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팀 버튼의 <빅 피쉬>(펌)
작년 겨울 아들넘 면회 가서 외박 데리고 나왔을 때 철원의 한 여관에서 본 영화.
팀 버튼 영화는 무조건 '콜'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시간이 지나니 재생이 잘 안 되어 어디선가 퍼왔다.
문제는 어디서 퍼왔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출처를 잃어버려 찾다찾다 못찾았다.
쓰신 분께 정말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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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진실이 만나는 순간 건져올린 아주 특별한 행복
윌은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평생 모험을 즐겼던 허풍쟁이 아버지는 “내가 왕년에~”로 시작되는 모험담을 늘어놓는다. 젊은 에드워드 블룸은 태어나자마자 온 병원을 헤집고 다녔고, 원인불명 ‘성장병’으로 남보다 빨리 컸으며 만능 스포츠맨에, 발명왕이자 해결사였다. 마을에서 가장 유명인사가 된 에드워드는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고, 대책없이 큰 거인, 늑대인간 서커스 단장, 샴 쌍둥이 자매, 괴짜시인 등 특별한(?) 친구들을 사귀면서 영웅적인 모험과 로맨스를 경험했다는데…
하지만 지금의 에드워드는 병상의 초라한 노인일 뿐.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아버지 곁에서 진짜 아버지의 모습이 궁금해진 윌은 창고 깊숙한 곳에서 아버지의 거짓말 속에 등장하는 증거를 하나 찾아내고, 이제 ‘에드워드 블룸의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커다란 물고기의 은유
여기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있다. 그윽하고 깊게 출렁이는 강의 여기저기를 가로지르며 멈출 줄 모르고 쉼 없이 헤엄쳐대는 거대한 한 마리의 물고기. 그 물고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먹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늘 물고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나의 <전설>이 되어 그 물고기는 사람들이 강을 지긋이 바라볼 때마다 파문을 일으키며 수면 위로 불쑥 떠오른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아 그 정체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잊혀질 듯 잊혀지지 않는 괴물 같은 물고기와 그에 관한 소문들. 이 영화는 이러한 감추어진 비밀스런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항상 그렇듯이 물고기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황당하고 허무맹랑하기까지 하다. 뱀과 거미와 모래 늪으로 우중충한 곳에 혼자 사는 마녀에서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늑대로 변하는 서커스단의 단장과 입김에도 사람이 날아가 버리고 기울어진 집을 똑바로 세우는 어마어마한 거인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추어진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어느 마을까지. 어린 아이의 잠자리 머리맡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그런 법이다. 우리 식으로 바꾸어본다면 할머니들이 어릴 적 들려주던 호랑이와 귀신 그리고 도깨비들을 그 자리에 두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의 시원인 아버지는 이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탕한 이야기들을 멈출 줄 모른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에 이제 다 자라서 결혼까지 한 아들은 넌더리를 낸다. 신문사에서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아들은 생을 마감하는 때가 가까워지는데도 불구하고 그칠 줄 모르는 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믿을 수가 없고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없다. 아들은 진실한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하지만 아버지는 늘 허풍뿐이다.
아버지/아들, 신화/현실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은 그대로 영화의 주제의식을 지탱하고 이끌어나가는 두 축이 된다. 아버지는 곧 이야기가 구전되던 시대의 입담꾼이자 그 이야기 자체이다. 원래 전설은 비범한 인물이 등장하며 사실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골 마을 애쉬튼의 영웅이며 좁은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더 넓은 세계로 모험을 떠나 온갖 고난을 헤치고 사랑하는 여인을 차지하는 아버지의 과거는 그러니까 고전적 이야기들의 영웅적 모험구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영웅들이 늘 한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것을 떠올려보라. 그들의 세계에서는 오늘날처럼 인간관계를 하나의 <관계>일 뿐인, 언제라도 변할 수 있는 그런 가치로 여길 수가 없다.
