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살림장만記
서서히 쌓아올렸던 서울생활.... (화려한 외출..ㅜ.ㅜ) 이제 서서히 해체할 때가 되었다.
알바 하던 거 마무리하고... 방 내놓고... 아들넘 비자 수속하고... 이삿짐 싸서 부치고...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마음이 공연히 벌써 바쁘다.
살림을 처분해야 하나?
이 대목에 이르니 괜히 마음이 착잡해진다.
나의 묵은글을 뒤져보신 분들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원래 신혼에 살림 시작할 때부터 내게 '살림장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시대적인 상황과 집안의 반대로 언약식 비슷한 결혼식으로 시작하였으니 각자 자취하던 살림을 합쳐 양철 캐비닛과 비키니옷장을 나란히 놓았다 해도 공장노동자 생활을 하던 우리에겐 충분히 어울리는 만족한 살림이었다. 살림살이 주무를 시간도 없었고..
그러던 중 최저임금에도 못미친다는 월급을 쪼개 매월 10만원씩 붓던 주택청약통장이 35평 아파트에 당첨되었는데, 중도금조차 낼 능력이 없던 우리는 1985년 당시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던 웃돈 3000만원을 얹어 그 아파트를 팔 수밖에... 그렇게 하니 27평짜리 아파트가 한채 떨어졌다(말죽거리 잔혹사에 해당하는 아파트 전설... 아직도 전래되고 있는...).
열다섯평쯤 집이 넓어지고 보니... 에궁, 집이 텅 빈다. 이삿짐 부려놓고 대강 정리하고 있는데 옆집 아줌마가 들여다보고 물어본다. "이사 가세요?" *.*
체면과는 담쌓고 살던 나도 약간 흔들렸는지, 또 그 사이에 태어난 아기 짐도 박스에 담아놓고 쓰던 터라 그랬는지 몰라도 암만해도 가구를 좀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망설이던 차인데 마침 '알뜰살림 장만'의 기회가 왔다. 후배 친구가 이혼을 한 것이었다. 이혼만 한 게 아니라 신혼살림을 처분하고 미국으로 뜰 참이어서 몽땅 가져갈 사람을 구한단다. (그 불행한 소식이 내겐 기쁜 소식이 되었다. 에궁..)
부잣집 딸이어서 가구나 가전제품이 모두 고급이었다. 당시로선 거금이었던 180만 원을 치르고 짐을 옮겨오던 날...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제자리 잡아놓고 나니 어찌나 으리번쩍하던지, 공장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온다고 하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도 광택제 뿌려 빤딱빤딱하게 걸레질을 하는 기분이 어찌나 뿌듯한지... 그냥 집에 눌러앉아 살림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 살림 일체가 중국까지 따라왔다.
그 살림장만을 주선했던 후배가 중국에 놀러와서 보고는 까무라치려고 하더라. ㅎㅎ
(아니, 이사비용을 회사에서 대주는데 멀쩡한 것들을 왜 버리나.)
회사 사택에서 4년 정도 살다가 집을 한 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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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이런 불상사....!
구질구질한 신변잡기를 되는대로 늘어놓다 말고 닫아놓는다는 것이....
외출했다 돌아와보니 글쎄 문을 제대로 안 잠갔군요. 럴쑤럴쑤이럴쑤~~
아무튼 그리하야 간단히 끝을 맺어야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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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을 사고 인테리어를 말짱하게 하고 나니(이 얘긴 '상하이통신' 어딘가를 들쳐보면 나온다) 10년도 넘게 사용한 남의집 물건들이 이젠 눈에 띄게 우중충해 보인다. 우리가 이사하면서 사택이 매매처분되었다면, 구멍난 양말 기워 신는다는 김우중씨 찜쪄먹을 노랭이 부부는 아마 그 짐들은 환한 새집으로 옮겨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택은 중국출장자들을 위해 계속 유지하기로 했고.... 기능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손때묻은 나의 업둥이 가구들은 그 집에 남겨져 '장수만세'를 누리고 있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나는 예쁜 가구나 좋은 가전제품을 어루만질 때 자동으로 터져나온다는 '여자라서 행복해요'.... 가 잘 안 되는 족속이다. 여자가 아닌가보다. 질펀한 가구는 모두 내가 관리해줘야 하는 '짐'으로만 느껴지니....ㅜ.ㅜ)
그리하여 장여사, 결혼 20여년 만에 신혼 같은 '제대로살림'을 장만하게 되었고, 졸지에 거금을 주무른 연후 장여사는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살림장만'은 없으리라 호언장담을 했으렷다....그런데 1년 반 만에 조촐하나마 또 한살림을 꾸리게 되었으니...그 연유는 또 이 블러그 어디에선가 주저리주저리 했을 것이다(아주 쇼를 해요, 트루먼 쇼를...ㅎㅎ).
그리고... 두 달이 못 가 살림해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계획은 사람이 세우나 진행은 하늘이 하신다는 말이 참말인가 보다.
한치 앞도 못보는 이 근시안이라니...
어쩌겠나... 허허, 웃으며 어떻게 이 살림을 해체할 것인가 목하 연구중이다.
참 이상한 것이.... 예전엔 별반 느끼지 못한 '살림살이'.... 그것도 자취살림 내지 동거커플 살림에 불과한 이 조촐한 살림살이에 대해, 왜 이번에는 그리도 애착이 생기는지....
겨우 두 달 남짓 동거한 넘들일 뿐인데... 못다한 서울 생활에 대한 미련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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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슨 변화가 이리도 무쌍한고...
바로 조금 전 상하이에서 걸려온 남편의 전화.....
어쩌면 올해말로 본사 발령이 날지도 모르겠단다. 허걱!!!
좌남편 우자식이 교대로 요동치는 가운데 내 자리 없는 '나'는 어지러워 멀미가 난다.
모르겠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겠지...
자자... 자자꾸나.
마치 떨어진 자처럼... (누구 작품이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