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샹그릴라 답사기 7 - 샹그릴라 현에서 샹그릴라 찾기

張萬玉 2006. 1. 25. 09:34

예정했던 일정에 한치 차질 없이 움직이려니 공연히 심술이 나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나의 인생이려니...양순하게 짐을 꾸려 다시 길을 떠난다. 샹그릴라縣을 향해...

 

 

산길은 여전히 놀랍고 아름답다. 白茫雪山을 곁에 두고 지나는 이 안타까움...  

 

 

공공교통이니 내 맘대로 세울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유리창을 통해 찍어본다.

몽롱한 푸른렌즈 효과.. ^^

 

샹그릴라를 향한 대장정은 더친으로 들어오면서 대강 끝난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 더친부터 쭝띠엔까지도 점심시간 30분 빼고 쉬지않고 달려 7시간 거리다. 가도가도 끝없는 산과 계곡.... 버스여행이 익숙지 않아 멀미가 나는지 귤 껍질로 양쪽 콧구멍을 막고 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동네 민방요법인가보다. ㅎㅎ   

 

하지만 내 마음은 매리설산에 꽂혀 떠날줄을 모른다. 매리왕스에서 저녁마다 틀어주는 흑백영화 '잃어버린 지평선'을 보고 난 뒤라 더 그런지 모르겠다. 더친을 향해 올 때의 마음은 마치 저질러 놓은 일을 수습하는 기분이라고 할 만큼 앞으로의 여정 챙기기에 급급했지만 더친을 떠나는 마음은 마치 발목에 돌을 달아놓은 듯 깊은 미련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언제 다시 와볼 수 있을까. 샹그릴라는 이 버스가 향해 가고 있는 샹그릴라縣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스치듯 지나가고 있는 대설산지구인데... 이건 암만해도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토끼 행각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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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칭 주 샹거리라 현(迪慶州 香格里拉縣)... 이것이 내가 계속 쭝띠엔이라고 부르는 지역의 정식 명칭이다. (德欽의 중국발음이 더친인데 迪慶의 발음이 띠칭이고, 게다가 띠칭은 도시의 명칭이 아니라 지역명칭이기 때문에 지도에 도시로 나타나 있지도 않고 해서 처음엔 이 두 명칭이 같은 곳을 지칭하는 줄 알았다는...) 원래 이 도시의 이름은 쭝띠엔(中甸)이었는데 서양사람들이 영화와 소설을 통해 알게 된 이 도시를 자꾸만 찾아들어옴으로써 유명해지자 중국정부가 지명을 아예 샹그릴라현으로 고쳐버린 것이다. 허나 나는 그 정식 명칭 대신 자꾸 쭝띠엔이라는 옛이름을 쓰게 된다. 샹그릴라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환상을 가지고 왔다가 실망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얘길 들어왔기에 아마도 샹그릴라현에 기대를 갖지 않겠다는 무의식의 발로인지도.... 

 

처음 샹그릴라현에 들어서니... 그리고 그곳에 머물던 1박2일 동안은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게 맞았구나 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실망감을 떨칠 수 없었다. 서민들의 삶은 잘 보이지 않고 관광객들을 위한 도시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도시... 맘에 드는건 찢어질 듯 푸른 하늘 그것뿐이었지.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그곳을 떠나온 뒤에 오히려 다른 동네보다 그 동네 생각이 많이 나는 거다. 사진을 들춰봐도 그 동네 사진이 제일 많고.... 

 

 

터미널 부근의 왕복 4차선 도로를 필사적으로 건너는 어미와 새끼 돼지들.

 

신기하고도 웃기는 건 새끼돼지들이 차도를 건너갈 때는 그야말로 돼지 멱 따는 소리를 하며 울부짖더니 딱 인도에 올라서는 순간 조용해졌다는 사실이다. 때마침 이 도로에는 오고가는 차들도 하나 없었는데... 뭔가 본능적인 느낌이 있는 건지...

(가로등 한번 특이하다.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학?) 

 

 

현청 앞이면 시내 중심가인데...  이렇게 조용할 수가..

이 동네 역시 햇빛이 강해 뚜렷한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보여준다.

 

 

맛있는 거 걸어놓고 '환영광림'이라네... (에구, 난 들어가기 싫어요!)

 

작은 도시라고 하여 시내 구경도 할겸 인터넷에서 본 여행자들의 거리를 찾아 걷기로 했는데...

長征路, 이름값을 하는지 멋대가리도 없는 길이 길긴 왜 이리도 긴지... 배낭은 무겁고 해가 떨어져 날은 점점 추워오고... 인적이 드문 썰렁한 거리는 마음을 더 춥게 만든다. 버스를 탈 걸 그랬나?

