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이 2
깡통로봇님 말마따나 최근 일은 기억 안나고 옛일만 자꾸 기억나는 건 확실히 늙어가는 징조.
집 지키느라고 심심한 참에, 한동안 밀어뒀던 옛얘기 끝자락을 끌어내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사춘기 이후의 일들은 현재의 나와 바로 이어지는 것이니 내가 아무리 격의없는 쪽이라고 해도 모든 사실과 생각을 그대로 만천하에 드러낼 수는 없다. 사이버세상이 아무리 익명의 공간이라 해도 2년 가까이 쌓은 글들은 이미 나의 실체에 가까워져 있으니 사적인 얘기들은 점점 쓰기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왕 쓰는 거, 기억해두고 싶은 순간들을 최대한 붙잡아두고 싶은 나 자신의 욕구에도 충실하려면 생략과 은유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이제부턴 소위 faction(fact + fiction) 흉내를 내볼까 한다. 대부분은 사실에 근거하지만 나만이 식별할 수 있는 언어로서 약간의 가공이나 생략, 혹은 왜곡을 가미한다 한들 누가 뭐라겠나.
독자는 '장만옥 story'가 아닌... 평범한 '어떤 중년여자'('어떤여자'에 비하면 정말 매력없는 캐릭터 ^^)의 자전적 소설을 읽으시면 되는 것이고 나는 자존심에 상처 받는 일 없이 은밀하게 지난일을 회상하면 되는 것이고...
자, 그럼 반 년 전에 하다 만 미숙이 얘기부터 시작해볼까.
"다다이마 요리다시떼 오리마스, 시바라꾸 마찌 구다사이..."
30년 만에 두세 다리 건너 미숙이 소식을 들었다. 결혼해서 일본에 살고 있으며 옷가게를 크게 하고 있단다. 일순 그리움이 솟구쳤지만 전화기는 쉽게 들어지지 않았다. 한국도 아니고 더 먼 중국땅에 있으니 만나기도 쉽지 않은 데다, (혹시 사는 스타일이 너무 달라졌다면) 그 애가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만나자는 기약없이 그저 수다떨려고 전화하는 일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구닥다리... 전화번호 받아들고 그저 바라만 본 지 어언 2년이 흘렀구나.
아들넘이 일본 배낭여행에서 돌아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데 갑자기 그애 생각이 나길래 용기를 내어 다이얼을 돌려보았더니 기계음이 대답을 한다. (melon님, 저게 무슨 뜻이래요?)
조만간 미숙이가 대답을 하겠지. 내 목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반가울까?
그 애를 맨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내가 대학에 합격하고 난 직후였다.
중3 시절, 분식센터와 탁구장을 전전하며 거의 매일 어울리디시피 하던 패거리 열 명 중 단 세명만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고 대부분 실업고등학교로 진학을 한 뒤에, 무엇보다 보스격인 미숙이가 지방의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그 패거리의 결속력은 금세 와해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두어 번인가 만났는데, 한때는 학교나 교회, 가족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나를 강하게 잡아끌던 '또래집단'의 매력이 더 이상 내 마음을 설레게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나는 중학교 졸업식 때 머스마 같은 숏컷을 하고 나타나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쇼크를 주었던 일명 '졸업식 커트사건'을 정점으로 사춘기적 일탈행동의 우스꽝스러움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흔히 말하듯 '철'이 들기 시작한 거였다.
삼년 만에 교회로 날 찾아온 미숙이는 당시 멋쟁이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한 넓은 통바지에 화려한 머플러를 두르고, 게다가 당시로서는 구설수의 대상이었던 '쌍꺼풀 수술'로 퉁퉁 부은 눈을 주먹만한 선글래스로 가린 요란한 모습이었다. 갓 졸업한 티가 물씬 풍기는 우리 또래들보다 5년은 성숙해 보였지. 삼일로에 있는 맥주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헉, 웨이트리스라고?)
그 나이의 나로선 약간 충격적이었지만 그래도 격의없이 이런저런 얘길 나눌 수 있었다. 철없던 시절에 쌓은 우정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월급 많이 받으니 언제 한턱 내겠다"는 기약없는 약속을 놓고 가버린 미숙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