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견문록 1 - 가상여행의 시작
마음이 동하기 시작한 건 아들넘이 도쿄 / 오사카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부터였다.
군에 가기 전부터 아껴뒀던 용돈을 다 털어 환전을 하니 5만엔 정도 된다고 하길래 혹시 몰라서 비상금으로 쓰라고 2만엔을 더 바꿔주었더니 3만 6천엔을(그것도 절반은 동전으로) 남겨왔던 것이다. 다시 원화로 환전한다길래, "얘, 그거 바꾸고 또 바꾸다 수수료로 다 떼이겠다. 놔둬봐라... 나도 엔화 한번 써보자'.... 농담으로 던진 한 마디가 씨앗이 되어 내 머릿속에 뿌려진 거다.
기회 닿는 대로 세계 곳곳을 다녀보리라 늘 마음에 품고 살긴 하지만 일본을 여행지로 고려해본 적은 없었다. 웬지 우리나라나 비슷할 것 같기도 하고, 바로 이웃에 있으니 꼭 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한번은 저절로 가볼 기회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나 일단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쏠리는 걸 참을 수 없다. 이사 갈 때까지 아직도 한 달.... 남편도 없고 알바하는 아들넘은 아침 먹고 나가면 한밤중이다. 부담없이 집 떠나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때가 또 있으랴.
말도 못하고 물가도 비싸다는 나라에 어떻게 가야할까 싶어 여행사의 배낭상품을 이리저리 뒤지다 보니 부산에서 배 타고 가서 잠은 도미토리에서 자는 17만 9000원짜리 상품이 눈에 번쩍 띈다. 간사이 지방을 도는 4박5일짜리다. 좋아, 저걸로 가서 아들넘이 남겨온 엔화만 딱 쓰고 오는거야!!
4박5일.... 짧지 않은 시간이니 누구랑 같이 가면 좋을 텐데....
허나 시간이 많은 전업주부들은 기간이 길다고 부담스러워 하고 출입에 구애받지 않는 싱글들은 직장에 매여 있고... 가자고 조르면 나설지도 모르는 친구도 떠올랐지만 공주꽈랑 다니느니 혼자 다니는 것만 못할 것 같고...
메신저 띄워놓고 동행자를 수배해보지만 여행계획만 열심히 설명하다 끝나고 만다. 이러다간 모처럼 마음먹은 나까지 주저앉고 말겠네.
모르겠다, 뜨거운 마음 식기 전에 예약 클릭이다. 부산까지 가는 KTX 할인티켓과 간사이 지방에서 사영철도와 지하철, 버스를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스롯또 패스 3일권까지....
앗, 그런데 약간 차질이 생겼다. 4박5일짜리는 모객이 안 되어서 떠날 수가 없단다. 그래도 칼을 뺐는데 호박이라도 찔러야지. "아저씨, 그럼 21만 9천원짜리 5박6일 걸로 주세요.."
자, 그럼 이제부터 계획을 짜야 한다. 말을 모르니 치밀한 계획에 의존할 수밖에....
아들넘이 들고다니던 지도와 가이드북을 펴놓고 여행사에서 추천하는 여행지 중심으로 일정을 짜고 난 뒤 교통을 연구한다. 일본여행은 지하철만 완전히 장악하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니 지하철 노선을 중심으로 목적지들을 이어주는 역들을 지도에 표시해놓고 역 이름들을 한자와 히라가나로 정리해둔다. 배 타고 현해탄을 건너갈 때 외우면 되겠지.
오사카 하루 반, 교토 하루, 나라와 고베 하루....
도착 첫날은 오사카에서 오사카성과 역사박물관, 덴노지.. 저녁에 신사이바시, 난바, 도톰부리..
둘째날은 교토에서 은각사, 남선사, 철학자의 거리, 청수사, 비파호...
셋째날은 나라 동대사와 사슴공원... 오후에 돌아와 고베항에 가서 야경을...
넷째날은 오전밖에 없으니 우메다 역 주변과 오사카항 주변에서 놀다가 오후 2시에 배를 탄다.
이튿날 아침 부산에 떨어지면 20년 만에 태종대나 한번 들려보고, 일본에선 비싸서 못먹을 게 분명한 싱싱한 회를 부산에서 한번 배터지고 먹고(혼자? ㅋㅋ) KTX를 타는 거다.
가이드북을 뒤지며 먹을 것도 미리 정해놓았다. 싸고도 내 입에 맞을 만한 것으로...
이나리, 텐돈, 타코야키, 키츠네 우동... 마지막 날 배타기 전에는 그 유명한 가꾸벤또를 사가지고 배에서 저녁으로 먹는 거야. 음, 완벽하군!!
계획을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웃기는 짓을 한번 해보기로 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여행기와 아들넘이 찍어온 사진을 바탕으로, 마치 다녀온 것처럼 후기를 미리 써보는 거야. 일정과 포인트를 숙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겠고, 다녀와서 읽어보면 재밌을 것 같거든.
이왕 쓰는 김에 소설까지 쓰면 어떨까?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에 이은 오사카의 연인....마침 혼자 떠나는 길인데 말야. ㅋㅋ
대통령 아들과의 로맨스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니 관두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옛날 남자친구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한번 펼쳐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