오늘도 에어컨 되는 아늑한 숙소를 찾아 푹 쉬어주리라는 다짐을 하며 걷다 보니 유스호스텔이 나온다.(고성 앞 좌회전) '세계의 배낭족이여, 단결하라!'는 구호 아래 각국 깃발로 치장한 분위기는 좋았지만 공동욕실에 전기장판 깐 침대 두 개만 달랑 놓인 방을 보니 심란하기가 짝이 없어 돌아나왔다. 여름이라면 아들넘을 앞세워 이런 젊은 분위기에 휩쓸려 볼만도 하겠지만...       

 

 

 

유스호스텔 바로 건너편으로 요상한 지붕이 보이길래 가보니... 정말 의외의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론리 플래닛에도 나오는 유명한 永生호텔(Tibetan Hotel)...

 

 

사원인지 왕족의 집인지 헷갈리는 호텔 로비... 이런 장족식 인테리어로 유명세를 탄 듯하다. 

 

허나 으리번쩍한 황금(색)장식들 위에는 먼지가 켜켜로 쌓여 있다. 프런트에 안내하는 아가씨도 없어서 한참을 소리쳐 불러야 했는데... (이때 이 호텔의 서비스 수준을 눈치챘어야 했다)

에어컨은 없어도 놘치와 전기장판이 있으니 그런대로 견딜 만 할 것 같다. 2인실은 모두 찼다고 3인실을 2인실 가격에 쓰란다(100원). 우리야 좋지 뭐...

 

그런데 방에 들어가니 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 물이 잘 안 내려가는 세면기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안 닫히는 문, 들뜬 타일바닥... 심각한 것은 콘센트가 성한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TV를 틀어보니 TV가 나오나, 바퀴가 하나 빠져 절름발이 형상을 하고 있는 놘치를 틀어보니 불이 들어오나, 카메라 충전을 하려니 전기가 들어오나....

사람을 부르려고 우리층 당직실에 가니 볼펜글씨로 '有事打電話'(볼일 있으면 전화하시오) 라고 써제낀 공책장 한장 달랑 붙어있을 뿐... (물론 전화를 해도 안 받는다) 할 수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소리쳐서 사람을 불렀더니 강아지까지 따라들어와 침대에서 뛰논다...@.@

 

이 호텔이 아마도 마지막 남은 국영호텔이 아닐까 싶다. 처음 지을 때는 으리뻔쩍했을 이 좋은 자원을 어째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경영상태가 좋지 않아 일하는 인원을 대폭 줄인 것일까?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도 곧바로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가 또 있을 것이다. 과연 내가 이곳 관리자가 된다고 해서 무얼 확 바꿀 수 있을까?     

 

뜨거운 물 콸콸 나오니 일단 원없이 씻고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이 골목엔 서양식 까페가 유난히 많지만 우리는 오랜만에 김치찌개 한번 먹어보자고 따리의 한국음식점에서 일하던 아가씨가 이곳에 차렸다는 야크바를 찾아갔는데...

휴, 뭘 기대했던 걸까... 김치에 굶주려 김치찌개에 두부김치까지 시켰는데 밑반찬으로 김치까지 한 사발 나왔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 한국음식의 절반 이상 남기고 떠나려니 참 속상하더군. 기대가 커서 아마 실망도 더 컸을 것이다. 김치맛의 절반은 고춧가루인데 달콤한 한국의 고춧가루가 구하기 쉽지 않으니 그럴 꺼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밖에... 역시 한국음식은 한국사람이 해야 한다..

 

(자, 지금부터 샹그릴라 縣 구경하세요... 샹그릴라 현에 머무는 2박3일 동안 카메라에 잡힌 샹그릴라현의 모습입니다. 시간순서 안 따라갑니다.)   

 

 

화환 특이하죠? 이건 일반 화환이 아니고 弔花랍니다. 원래 중국식 조화가 이렇습니다.

색감은 상하이 것과 많이 다르네요.  

 

 

시장 입구인데요... 우리가 도착한 날 이렇게 썰렁했던 시장이

 

 

우리가 떠나던 날 장날을 맞아(고맙게도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졌군요) 이렇게 亂場판이 되었습니다.

 

 

시장 안 풍경은 중국의 여느 지방이나 비슷하네요. 등에 뭘 지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빼고는...

 

 

요 알록달록한 쌀덩어리가 뭐하는 데 쓰는 물건인지 얘길 들었는데 생각이 안 나네요.

얼핏 보면 중국인들이 명절에 먹는 八寶飯 같은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매달기 위해 실을 묶어놨잖아요. 아, 그리고 그 옆에 누렇고 하얀 돌덩이 같은 거 보이시죠? 그게 바로 야크버터랍니다.   

 

 

여기는 古城 안 골목입니다.

 

구시가지였던 이곳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골목이 미로 같아 범죄자들이 숨어들면 찾기 어려워 공안당국이 골치를 앓던 곳이었답니다. 헌데 인근 관광도시에서(리지앙, 따리 등) 고성을 리모델링하여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보고 홍콩의 구룡성채 같은 이곳도 모두 깨끗이 털어내고 새마을을 만들고 있다네요.