사랑하는 여자를 발견했을 때 온 세상이 멈춰버리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는 감독의 재치를 보자. 공중에 흩날려 멈춘 팝콘을 손으로 헤치며 여자에게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 그 집중의 순간. 그것을 희극적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은 팀 버튼의 장기인 동시에 영화적 서사물이 가지고 있는 장기이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오늘의 시대에 그런 이야기들이 힘을 잃어서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고 소멸되어가고 있는 위기 상황을 반영한다.
반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보다는 확실한 증거에 입각하여 육하원칙에 따라 정확한 사실을 논리적인 문장으로 표현하는 신문사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아들은 현재 시대를 대변한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현대의 모든 서사물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 근거도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아들이 반발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오늘날의 서사에서는 개연성 없는 플롯과 핍진성이 결여된 모티프들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우화적인 부드러움보다 까발린 진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 의 비유구조를 통하여 구전시대와 문장시대 환상과 현실, 나아가 신화시대와 현대의 대립과 갈등 또는 이야기의 생성과 소멸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좀 더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지니고 있던 매력과 일종의 <낭만>에 대한 향수를 내포하고 있다.
그 이야기의 시대에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성하고 여유 있고 행복했는가. 실로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근대문명은 그것을 답답하고 비논리적이며 밝혀지지 않아 두려운 <어둠>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 늑대로 변한 서커스단 단장의 공격을 받은 주인공(아버지)이 나뭇가지를 던지자 흉포한 늑대가 순진한 강아지처럼 그것을 물어오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악마나 요괴 혹은 마녀나 거인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근대의 사회성을 결여한 외로운 사람들의 변형일지도 모른다. 이 점은 <가위손>을 가진 쓸쓸하고 고독한 산발머리의 한 인간과도 비슷한 맥락에 위치해 있다.
현실과 비현실 혹은 허구와 실제의 교차와 접점
물론 이 영화는 향수를 성급하게 강요하거나 강제하지는 않는다. 또 그것을 유치하고 전근대적인 것으로 쉽게 몰아버리지도 않는다. 아들은 수면 위로 올라온 <빙산의 조그만 일부분> 외에 그 밑에 숨겨진 거대한 아버지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하며 아버지의 이야기들을 <산타클로스>나 <부활절 토끼>쯤으로 치부한다. 이 때 한 영웅과 그가 담고 있는 전설은 완전히 힘을 잃고 그 존재가치가 부인되는 것이다. 아들에 태도에 관해 아버지는 <네가 감추어진 빙산의 나머지 부분을 볼 수 없다면 그건 네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라고 일갈한다. 은유적 방식을 직설적으로 바꾸라는 강제는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부적절한 태도에 다름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살펴나가면서 아버지의 삶 자체가 통째로 허무맹랑한 것이 아님을 조금씩 체득해간다. 아버지가 실제 군입대했던 기록에서부터 과거 아버지가 되살리려고 했던 마을의 소녀를 직접 만나면서 조금씩 아들은 <신화>의 세계의 표현 방식에 관해 이해하기 시작한다.
논리적으로는 그 소녀가 다시 아버지의 어린 시절 마녀가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하지만 소녀의 말처럼 <아버지의 관점에서>라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그런 식의 리얼(real)을 따진다면 그것은 감독이나 원작자의 의도를 전혀 곡해한 것이 된다. 허구적 이야기 속으로 현실적 진실이 틈입하는 그 교차의 순간, 그것이 단순히 낡고 색이 바래져서 이제는 아무 쓸모없게 되어버린 거짓말이 아니라는 인식이 싹트는 것이다.
