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가는 길(~2014)/재미·취미(쓴 글)

(영화)<브로크백 마운틴>, <오만과 편견>

張萬玉 2006. 3. 30. 09:34

오늘은 영화 얘기...

볼일로 서울에 나간 김에 찍어뒀던 영화를 봤길래...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후다닥 써두려고..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려고 벼르게 만든 것은 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을 받았다는 사실보다도... 소수자의 삶을 다룬 영화라는 사실보다도..... '작은 극장'에서도 쏠쏠하게 관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매니아들이 극장을 전세내서 보았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사정이 닿지 않아 극장에서 못본 영화는 DVD로 감상할 기회가 또 있지만 대중적인 흥행에 실패한 영화들은 동네 DVD 대여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얼마 전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려고 별렀다가 놓쳤다. ㅜ.ㅜ> 

 

영화 상영시간까지는 두 시간 반이나 남아 까페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려야 했지만...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내내 슬픔에 잠기는 행복을 맛볼 수 있었으니.. 

TV프로 중 내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KBS 2TV의 '인간극장' 같은 터치라고나 할까.

 

(꼭 동성애뿐 아니라) 금지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금지되었기에 더 돌진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에 안정된 관계보다 더 농축된 희열에 취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가슴이 터지는 고통을 피해갈 수 없는...)를 바싹 따라붙는 섬세한 카메라.....

그리고 그 카메라의 요구를 150% 충족시키는 두 주인공의 훌륭한 내면연기...

(그것은 화면을 꽉 채우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장관이나 그들 연애의 중요한 '내용'--목줄을 조이는 생활을 떠난 자유로움--으로 위치지어지는 '야영생활'의 호탕함을 압도한다)

 

 

제이크 질렌할은 우화적인 영화 '버블보이'에서 좀 특이하다고 눈여겨 보긴 했지만 잘 몰랐던 배우였다. 내가 좋아라 하는 타입도 아니라 영화 시작될 때는 주연 배우가 다른 사람이면 더 좋았을텐데... 하고 좀 서운했다. 외모만 보면 '배우'와는 거리가 먼 데다가 힙쭈구리 하기까지 한 또다른 주연 히스 레저에 대해서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사랑이 높은 파도를 타다가 내동댕이쳐져 끝이 보이는 허무한 물거품으로 변해가는 그 모든 순간에... 두 연기자는 영화 속의 인물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를 영화 속으로 깊이 빠뜨려주었다.

 

어떻게 저렇게 평범할 뿐만 아니라 주변머리까지 없어 보이는 마스크에서... (게다가 대본이 요구하는 바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 그래서 자신을 강하게 억누르는 일이 몸에 밴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을 수 있는지...(히스 레저) 

 

 

반면에 제이크 질렌할의 (놀랍게도) 파란 눈동자, 그와 묘하게 어울리는 얇은 입술은...... 원하는 것을 더없이 강렬하게 원하며 그 소망을 접어야 하는 고통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고통스러워한다. 참으로 감각적인 마스크다. 그 파란 눈에 고인 눈물... 이보다 더 섹시할 수 있을까. 

 

 

동성애에 관한 나의 생각은 그저 '소수자에 대한 똘레랑스' 정도였지 실제로 동성애가 '성적 취향' 이상을 넘어서는 '사랑'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냥 그렇다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 저런 '사랑'이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물론 금지된 사랑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말릴 수 있다면 죽어라고 말리겠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말려지지 않는 사랑에 대해 차마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운명적인 사랑 때문에 눈물범벅이 된 제이크 질렌할(극중 이름이 생각 안 난다)의 얼굴을 그렇게 짓뭉개어 개천에 던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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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쓰려고 했던 <브로크백 마운틴>후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지난 토요일에 본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는 간단히 한 마디만...

 

 

영화에서는 리사(이건 또 배우 이름이 생각 안 나네..ㅎㅎ)의 편견과 달시의 오만이 사랑을 통해 해소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사실은 내 경험으로 볼 때) 리사의 편견은 대개의 경우 편견이 아니며 달시의 오만 역시 대개의 경우 내던지기 힘든.... 자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뼛속까지 배어 있는 품성이다(오죽하면 聖骨이라고 하겠나). 따라서 이 영화가 이들의 결합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기를... 어떻게든 관객들의 신데렐라 판타지를 배반하는 적나라한 결말로 끝나기를 난 은근히 바랬다.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니까 즐겁긴 하더라..(환상을 충족시키는 것도 영화의 큰 매력... ^^)

 

영국도 좋고 18세기도 좋고 농촌도 좋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그 모든 세팅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멋진 카메라에 감사... 간만에 눈이 호강했다. 

Sense & Sensibility 만큼이나 푹 빠졌던 영화.