절반 정도는 수리를 완료하여 영업을 하고 있고 절반 정도는 열심히 짓고 있더군요. 

비수기이고 더군다나 아침나절이라 손님은 없고, 깨끗이 청소한 길을 개들만 거닐고 있네요.  

 

 

 

고성 안의 일반적인 업태입니다. 객잔과 선물가게, 레스토랑이 하나로 묶여 있군요. 

 

 

한번 기웃거려봤습니다. 객잔(게스트하우스)의 프런트입니다.

 

 

호기심에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봤죠. 주방장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마악 아침세수를 마치셨네요.

 

사방으로 뺑 돌려 지어진 건물 한 가운데 마당이 있고 이곳을 중심으로 식사준비가 진행되는 듯 합니다. 위에 걸린 국기 중 태극기가 안 보인다구요? 그럴리가요... 이곳을 찾는 외국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라는데...

맨 오른쪽 하얗게 보이는 게 태극기랍니다. 서투른 찍사가 강렬한 햇빛을 어쩌지 못했군요. ^^

 

 

결국 그 까페에서 둘째날 아침을 먹었습니다. 통밀로 구운 토스트와 커피맛이 제법이었죠.

 

골목을 돌아다니다 阿布老屋(Uncle 布's Cabin쯤 될까요?)이라는 간판이 붙은 옛날식 집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기웃기웃했더니 이층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어서 들어오라고 우릴 불러요. 암만해도 이게 무슨 장사지... 싶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남의집 구경하기가 어디 쉽겠나 싶어 들어가 봤지요.  

명나라 때 지어진 집이라는데 한족과 장족의 건축양식을 결합하여 지은, 문화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집이라나요. 문화혁명 때 홍위병의 습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이 고성 동네 유일의 옛가옥이래요.(아, 그렇다면 이 고성 안의 고풍해 보이는 건물들은 다 짝퉁?) 할아버지는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타도 등소평, 타도 유소기'라 적힌 낙서들을 가리키며 계속 등소평 찬양이더군요. 그리고는 이곳을 방문했던 유명인사들의 싸인과 명함들을 보여주고... 맨 마지막에 부처님을 모신 불단 앞으로 데리고 갔는데 거기 각 나라의 지폐가 가득 쌓여 있더군요. 너희 나라 돈을 좀 놓고 가면 이 집에 관한 자료를 주겠다... 아하, 이런 영업이었군요. 꽤 독특합니다. 애당초 이 서비스를 받으면 이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가 없었던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요.

 

 

바로 이 분이집주인인 포씨 할아버지입니다.

장족식 인사가 원래 그런건지 제 얼굴을 자꾸 쓰다듬어서 좀 당황했죠. ^^

 

 

별로 지킬 일이 없는 동네인지 공안 아저씨들도 한가합디다.

 

 

고성 마을 끝에 있는 龜山공원. 대형 경통이 볼만합니다. 최소 너덧사람은 있어야 돌릴 수 있죠.

 

 

샹그릴라현에서 제 시선을 끈 것은 여성들이었습니다. 처음엔 민족 특유의 복색을 일상적으로 갖추고 다니는 것이 신기해서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씩씩해보이는 태도가 마음에 들어 유심히 살펴보았죠. 이 동네엔 장족과 더불어 나시족이 많은데 전통적으로 나시족은 여자들이 남자들을 먹여살린다고 합디다.

 

(사진을 클릭해서 크게 보세요)

 

(좌) 집 짓는 현장에서도 여성의 활약은 두드러집니다.

(우) 장 보러 가시나요?

 

 

 

(좌) 가게 보면서 뜨게질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수다도 떨고...

(우) 버스에서 만난 예쁜 장족 아주머니.. 머리에 착용한 게 무려 다섯개라네요.

 

     

(좌) 장날을 맞아 불경이 적힌 깃발을 팔러 나온 젊은 아줌마(마스크를 벗으니 아주 예쁘더군요)

(우) 곱게도 늙으셨네요, 이족 할머니... 모자가 예쁘다고 한장 찍게 해달라고 부탁드리니 일어나셔서 차렷 자세까지 취해주시더군요. 감사해서 만두 한 접시 사드렸죠. ^^

 

 

(좌) 너무나 젊고 잘 생긴 스님... 속세에서 하고 싶은 일도 많으실 듯한데...

(우) 어, 저 스님은 공개적으로 데이트를... 이 동네에선 그래도 괜찮은가봐요?

 

 

* 에궁, 수다 떨다 보니 반말로 시작해서 존댓말로 바뀌었네요. 이래도 되는 건가.... ㅎㅎ

  내일은 쏭찬린쓰(松贊林寺)와 바이쉐이타이(白水臺)에 들렀다가 리지앙으로 떠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