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샹그릴라 답사기 3 - 깊은산속 주막마을 캉띵

張萬玉 2006. 1. 16. 13:36

청뚜역에 도착하니 7시 20분... 이곳은 상해보다 해가 한 시간 정도 늦게 뜨는 데다 날조차 흐려서 아직도 한밤중이다. 택시를 타고 신남문 장거리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메뉴판을 보니 인터넷과 지도 속에서만 보았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빠탕이니 리탕이니 하는 낯선 도시들까지 가는 버스 시간이 나와 있다. 아이고 반가워라!

도로 사정을 두고 하도 겁들을 주길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두 코스의 갈림길에 있는 리탕까지만 가볼까 하다가 에라, 못가게 되면 또 무슨 수가 나겠지 하는 배짱으로 최대한 멀리 빠탕까지 뻗쳐보기로 했다. 빠탕까지는 이틀길이라 오늘밤은 캉띵이라는 곳에서 잔다고 한다. 

 

8시 버스는 이미 늦었고 10시 버스까지는 여유가 있기에 가까운 武侯祠로....(무후사가 궁금하신 분은 '여행후기' 카테고리 중 '사천성 유람' 마지막 글을 보세요) 춘절이 가까워 무슨 공연을 끼워파느라고 입장료가 너무 많이 올랐다.(60원) 나는 재작년에 와본 데라 아들넘만 들여보내고 간식꺼리나 산다고 주변을 슬슬 돌아다니다 보니 무후사 옆에 새로 개발된 쇼핑거리가 보인다.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입니다)

  

홍등을 단 중국식 크리스마스 트리                    등 장식은 전국 공통... ^^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절대 그냥두지 않고 돈 벌 기회로 만들어내는 중국인들의 상혼... 무후사 옆골목 같으면 그런대로 멋드러진 장사판이다. 바라건대 돈을 벌어도 품위있게 벌고, 돈을 써도 기분좋게 쓰는 기회로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터미널로 돌아오니 바탕행 버스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22명을 태운 30인승 버스는 그런대로 새것이라 다행인데, 유감인 건 버스 안이 출발 전부터 너구리굴로 변했으니 앞으로 8시간을 어떻게 견딜지.... (사실 나는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금연인데 말이다...)    

정시에 터미널을 빠져나온 버스는 청뚜 시내를 거쳐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어느새 어메이산 가는 길을 제친다. 고속도로변 풍경이란 게 원래 감상할 여유도 없이 휙휙 지나가는 거지만 그래도 계단식 논 사이에 늘어진, 세죽을 병풍 삼고 있는 예쁜 농가들이 내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버스여행이 절반 이상인 이번 여행에선 좋은 풍경들은 암만해도 카메라보다 내 마음에 더 많이 담아가야 할 것 같구나.

 

1시간 반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雅安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국도로 내려오더니 썰렁한 도로변에 버스를 세우고는 30분 후에 출발하니 각자 밥 먹고 오란다. 버스에 탄 사람들 대부분 사천 사투리가 심하거나 보통화를 잘 못하는 장족들이라 사람 하나도 못 사귀어뒀으니 밥은 그냥 우리끼리 먹어야겠다. 길가에 있는 식당 여섯 개가 다 똑같으니 뭐 물어볼 것도 선택의 여지도 없긴 하다. 시금치볶음과 마파두부에 공기밥 하나 시키고 더러운 젓가락 찻물에 한번 헹궈 허기만 면하면 그뿐...

 

 

이 식당 이름은 안경잡이(眼鏡阿哥) 식당이다. 꼭대기에 매단 것은 중국식 햄과 소시지(蠟肉)

 

그리고 먼 길에 대비해 화장실에 한번 다녀와야겠기에 음식점 뒤쪽 화장실로 갔는데....

좀 더럽더라도 사진을 잘 들여다보시면 알게 되실 것이다. 왜 '쇼킹'하다고 하는지...

창살이 너무 성글었던 것이다. 차라리 돼지와 마주보면 어떨까 궁리해봤지만 뒤쪽에 장애물이 있어서리.... 한참을 쩔쩔매다 돼지가 안쪽으로 들어간 사이에 잽싸게!!

    

 

8년 반 중국생활 중 가장 쇼킹했던 화장실 경험...

 

야안부터는 바로 왕복1차선(!)의 산길이다. 초입은 구채구에서 황룡 쪽으로 가는 송판고원처럼 광활하고 황량하기만 하더니 곧 장가계의 금편채처럼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타나는 표지판이 이름하여 禁門關..... 짐작컨대 '이제부터 험산준령이 펼쳐지니 웬만하면 다니지 말라'고 붙인 이름이 아닐까 한다. 여기가 바로 해발 4000미터급의 二郞山인가보다. 

