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광명시... 음악valley로 거듭나라
광명시는 내가 결혼생활을 시작하여 아이를 낳고 (중간에 잠시 떠나있긴 했지만)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살았던 정든 동네다.
지금은 KTX 역사까지 갖추어 투기규제지역 리스트에 오르내릴 정도로 번잡한 도시가 되었지만 1982년 당시엔 선진적인 주거형태로 선을 보인 10~17평형 주공아파트(대부분 공단 근로자용, 혹은 회사 기숙사 용으로 분양된 가구수가 대부분이었던) 말고는 논밭과 판자집이 대부분이고, 제방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안양천변의 판자집들이 해마다 물난리를 겪어야 했던 가난한 동네였다.
<광명시 음악밸리 축제>(이 축제에 관한 소개는 얼마 전 재미/취미 카테고리에 올렸으니 참고하시길)로 발길이 향한 건 기획에 참여한 친구가 와보라고 불러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상전벽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의 20대 후반, 30대 초중반의 치열한 추억이 아직도 곳곳에 서려 있을 내 제2의 고향을 좀 둘러보고 싶었던 거지.
날씨도 화창한 일요일 오후 3시.
철산역에서 내리기 무섭게 일렉기타 징징 우는 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상가 골목으로 들어가니 거리 한가운데 세워진 가설무대에서 후줄근한 애들 넷이 절규하고 있다. rotten apple이란다.
헤드뱅잉이라도 해줘야 하는 음악이건만 얼마 되지도 않는 관객들은 멀뚱하니 서있는데 괜히 내가 민망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랴, 이 나이에.... ㅋㅋ
이곳은 원래 넓은 논이 있던 자리다. 그 끝에 우리가 신혼살림을 차렸던 한옥집이 있었지.
공단도 가깝고 공장 친구들도 부담없이 데려올 수 있는, '위장취업자'에게 딱 맞는 집이었다. 집이 꽤 커서 주인집까지 네 가구나 같이 살았다.
밥을 지으려고 쌀 딱 한공기를 퍼가지고 함께 쓰는 우물가로 나오면 중년의 아줌마들이 '아이고, 저 쌀좀 봐... 깨가 쏟아지네' 하며 놀려먹곤 했지. 정말 그땐 고된 공장일 속에서도 쌀 씻고 국 안치는 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초인종도 없고 빗장을 질러 잠그는 한옥 대문이라 남편이 야근을 하고 열두 시가 넘어 돌아와도 졸린 눈 비비며 꼬박 앉아 기다리다가 논두렁 저 끝에서부터 '차앙문을 열어다아오~' (어떻게 야밤에 그런 고성방가를....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다..)가 들려오면 후다닥 일어나 석유곤로에 얹힌 국냄비에 불을 지피곤 했지.
대부분 구로공단에 다니던 사람들이 살던 동네라 아침이면 철산교를 건너가는 출근인파 행렬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당시 남편은 이교대를 했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출근을 하고 남편은 퇴근을 하면서 마주치곤 했다. 그러나 남편도 나도 옆에 공장친구들을 두엇씩은 달고 다녔기 때문에 서로 모른척하고 지나치는데 그 재미가 또 쏠쏠했지. ^^
그 집에서 6개월도 채 못 살았다. 그 와중에 졸지에 갈곳 없게 되신 시외할머니를 우리 단칸방으로 모셨기 때문이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일찌감치 앞세우고 둘째아들 집에서 사셨댔는데 화재가 나서 아들내외와 손자들을 또 앞세우게 되어..... 그때 할머니 연세가 여든아홉이었지. 고령인데도 건강하고 정신 말짱하신 이 할머니... 새벽부터 일어나 신혼부부가 뭐하나 지켜앉으셨으니 이거야 원... ^^
고심 끝에 잠실에 있던 본가를 팔아 철산주공 아파트를 사기로 했다(팔고 나니 곧바로 잠실주공아파트값이 오르기 시작하더라...ㅜ.ㅜ) 이로써 장여사의 본격적인 철산리 시대가 개막되었겄다.
