 오면 모두 놀라며 재미있어 하던데....

여러분들도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정다운 우리동네... 구경 한번 하실랍니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이 동네에 자리잡은 지가 10년이 넘었는데도 우리 골목만 벗어나면 같은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른다. 동*, 현*, 삼*, 건*....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이름이 아닌 데다 딱 다섯 동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층아파트 발치에 폭 파묻힌 우리 아파트...  우리끼리도 동마다 2층높이씩 고도 차이가 난다. 

 

여느 아파트 단지에서는 "놀이터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걱정도 많이 하던데, 놀이터도 없는 우리 아파트 아이들은 주차공간이자 진입로인 아파트 뜰에 바글바글 모여 신나게 논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베란다 아래로 야채 실은 트럭이 지나가며 저녁반찬꺼리 구매를 독려하고,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5층부터 계단청소용 물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연이어 '띵동!' 벨이 울린다.

"계단청소하세요!"

 

 

이 골목은 아파트라고는 우리 아파트밖에 없는 주택가이다.

이런 주택가에서 멀어진 지 20년이 다 되어가니  골목길 풍경 하나하나가 다 새삼스럽다.  

앞으로 10년 뒤에도 서울에서 이런 골목길을 볼 수 있을지... 

 


 

아주머니, 힘드시죠? (재주가 없어서 하나도 안 힘들어 보이게 찍었다)

 

 



대파나 깻잎을 심은 고무다라이들은 정원이자 도로변인 이 골목을 장식해주는 화분역할도... 


 

급한 산비탈에 조성된 이 동네(골짜기 속으로 폭 파묻힌 우리 아파트 좌우로 포진한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포함)는 발치와 머리맡에 버스가 다니는 간선도로를 두고 있다. 가도가도 산 하나 없는 상하이에 적응이 되어 그런지, 처음엔 머리맡으로 난 윗길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상하이 집의 파출부 가건홍씨는 사천성 산골 출신인데, 그 동네가 그렇다고 했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을 나와 일단 산꼭대기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다시 건너편 봉우리까지 올라가면 맨 꼭대기에 읍내 나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고....  (버스정류장은 평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매, 산사태로부터 윗길을 보호해주고 있는 저 대단한 옹벽 좀 보소!!

 

 

비록 5분 거리기이기는 하지만 가파른 비탈이 무서웠던 나는 이제 완전히 손쉬운 외출요령을 터득했다. 즉 외출할 때는 아랫길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고 외출에서 돌아올 때는 윗길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는 거다. ㅎㅎ

 


 

지형이 워낙 기울어지다 보니 중앙분리대로 나뉜 양쪽 차선 높이가 버스 높이 정도 차이가 난다(반대편 차선으로 노란버스 지붕이 보이시는가?). 그것도 모자라 보도와 인도 사이에는 승합차 높이의 차이가 나고....

 

 

한국에 온 첫 달, 반갑다 밥먹자고 친구들이 불러대는 통에 좀 불어난 체중이 무릎관절을 압박하는지라 비상관리모드에 들어간 나...그 프로그램 1단계로서 요즘 매일 아침 윗길 버스노선을 따라 '걷기'를 실시하고 있는데....

 

비록 매연을 내뿜는 차들과 공존하는 길이지만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그 찻길산책조차도 꽤 상쾌하게 느껴진다. 적당한 굴곡을 동반한 길을 50분 정도 걷다 보면 온몸이 땀이 푹 젖는다. 평탄해보이지만 사실은 8부능선이기 때문에 그 길목에 있는 세 개의 학교 중 두 개는 모두 산과 관련된 이름을 갖고 있다. (국사峰 중학교, 九岩중학교)

 


 

색색의 풍선을 들고 가는 아이들이 보이시는가.

저 높은 건물은 초등학교인데 조만한 아이들이 사진 중간을 가르는 저 난간을 따라 등교한다.

 

 

그 반환점에는 약수터가 있고, 아침 7시에 맞추게 되면 어르신들이 하시는 "맷돌체조교실"(이름 한번 특이하다. ^^ )에 끼어들 수도 있고 시간이 나면 100미터쯤 더 올라갈 수 있는 정상도 있다.

 

보라, 이 8부능선 위의 성채들을.... 정말 놀랍지 않은가.


 

사진솜씨가 고도를 잘 나타내주지 못했다면 왼쪽의 가로등 수를 한번 세어보시라.

 

 


 

윗길에서 내려다본 인근 아파트 놀이터

 

한 상가 건물은 뒤쪽으로 들어가니 6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니 앞쪽 문이 있더라. ㅎㅎ  

외양은 다르지만 결국 고산족(중국 고산지대에서 많이 보았던)들이나 다름없이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모습인 것이다. 건축기술 뛰어나니 자원을 더 활용할 수 있다고 마지막 남은 푸른 허파까지 밀어붙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ㅎㅎ

 

(사진)

 

 

P.S. :

어디선가 '봉천동'의 동 이름을 바꾼다는 얘길 본 것 같다. 

빈티나는 동네 혐의를 벗겨주려는 호의란다. 어이가 없다.

과거에 가난했던 것이, 설사 현재까지 계속 가난한 동네라 하더라도 

그게 왜 부끄러운 이름이 되어야 하는 거지?

 

나라를 부정, 특권, 편법으로 오염시키고 있는 건 오히려 가진자 쪽 아니던가...

고치고 싶도록 부끄러운 동네 이름이 있다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서민의 동네가 아니라 끝간 데 없는 물욕과 이기심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강남 쪽 아닌가..

 

하늘을 받드는 동네.... 얼마나 좋은 이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