언제 내린 눈인지 녹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산속을 이리저리 누비는 九折羊腸 산악도로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말리는 그 위험한 여행이 이제야 시작됐구나 싶다. 사고라는 게 예상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으니 그 사고라는 것을 피해가며 살 수는 없지. 그런 배짱으로 시작한 여행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간이 떨리기 시작한다. 정작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기사아저씨는 물론 버스에 탄 사람들 대부분 식후 졸음을 여유있게 즐기고들 있는데... (그렇지, 이들에게 이곳은 늘상 다니는 길일 뿐이다)

 

대단한 풍광에 위험한 도로사정을 잠시 잊고 올라올라 가다가 돌아돌아 내려오고... 마지막으로 최근에 완공되었다는 얼랑산 터널을 통과하니 루딩(글씨 잊어먹었음)이라는 예쁜 마을이 나온다. 초등학교처럼 생긴 건물도 보이고 작은 시장도 보인다. 휴... 이제 다 왔나?

허나 내려올 만큼 내려와도 시내까지는 또 한시간 가까이 가야 한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5시 20분에 드디어 캉띵 도착... 청뚜에서 출발하여 점심시간 30분 빼고 딱 일곱시간 걸렸군.

 

 

입구에 사람 모여 있는 곳이 장거리버스 터미널... 이 마을도 곳곳에 새 건물을 짓고 있다. 

 

터미널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장족 복장을 차려입은 삐끼 아가씨들이 몰려온다. 얼핏 보기에 별볼일 없는 소읍 같지만 이곳은 사천성에서 운남성으로 가는 길목, 불빛도 인가도 없는 산악도로 중간에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나그네들을 기다려주는 중간정거장이기 때문에, 걸어서 30분 정도면 다 돌아볼 만한 조그만 마을인데도 음식점과 호텔이 꽤 많은 것이다. 하도 정신없이 짹짹거리길래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 조용히 시킬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일단 삐끼 아가씨들을 진정시켜 놓고 하나 하나 따라가서 본 다음에 결정하겠다고 하니 여섯명 중 세 명은 가버린다.

 

1번 아가씨를 따라가니 터미날 안에 있는 숙소다. 침대 하나에 10원이란다. 싸기도 하고 내일 새벽 출발이 너무 이르니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는 이 고산지방에서 하룻밤인들 에어컨 없이(중국에서는 에어컨이 냉난방 겸용이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실격.

다음 2번 아가씨를 따라가니 터미널 바로 건너편 寨康(싸이캉)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로 들어간다. 새로 지어 깨끗하니 일단 합격. 제일 좋은 방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깨끗한 이부자리에 전기담요, 더운물, 시원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늉은 내는 온풍기까지 갖춰진 2인실을 보여준다. 50원. 시내로 들어가면 더 좋은 호텔이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새벽 다섯 시 반부터 움직여야 하니 가까운 데가 최고다.

 

   

 

TV 왼쪽 삼각기둥 모양 가전제품이 난로인데 고장이 나서 그 위에 온풍기를 얹어놓았다.         

화장실... 세팅이 좀 그렇긴 하지만 깨끗하긴 했다. 더운물도 콸콸 잘 나오고....

 

일단 짐을 내려놓고 날이 더 어둡기 전에 시내구경이나 하자 하고 나서보니...

무지 춥다.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하천 때문인가? 물은 더없이 맑았지만 산에서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이라고 생각하니 보기만 해도 추웠다.   

 

 

 

가로등도 다리도 장족풍의 특이한 디자인..

 

 

상가 뒤쪽은 캉띵의 유일한 관광지인 파오마산 비탈

 

 

캉띵 최대의 쇼핑센터(수퍼마켓)가 11월 24일 문을 열었다. 수퍼마켓이 입주한 건물 안쪽에 조성한 보행가에는 저녁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춤판을 벌인다. 수퍼 매대의 과자봉자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어 있다. (왜 그런지 아시죠? 이 마을의 위치는 해발 2616m랍니다.)

 

 

아마도 캉띵 최고의 호텔인 듯...(그래봐야 표준방 기준 150원 정도?)

 

 

주로 장족들이 사는 마을인 줄 알았는데 여기도 회족사원이...

 

 

이 동네에는 라마사원이 세 개나 있다. 그 중 안각사라는 절 옆 장족식 까페에서 한장 찰칵.

장족식 인테리어에 수유차와 장족식 만두, 요쿠르트, 치즈 등 간식을 판다. 

장족 음식이 첫맛은 고소하고 부드러우나 기름지기 때문에 배부를 정도로 먹긴 좀 힘들다.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준 장족 내외...  gorgeous!!