이제는 흉가가 되어 버린 마을의 소녀를 만나는 장면이 실제인가 아닌가가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환상이 현실이 되는 그 접점의 순간과 설정 그 자체는 지극히 의도적인 것인 동시에 역시 팀 버튼과 현대 서사물의 최대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이 분절되고 개인화되어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 신화적 상상력의 무한한 매력. 그것이 이 영화의 원작소설이 표방하고자 하는 바였고 또 영화는 그것을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환상적인 장면의 배치와 감독 특유의 유머로 아름다우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는 결말 부분에서 둘의 화합에 관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죽어가는 아버지의 옆에서 차분하게 그를 지켜보고 있는 아들에게 주치의는 마치 고전소설의 어떤 조력자(혹은 神적 존재)처럼 조언을 한다. 아버지의 <거대한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그가 태어나던 때 외부 출장으로 인해 어머니의 곁을 지키지 못한 슬픔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함께 자신에게 물고기 이야기와 같은 <낭만적 허구>와 출산을 지켜보지 못한 <우울한 진실>중에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 전자를 선택하리라는 말을 전한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질문을 빌린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또 이 질문으로서 동시에 나의 대답을 대신한다. 우리의 영혼과 무의식은 어떤 방식을 갈망하고 있는가? 직설적이고 분명한 슬픔이 우회적이고 우아한 은유보다 답답하고 허무한가? 자극적이고 현란하며 야만적인 오늘의 문화는 우리에게 어떤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있는가? 경박하고 병적인 이미지의 범람을 목도하면서도 우리는 단순하면서도 질박한 과거의 상상력에 관해서 가치 없고 구태의연하다는 식으로 호도하면서 계속해서 소외되고 자꾸만 외로워하지는 않는가?
영화는 그것을 설명하기보다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어서 새로 만들어가고 또 그 이야기는 손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유지한다. 신화적 이야기의 분신인 아버지는 수장되어 물고기로 돌아가지만 강이 유유히 흐르는 한 늘 그 강의 어느 부분을 힘차게 누빈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에서 환상속의 인물들과 비로소 아들은 허물없이 대면하게 된다. 상상력의 생명력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언제라도 은빛 물살을 출렁이며 튀어 오르는 커다란 물고기의 자맥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하얀 달빛 아래 우리 영혼의 어느 한 구석에서 잠자다가 불쑥 솟아오르는 파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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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피쉬와 팀버튼의 세계>
할리우드 최고의 악동 감독 팀 버튼이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들고 우리를 두드린다. 전작의 환상적인 요소를 집대성하는 이 영화에서 팀 버튼은 진지한 사색가로 도약하고 있다. 여섯 가지 퍼즐 조각으로 <빅 피쉬>와 팀 버튼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팀 버튼은 한번도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직접 각본을 쓴 영화는 디즈니에 근무할 때 만들었던 단편 애니메이션 <빈센트>(1982)뿐이다. 초기 대표작인 <비틀쥬스>(1988)와 <가위손>(1990)조차도 스토리만 버튼의 머리에서 나왔을 뿐 시나리오는 전문 작가가 썼다. 그런데도 팀 버튼의 모든 영화는 그가 직접 캐릭터와 이야기를 창작했을 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누구보다 독특한 취향과 강렬한 개성을 가진 시네아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팀 버튼은 말이 아니라 이미지로 불굴의 영화 왕국을 건립한 감독이다. 애니메이터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지금도 습관처럼 스케치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언제나 정확한 비전을 가지고 영화의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팀 버튼이 일관된 영화 세계를 갖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빅 피쉬 Big Fish> 대니얼 월러스의 원작 소설에 바탕을 둔 영화다. 월러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판타지 모험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각본가 존 어거스트(<고><미녀 삼총사>)가 이를 시나리오로 각색했다. 프로듀서 리처드 D. 자눅과 존 어거스트는 이를 영화화할 최고의 적임자는 팀 버튼이라고 판단했다. 자눅과 이미 <혹성탈출>에서 호흡을 맞췄던 버튼 역시 이 작품을 흥미로워 했다. 버튼은 한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를 읽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가 환상의 순간으로 빠져들었다가 통렬한 현실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좋았다. 나에게는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그 둘의 균형을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혹성탈출>의 실패로 주춤했던 팀 버튼은 완벽한 공상의 연옥에 탐닉하던 그간의 습관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판타지에 발을 딛고 삶의 보편적 진실을 탐색하는 <빅 피쉬>를 낚으러 길을 떠났다. 물론 팀 버튼은 그간 즐겨 사용했던 낚싯대와 미끼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빅 피쉬>의 곳곳에서 그의 전작들의 자취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