공장기숙사용으로 지어진 2단지의 11평짜리 아파트... 솜씨좋은 감독을 만나면 영화 소재가 되고도 남을 만한 드라마틱한 시대가 이곳에서 펼쳐졌지. 이 얘긴 풀기 시작하면 너무 복잡하니 다음 어느 기회를 봐야겠다.
아무튼.
(앞서 어느 글에서도 썼지만) 공장에 다니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10만원씩 떼어 다달이 들어뒀던 주택청약적금 덕분에 당시로서는 분에 넘치는 33평 아파트를 당첨받은 것을 팔아서 미친 프레미엄을 밑천으로 27평짜리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를 장만했으니, 바로 주택개발공사가 야심적으로 선보인 7단지의 빌라형 아파트... 바로 오늘의 광명시 음악밸리 축제 메인 무대가 펼쳐지고 있는 광명 시민회관 운동장 뒤쪽이지.
메인 음악회가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8단지 뒤쪽 오솔길로 접어들어본다.
이제 이 아파트도 지은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니 나무들이 제법 우람하다. 데이트하기 알맞은 사이즈로 만들어진 오롯한 길을 따라 걸어가니 우리 아이가 놀던 놀이터가 나오고 당시에 그렇게도 자랑스럽던 아담한 빌라형 아파트가 푸른 기와를 드러낸다.
저 집에서 남편과 살아본 날이 며칠이나 되었던가? 90이 넘은 시외할머니와 외손주 거둬주시던 친정부모님이 주로 집을 지켜주셨지. 지금은 누가 사는지 모르지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저 창은 내가 밤새워 일하던 작업실이었고...
한번 올라가 문을 두드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갈 수 없는 고향이다. ㅎㅎ
자, 음악회 구경이나 하세. <민중음악 30년사>라는 음악회라네.
사실 한대수, 조동진, 이병우, 이상은 등 대형가수는 첫날 다 나왔다고 한다. 오늘의 레퍼터리는 좀 식상하지 않을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역시 노찾사와 꽃다지는 별로 업그레이드 되지 않아 좀 지겨웠다(찬송가 혹은 창가와 비슷한 느낌...달라진 게 있다면 오늘날 '사계'의 미싱은 중노동도구가 아닌 패션 감각마저 느껴진다.ㅎㅎ)
문화노동자라고 소개한 연영석에게는 거친 보컬과 자기 색깔 그리고 주장이 있다.
안치환...
머리로는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 공연을 볼 때마다 항상 '최고'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퍼도퍼도 또 솟아오르는 샘물, 아니 폭포수같다.
안치환의 신곡(맞나?) '철망 앞에서'
평화적인 가사지만 자꾸
듣다 보니 매우 선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장면이 그대로 그려지지 않는가. 총을 내리고,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는
그림...
저 건너 들에 핀 풀꽃들 꽃내음도 향긋해
거기 서 있는 그대 숨소리 들리는 듯도 해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나뉘어서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쳐다만보네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나뉘어서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쳐다만보네
빗방울이 떨어지려나 들어봐 저
소리
아이들이 울고 서 있어 먹구름도 밀려와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저 위를 좀 봐 하늘을 나는 새 철조망 너머로
꽁지 끝을 따라 무지개 네 마음이 오는 길,
길-
새들은 나르게 냇물도 흐르게
풀벌레 오가고 바람은 흐르고 마음도 흐르게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녹슬은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자, 총을 내려 자, 총을 내려 자, 총을 내려
자, 총을 내려!
안치환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외칠 때 화려한 불꽃이 터져오르며 축제 마무리
사흘에 걸친 대형축제였는데.. 웬지 동네잔치로 끝난 것 같은 아쉬움.
공연 내용과 관객이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은 것 같은...
(그래도 다른 지자체 주관 축제와는 달리 잡상인을 일체
허용하지 않은 건 퍽 마음에 들었다.)
부산영화제가 부산시민잔치 이상으로 발전했듯, <광명 음악밸리 축제>가 자치단체의 홍보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의미있는 음악축제로 발전해 나가려면 음악을 일상화하고 음악붐을 일으킬 수 있는 지역 내 동기가 필요할 듯하다.
나의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광명시가 진정한 음악valley로 거듭난다면 정말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