 

날이 어두워지자 거리도 어두워져 숙소로 돌아오는 걸음에 가속도를 붙인다. 장족 까페에서 나와 부지런히 걷는데 갑자기 머리가 비잉.... 아하, 이것이 고산증세로군. 고산증세에 대비하여 사흘 전부터 紅景天이라는 캡슐을 먹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겪을 건 겪게 되는 모양이다. 아들넘은 아까 먹은 장족식 만두가 영 거북하다는데 암만해도 그 역시 고산증의 하나인 듯.

 

숙소로 돌아와보니 로비(라고도 할 것 없고 우리 방 앞 복도에 내놓은 작은 테이블)에 종업원 아가씨의 동네친구들이 다 모였다. 손님이 오건 말건 카드 치느라고 정신 없다. 내일 아침 5시 20분에 깨워달라고 하니 자명종이 없어서 안 되겠다고 한다. ㅎㅎ    

 

'무늬만온풍기'의 미지근한 바람으로 영하7도의 추위를 녹이기는 역부족.... 최대한 고온으로 맞춰놓고 나갔으나 방 공기는 아직도 입김이 보일 정도로 냉냉하다. 어쩔 수 없다. 고양이세수만 하고 양말마저 신은 채 그대로 전기담요 속으로 다이빙... 그러나 전기담요 댄 등쪽만 따뜻하고 곳곳에서 찬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이 정도에 몸이 얼지는 않겠지만 따뜻한 생활에 길든 우리 모자는 밤 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계속 뒤척인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한 지린내가 화장실 쪽에서부터 솔솔 풍겨온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물을 원없이 퍼붓고 왔지만 조금 있으니 다시 소올 솔... 정화조 구조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는 게 틀림없다. 인간은 왜 지린내에 대해 불쾌감을 느낄까? 인간이 위험하지 않은데 혐오감을 느끼는 것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잠이 안 오니 별게 다 궁금해지는군.

원효대사가 해골에 담긴 물을 달게 마셨던 것처럼 본질을 알고 나면 기실 인간의 삶에 어떤 나쁜 영향도 끼치지 않는 것들이 많건만 그것에 대한 기피와 스트레스가 그것 자체보다 오히려 더 해로운 경우도 많지 않은가?(예를 들면 건강염려증 같은 것 말이다) 좀더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대담한 자세가 필요하다...이런 생각도 하다가 

 

어쩌다 나는 이렇게 오기도 가기도 먼 오지 한가운데로 왔을까? 이 깊은 산 속으로 죽어라고 들어왔다가 죽어라고 빠져나가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인생이란 게 그런 거 아닐까... 그래서 번거롭고 고생스러운 여정을 즐기지 않는다면 인생은 참아내기 힘든 苦海일 뿐인 거지.

삶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을때는 생존 자체가 삶의 내용이 된다. 이렇게 추운 밤에 따끈한 차라도 한잔 마셔 추위를 녹이려면 일단 살얼음이 버석버석한 강에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하고 앞산에 가서 장작이라도 패와야 하고, 한여름 내 따서 볶아서 발효시켜둔 찻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과정을 어떻게 잘 하고 즐기느냐가 삶의 전부가 되겠지.

허나 생각하는 동물로 태어난 인간은 나무를 하러 가는 길에 하늘을 바라보고 장작을 때면서 나는 왜 사는걸까 뇌까리기도 한다. 더군다나 생산력의 발전과 분업 등으로 생존을 위한 인간들의 몫이 간단해지면 인간은 그 빈 공간을 쓸데없는 생각으로라도 채우게 된다. 여덟 식구 빨래 다라이 이고 얼음장 떠다니는 강가로 가던 우리 엄마들, 겨울 지난 솜옷 한번 빨려면 죄다 뜯고, 빤 다음에 다시 새로 지어야 했던 우리 엄마들에게 홧병은 있었어도 공허감이나 우울증이란 없었겠지. 등 따시고 배부른 게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니까.... 이런 생각도 하다가 

 

혹시 내일 아침에 차를 놓치게 되면 어쩌지? 물론 두번째 차나 아니면 다음날 차를 탈 수 있겠지만 혹시 눈이 많이 내려 오고가는 길이 막히게 된다면? 그 길이 뚫리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면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지내야 할까? 아니, 이곳에서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거나 어떤 사연으로 인해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자기 있던 곳으로 되돌아기기를 원치 않게 되면 대도시의 인텔리는 과연 여기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할까?

갑자기 소설이 줄줄.... 황석영의 <섬섬옥수>類의 스토리를 풀어내다 잠이 들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